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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Jul 23. 2023

시시껄렁한 이야기하는 사이

그게 친구


친구이야기 1

미국 사는 친구가 한국에 왔다


미국에서 친구가 왔다. 아버지 연세 드셔서 기력이 떨어져서 병원 계셔서 왔단다. 우리 나이가 그런 나이구나. 어제는 친구 아버지 부고장을 받고.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미국에서 친구 오면 세 명이 모인다. 이번에도 당연히 날 잡자고 했다. 당장은 힘들겠단다. 아버지 상태가 들쑥날쑥해서 일단 병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럼에도 왔다고 보고한다고. 이런 대화 중에 서로의 근황을 자연스럽게 묻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반이었던 친구들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그래서 매번, 매일 만나는 친구는 아니어도 이렇게 미국에서 친구 한 명이 오면 만난다. 그 사이사이 친구들 근황은 바뀌기도 한다. 미국에 있는 친구는 전업주부이고, 한국에 있는 다른 한 명은 뼛속까지 일 중독자였다. 그 친구가 올해 2월에 퇴직했다고. 간호학과 교수로 있었던 친구다. 지독한 일중독자였던데 요 몇 년 힘들어했다. 사립대학교내 교수 정치질에 질려서 몇 년 전에 교수 접었다. 그러다 특성화 학교 양호 교사로 갔었다. 너무 좋다고 했다. 정치질 없이 아이들만 챙길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코로나정국에 간호학이라는 것이 이렇게 보람 있다고도 했다. 그 좋아하던 일을 올해로 접었다고. 요즘 잘 놀고 있다고. 카톡으로 오래간만에 묵은 수다를 떨었다.


친구란 뭘까.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친구라고 하더라. 백 번 공감되던 말이었다. 오늘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진짜 우리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문장으로 하고 있더라. 이게 친구 맞는구나 싶더라.


미국에서 온 친구는 8월 출국 전에 얼굴 보기로 했다. 진짜 날 잡아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보려고. 그런데 결국 얼굴을 못 보고 9월에 출국했다. 친정아버지 몸이 안 좋으셔서 보러 왔는데 친정아버지는 여차저차하여 퇴원했는데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여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결국 우리는 카톡만 나누다 그 친구는 출국했다. 아쉬움보다는 그래, 마음이 힘들었겠구나. 오죽하면 친구들 얼굴도 못 보고 갔을까.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왔다고 신고한다고 하더니, 결국 못 보고 갔다. 며칠 맘이 짠했으나 또 이렇게 각자의 일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반이었던 친구들이니, 진짜 오래되었다. 그 인연들과 함께 이렇게 세월은 흘러왔다.




친구이야기 2

일본사는 친구가 왔다


공항철도-비행기-택시-시내버스-지하철-기차-승용차



오늘 내 친구가 탄 이동 도구이다. 일본에서 친구가 왔다. 대구공항으로 들어와서 올만에 대구에서 놀다가 왔다. 쏘카로 이동할까 하다가 시내버스 타고 여기저기 다녀보자고 해서 그냥 맨몸으로 마중 갔다.


캐리어를 동대구역 보관함에 맡겼다. 캐리어를 끌고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기에는 우리가 너무 늙었다.


어릴 적에 우리가 6년을 타고 다녔던 시내버스를 타고 동성로 가서 쏘 다니다 왔다. 버스 번호는 바뀌었으나 노선은 같은 버스를 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상가 건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버스로 미진분식을 갔다. 아쉽게도 어제 25일부터 추석 휴가. 할 수 없이 태산만두. 태산 같은 만두를 먹고. 대구에서 미진분식은 노포이다. 물론 태산만두도 노포이다. 어릴 적에는 동성로 거기의 분식들은 얼마나 큰 곳이고, 얼마나 대단한 우리들 먹거리였던지.



미도다방 가서 쌍화차를 마셨다. 미도다방도 45년 된 노포이다. 아직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다방지기가 인사를 하는 곳이다. 미도다방은 어쩌면 그 시절 동네의 먹물들이 드나들면서 대구의 여론을 쥐락펴락 한 곳이 아닌가 싶다. 다방 한 편에 화이트보드가 있다. 옛날이었으면 아마도 분필로 쓰는 칠판이 있었겠지. 거기 칠판에서 분필로 뭔가 써 가면서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으리라. 한복은 입은 노년의 여인이 와서 인사를 했다. "오셨어예, 어째 쌍화탕은 묵을만 합니까?" 마치 어제 왔다 간 단골손님에게 인사하듯이 인사한다. 친구는 말했다. "너 여기 자주 오나? 우짜 사장님이 이리 살갑게 아는 척 하노?" 자주 올 수가 없는 거리이다. 내가 대구 사는 것도 아닌데, 뭔 자주 올 수 있을까.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노년의 여인에게서 익숙한 상술이 보이기도 하고, 익숙한 따스함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는 거기 미도다방에 왔고, 나는 일본에서 온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지 않는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친구. 아… 오늘 동성로 길바닥에서 사주도 봤다. 재미로. 친구로의 인연은 오래가느냐 물었더니 두 사람 친구로는 최고란다. 물과 기름으로. 나에게 40년 넘는 친구가 몇몇 있다. 이름만 들어도 따뜻해지는. 그중에 일본 사는 이 친구가 나랑 잘 맞는다. 아쉽게 일본 산다.



미도다방에서 샌디 과자를 먹고. 수다를 떨고. 비 오는 진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대구역까지 걸어서 지하철 타고 동대구역 도착.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는 동대구역 광장 벤치에 앉아서 또 폭풍 수다를 떨었다. 기차 시간이 되어서 동대구역 짐 보관소에서 짐 찾고. 고속열차 타고 김천에서 친구는 내리고. 나는 대전역에서 내렸다. 그 친구는 친정 언니가 김천에서 산다.



축복이지. 이렇게 묵은 수다 떨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고맙다.



친구이야기 3

방탄의 지민이와 태형이


방탄소년단 일곱 명은 92년생부터 97년생까지 있다. 그중에 94년생과 95년생은 각각 두 명씩 묶여있다. 94년생은 리더 RM과 춤꾼 제이홉이다. 그들은 형라인에 속한다. 95년생인 뷔와 지민은 동생라인이다. 막내 97년 정국과 셋이서 막라인으로 불린다. 이들은 서로 형제라고 한다. 들여다보면 형제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싶다. 한 침대에 섞여서 서로 부등 껴안고 자기도 하고, 누가 새벽에 등산을 한다고 하면(그것도 게임으로 벌칙) 맏형이 일어나 떡국을 보온통에 담아서 준다. 같이 동행하는 매니저형의 것까지 챙겨서 보낸다. 그냥 엄마이다. 음식 이야기 나왔으니 하나 덧붙이면 나는 가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누가 먹던 것 아무렇지 않게 받아서 먹고, 빵도 입으로 서로 나눠 먹고, 물병도 서로 번호가 매겨져 있어도 내 것, 네 것 없이 그냥 스스럼없이 먹는 것을 보고 사실 나는 좀 놀랐다. 내 아이 어릴 때, 육아할 때도 나는 아이 먹던 것 안 먹었다.



방탄소년단 일곱 명의 캐미를 보면 사람들은 팀워크가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팀워크도 팀워크이지만 지민이와 태형(뷔)을 보면 그냥 팀워크라는 단어로 퉁치기에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다른 일곱 명들도 사실 팀워크로만 퉁치기는 아까운 그 무엇이 있다. 방탄소년단 5개월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음악을 들었고, 하루도 안 빠지고 그들의 자체 콘텐츠 예능 <달려라 방탄>을 봤고, 여행 스토리 <본보야지>를 봤다.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일상의 티키타카나 혹은 무섭게 싸우는 갈등의 단면에서 그들은 친구구나, 하는 생각을 늘 했다. 일곱 멤버 중에서 지민이와 태형이를 보면 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의 인연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미국  살고 있는 친구와 나는 소위 학군이 다른 곳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나는 좀 먼 거리이고, 그 친구는 학교에서 좀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서 그 친구 집까지 걸어서 집으로 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동성로까지 걸어오면서 길가에 줄 서 있는 시계방을 보면서 우리는 매일 시계를 샀다. 쇼윈도로 보이는 시계를 보면서 하루는 저 시계를 중학생 때 사자, 하루는 저 시계는 고등학교 때 사자, 하루는 부모님에게 사 달라고 하자, 하루는 돈 모아서 우리가 사자, 그렇게 쇼윈도를 보면서 우리가 시계 찬 손목을 상상하면서 걸었다. 어떤 날은 시계방 아저씨가 나와서 막 혼내기도 했다. 깨끗이 닦아놓은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얼룩 생기게 한다고. 그러면 풀 죽어서 그냥 얼굴이 빨개져서는 그 자리를 도망쳤다. 그 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었고, 떠들었다.



일본 사는 친구와는 초등학교 6학년 말에 시내버스 정거장에서 만났다. 그이도 초등학생이 아니 국민학생이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고 있는 것이 반가웠다. 버스 정류장에서 서로 인사를 했고, 다니는 학교는 다르지만 내심 중학교 때 같은 학교를 다니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그 친구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리 같은 학교로 배정되었다. 신이 있어, 우리들을 친구로 묶었다. 그 친구와는 6년을 등하교를 같이 했으니 시내버스 안에서 얽힌 사연이 눈부시다. 학교에서 싸우고는 시내버스 타면 언제 그랬냐 싶었고, 또 잘 맞다가도 또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게 중학교 때였고, 고등학교 때는 싸운 적이 없다. 그렇게 내 인생에 둘 도 없는 친구로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다시 방탄소년단의 지민 와 태형이 이야기를 한다. 얼마 전에 태형이가 솔로 음반이 나오면서 팬들과 미니 운동회를 하는 뷔크닉이라는 이벤트를 했다. 팬들인 아미들과 미니 운동회 같은 것을 했는데 그 자리에 지민이 나왔다. 지민과 <친구>라는 노래를 같이 부르는데 사전에 뭘 준비하고 오라고 이야기하지 않은 태형이 즉석에서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가사를 띄엄띄엄해서 부르는데 친구라는 의미가 확 오는 것이다. 그래서 완곡을 찾아왔다.  



(중략)

우리 교복 차림이 기억나

우리 추억 한 편 한 편 영화

만두 사건은 코미디 영화 yeah yeah

하교 버스를 채운 속 얘기들

이젠 함께 drive를 나가

한결같애, 그때의 우리들

"Hey 지민, 오늘"

내 방의 드림캐쳐

7년간의 history

그래서 더 특별한 걸까

언젠가 이 함성 멎을 때 stay hey

내 옆에 함께 있어줘

영원히 계속 이곳에 stay hey

네 작은 새끼손가락처럼

일곱 번의 여름과 추운 겨울보다

오래

수많은 약속과 추억들보다

오래

네 새끼손가락

처럼 우린 여전해

네 모든 걸 알아

서로 믿어야만 돼

잊지 마

고맙단 그 뻔한 말 보단

너와 나

내일은 정말 싸우지 않기로 해

(중략)

-친구, 방탄소년단 지민과 뷔의 유닛곡, 가사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h7mZX8INIYI

MAP OF THE SOUL : 7, 친구



'MAP OF THE SOUL : 7' 2020년에 나온 방탄소년단 음반이다. 코로나 시대가 올 줄 모르고 준비했던 음반이었다. 정규 4집인데 코로나 때문에 공연은 취소되었다. 제대로 프로모션 못 한 음반이라고 하나, 나는 이 음반을 좋아한다. 곡이 워낙 많으니 이 음반에 <친구>가 수록되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가 친구라고 이야기한 김경일 교수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친구> 가사에 만두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태형이와 지민이의 만두 사건은 아미라면 다 아는 내용인데, 안무 연습에 밥을 먼저 먹고 하자는 태형이와 연습 끝내고 먹자는 지민과의 싸움이었다. 후에 빅히트에서 나온 <비욘드더스토리> 책에서는 태형이는 <화랑> 드라마 출연 중이라 시간이 없었고, 멤버들도 갑자기 방탄이 유명해져서 다들 예민할 때였다고. 그래서 그 만두 사건으로 4시간을 싸웠고, 2주간 말을 하지 않았다는 지민과 태형. 그러나 지금은 둘 도 없는 서로 베프라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미국에 사는 친구와 일본에 사는 친구가 기억나는 것이다. 지지고 볶으면서 서로 친구임을 증명하는 것일까. <친구> 들으면서 새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기억했다. 이렇게 방탄소년단 덕질은 오만가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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