RM의 <closer>과 영화 <헤어질 결심>
방탄소년단의 RM이 <헤어질 결심>을 다섯 번 봤다는 소리를 어느 영상에서 봤다. 영화에서 기도수가 먹었다는 ‘카발란위스키’를 들고 슈가의 <슈취타>에 나왔을 때도 기도수라는 이름을 까먹고 있었다. 어느 날 RM의 음악세계가 궁금하여 다시 RM이 나온 영상을 역으로 돌려보다가 그 ‘기도수’가 그 기도수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무엇을 어느 누군가가 같이 좋아한다고 했을 때 이상하게 심장을 내려치는 것 있지 않는가. 그런 감정을 RM에게서 읽었다. <헤결>을 좋아하는 여자 청년은 봤다. 그러나 남자 청년이 <헤어질 결심>을 좋아한다는 소리는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못 들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호불호가 갈려서 어떤 이에게는 인생 영화가 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20대 청년이 이 영화를 다섯 번이나 봤다고? 호, 방탄소년단 이 친구들 뭔가 있네 싶었다. 지금이야 방탄소년단을 다섯 달째 파고 있느니 그들의 정신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나, 처음 내가 방탄소년단을 들여다볼 때는 ‘도대체 아이돌이 뭔데, 이렇게까지 전 세계가 난리인지 내 기필코 찾으리라’라는 마음으로 방탄소년단을 팠기 때문에 RM이 <헤어질 결심>을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은 생소했다.
방탄소년단의 뮤비는 언제나 대기획작이다. 장소를 찾고 음악에 맞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혹은 멤버들이 연기를 하거나. 그래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도 늘 전환하게 만든다. 방탄소년단 뮤비를 보면 언제나 심장이 뛴다. 거기에 이 뮤비를 찍기 위하여, 이 안무를 하기 위하여 어떤 일련의 과정이 있었는지 에피소드나, 스케치로 방탄 TV에서 끊임없이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참 영악한 기획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했고, 우리는 이렇게 진심을 가지고 준비했으니 이 기획의도대로 잘 보고 있지, 아미? 이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뮤비 영상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다. 물론 개인 솔로 뮤비도 마찬가지이다. 각 멤버별로 최애들 아미들이 있기에 어느 한 부분을 소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RM이 <헤어질 결심>의 장면 장면을 재편집하여 RM의 개인곡인 <closer>에 영상을 입혔다. 영화와 뮤비를 콜라보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다. RM이 얼마나 간절히 원했을까 싶다. 덕분에 색다른 뮤비를 봤고, 색다른 <헤어질 결심>을 봤다.
RM은 이 곡을 인스타 DM을 통하여 ‘폴블란코’에게 협업 요청을 하여 이루어졌다 했다. “closer는 좀 지질한 노래예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랑이라든지, 사람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한 노래예요” RM의 말이다. 어쩌면 <헤어질 결심>에 딱 맞는 곡이기도 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랑...그게 참 아프고 슬프지 않은가.
https://youtu.be/SmVqMedomh0?si=x80K6tu3J6WNs5b1
RM 'Closer (with Paul Blanco, Mahali X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Collabo MV
<헤어질 결심>에 방탄소년단 RM의 <closer>를 매칭하여 만든 영상을 보면서 나는 영화 속의 OST <안개>를 떠올렸다. "놀리는 게 아니야, 농담도 아니고 진심이야" <closer>의 가사이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헤어질 결심>의 대사이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방탄소년단 RM은 <헤결>과 <closer> 어디에서 교차점을 찾았을까.
영화 OST로 가장 오래 남는 곡은 단연코 <헤어질 결심>의 '안개'이다. 마지막 엔딩크레디트 올라갈 때 송창식, 정훈희 샘의 안개가 퍼지는데 눈물이 핑핑 돌더라고.
2022년은 단연코 <헤어질 결심> 앓이를 심하게 했다. 소위 N 차 관람객이 되었다. 나는 결제를 3번 했다. 첫 번째 보고 와서 한 번 더 봐야 뭔가를 알겠다 싶어서 또 예매했다. 날짜를 착각하여 통으로 날렸다. 날짜를 착각한 것이 더 열받아서 또 결제했다. 결국 세 번 예매해서 두 번 봤다. 명실공히 충성 고객이 되었다. 어디 예매뿐인가. 각본집을 구입하고, 거기다 스토리보드까지 구입했다. 각본집을 보면서는 아, 그래 이때 이런 감정이었지, 했고. 스토리보드를 보면서는 정말 제작비 장난 아니게 들어갔겠구나, 싶었다. 박찬욱 감독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그냥 마지노선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업적 프로모션인데 누군가 분명히 나 같은 마니아가 존재하는구나 싶다. 그게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그런데 그 마니아 안에 방탄의 RM도 있었다니. 뭔가 심오한 그 무엇이 불뚝불뚝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다.
다시 영화음악 이야기를 해 보자. <헤어질 결심>은 범죄 수사극이라고 할 수 있으나, 드라마/멜로로 보는 것이 맞다. 인간 세상사에 사랑만큼 절박한 것이 어디 있는가. 아니 사랑만큼 간절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 사랑을 내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는 그런 날이리라. 그런 날을 '안개'는 너무 잘 받쳐준다. 오죽하면 그렇게 덤덤하던 탕웨이는 청룡영화제에서 정훈희 님이 '안개'를 부르자마자 오열을 하겠는가. 더구나 한국인이 부르는 한국어의 노래를 중국 여배우가 듣고 흐느낀다는 것. 영화의 주제나 이야깃거리 전반을 음악 '안개'가 한 몫했다. 어쩜 그렇게 절묘하게 곡을 선택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LXAmpAMzMsc 송창식×정훈희, ‘방송 최초’ 라이브로 듣는 듀엣 버전 <안개♬> #집사부일체 #MasterintheHouse #SBSenter
영화의 스토리가 아닌 무용가의 춤으로 <헤결>의 뮤직비디오가 예고로 완성되었을 때, 거의 전율했다. 음악이 주는 힘, 정훈희의 목소리, 그리고 가사. 거기에 무용까지 곁들여져서 영화를 쥐락펴락한다. 아니다. 관중을 들었다 놨다 한다. 정훈희, 송창식 선생님 두 분 오래오래 노래 들려주세요.
나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간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
그 사랑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가사 중에서
안개 노래 중에서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이 부분에 송창식 선생님이 넣어주는 허밍 피처링은 매혹하다 못해 처연하다. 영화의 박해일과 탕웨이의 웃음이 연결되는 부분이다. 웃고 있으나 처연하게 사랑하고 있어서 결국은 붕괴되어 가는 과정. 해준(박해일) 자신만이 혼자서 붕괴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래의 진심도 알게 되고, 바닷가에서 서래(탕웨이)를 찾아 헤매는 모습. 그렇게 미친듯이 바닷가에서 서성이고, 서래는 삽으로 모래사장을 파면서 스스로 죽어가는 모습으로 엔딩 한다.
그 엔딩에 흘러나오는 '안개' 영화에 하도 몰입해서 영화 중간에도 송창식샘이 같이 불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그러나 엔딩 크레디트에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 아... 송창식샘과 콜라보했구나, 저 감미로운 혹은 정말 진심으로 부르는 저 노래를 우리는 얼마나 더 라이브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송창식, 정훈희 선생님 두 분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그 음악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건강관리 잘하세요, 두 분!
북소리가 둥 하는 순간, 안개는 거두어졌을까?
사랑이 시작되었다.
두 번 상영관에서 보면서 두 번 모두 엔딩 크레디트 다 올라가고, 그 음악이 다 끝날 때까지 끝까지 있었다. 엔딩크레디트 아래 듣는 음악에서 북소리가 둥둥 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사복을 입고 서래와 해준이 어느 절에서 해맑은 웃음을 주고받으며 북을 둥 치는데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았더랬다. 엔딩에서 그 씬이 생각나는 것은 가장 연애 같은 연애는 그 북 치는 씬이 유일해서일까. '안개' 그 음악에 언제나 북소리가 같이 얹혀 내 귀에 머무는 것... 그것은 <헤결> 빠져서 미쳤다는 것이고 북소리가 둥 하면서 안개는 안개처럼 또 자욱해진다.
북소리가 둥 하고 울렸던 곳은 어디일까. 완주 송광사라는 이야기도 있고, 아니다 하는 이야기도 있다. 거기가 어디든 영화의 그곳을 찾아서 가 보고 싶다. 그때도 북소리가 둥하고 울리면 귀에 에어팟을 꽂고 송창식, 정훈희 선생님의 '안개'를 들을 것이다.
안개는 사람들 목을 조으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마음으로 흠모하던 한 해 위의 선배가 있었다. 이성적인 감정의 대상인 남학생 선배가 아니고 무엇을 하든지 멋이 있어서 우리 친구들 사이에 우상 같았던 언니였다. 그 언니가 대학을 가서 고3 여름에 엽서를 하나 보내주었다.
"아침 첫 수업 때부터 안개는 자욱했다. 그 안개는 4교시 수업을 하고 나올 때까지 사람의 몫을 조르고 있다. 잘 지내니? (중략, 생각나는 워딩의 표현)"
"안개는 사람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는 이 표현이 주는 힘, 그래서일까. 안개는 언제나 나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세종으로 이사 온 지 5년 차이다. 세종은 안개의 도시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에 눈 뜨면 안개를 제일 먼저 접하게 된다. 금강변 따라서 아파트는 즐비하지만 강가 따라서 안개는 늘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서성거렸다. 그때마다 나는 "안개는 사람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말을 되뇌고 했다.
이렇게 일상에서 접하는 안개의 흐름은 끌어당기는 힘과 사람의 목을 조르는 이상한 누름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들은 '안개'는 영화를 한 번 더 보게 하는 끌어당김을 해 주었고, 박해일과 탕웨이 그리고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에게 더 빠지게 했다. 시나리오를 박찬욱 감독 혼자 썼으면 그런 대사가 안 나왔을 것 같다. 붕괴되었다, 마침내, 이런 대사의 늪이라니. 그래 <헤어질 결심>은 늪이었다.
영화의 늪에 더 펌프질은 한 것은 OST '안개'였다. 시나리오를 정서경 작가와 콜라보하지 않았다면 다른 색깔의 영화가 나왔을 것이고. 음악 역시 정훈희 샘이 혼자서 불렀다면 엔딩 크레디트에 끝까지 앉아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송창식 샘과 함께 부르는 그 노래라서 독특한 결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중간중간에 추임새 넣는 그 목소리. 환상적인 조합이다.
방탄소년단 RM이 들려준 <헤어질 결심> 이야기를 시작하여 다시 <헤결>에 빠져서는 또 작정하고 한 번 더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영화가 진짜 아니더라, 하고. 누군가는 역시 깐느 영화제에서 감독상 받은 만큼의 예술성이 있다고 한다. 문화에, 예술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저 방탄소년단을 파는 5개월 동안, RM이 이 영화를 다섯 번 봤다는 것에 꽂혀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내 편이 생겼다는 일종의 박수 같아서 기분 좋았다. 방탄소년단 덕질 5개월의 순간순간은 또 이렇게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