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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Oct 22. 2023

나태함에 대하여

방탄소년단 RM은 미술광이다. 박물관을 가고, 미술관을 가는 것이 삶의 낙이다 할 만큼 쉬는 날 그는 어김없이 미술관에 나타난다. 방탄소년단 영상 브이로그에서 자신의 집을 보여준 적 있다. 온통 그림으로 전시된 전시실이었다. 음악을 잘 하기 위하여 미술관에 가고, 책을 읽는다고. 창작을 잘 하기 위한 도구가 글이고, 그림인 셈이다. 



조원제 작가가 쓴 <방구석 미술관>을 방탄소년단 RM이 읽어서, 혹은 추천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방탄소년단 RM이 아니더라도 책이 워낙 탄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방탄소년단 RM이 찜해서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겠다. <방구석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RM은 대기실에서 미술책을 종종 보기도 한다. 하루는 아주 큰 사이즈의 책을 보고 있었는데 옆에 정국이 와서 빼꼼히 들여다본다. RM은 "미술책"이라고 단답형의 답을 한다. 그리고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정국은 그 책을 들여다본다. 아주 큰 사이즈의 미술책이다. 제목을 알듯말듯한데 기억이 안 난다. 나도 저 큰 책으로 그림이라는 것을 보기 시작했거든. 내가 구입한 책은 아니고, 병원 대기실에서 봤다. 그래서 제목이 더 가물가물하다. 




방송국 대기실에서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분위기, 좋다. 사실 우리 사회가 책을 독서로 하면 먹물이다는 암묵적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여럿이 어울려 있는 자리에서 책을 펼치면 "뭐 이런데서 책을 보느냐"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내 경우는 아무데서 책을 펼치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그 외 괜히 "있어 보이는 척"하는 느낌으로 주눅 아닌 주눅이 들기도 했다. 방송국 대기실을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수선하다. 한 쪽에서는 헤어메이컵 하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대본 리딩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펼치고 읽는 것 사실 대략난감이기도 하다. 출연진이 들어가고 스태프가 녹화 하는 동안 기다리면 모를까, 사실 버겁다. 대기실에서 책 읽는 것. 사실 방탄소년단은 일곱 명이 한 대기실을 사용하고, 영상으로 봤을 때 헤어메이크팀도 빅히트에서 따로 들어가는 구조 같더라. 그러니 스태프도 많고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계속 이야기 나누고 뭐 그러는 분위기라 어수선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것에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것, 자유롭고 좋아보이더라. 




<방구석 미술관>을 쓴 조원제 작가의 신간이 나와서 그 미술책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RM 이야기로 길어졌다. 전작과 출판사가 달랐음에도 방탄소년단 RM이 언급되어 있다. 당연한 것 아니겠나. 내가 출판사 담당자라도 한 줄 올린다. 마이너스의 손인데, 방탄은. 여하튼 나는 방탄소년단 덕분에 <삶은 예술로 빛난다>를 읽지는 않았지만 읽고 나니 방탄소년단 RM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 RM은 이 신간을 알까. 알면 읽을까, 등등. 요즘 방탄소년단은 상품명을 혹은 책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많이 조심해 한다. 뭔가 툭 터진 단어나 문장에서 품절나는 현상이 많이 나서 서로 직접적인 언급을 안 하려고 한다. 



RM이 미술을 좋아하고, 그 미술을 즐겨보는 그 안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내가 생각하는 미술은 언제나 엉거주춤 까치발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학교 때 왜 미술을 제대로 못 배웠을까, 왜 미술이라면 그림을 보고 작가 맞추기나, 그는 어느 시대에 태어나서 어떤 사상으로 그림을 그렸는지에만 집중하는 미술 수업을 해 왔을까, 어른되어 보니 음미대 간 친구들, 문화 예술을 잘 즐기는 친구들이 참 부럽다. 우리는 왜 문화를, 미술을, 음악을, 일상에서 못 즐겼을까요? 미술관을 가 보려고 해도 뭔가 공부를 하고 가야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먼 나라, 이웃 나라의 낯섦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까" 라고 미술책을 읽고 서평으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왜 맨날 그림 보여주면서 그것도 시험지에는 흑백으로 인쇄된 그림을 보면서 작가가 누구냐, 이 사람은 언제 태어났냐고 그렇게 물어보던지"이것이 내가 미술을 보는 감각이다. 그렇다면 음악을 하는 창작자는 미술을 어떻게 들여다 보고 있을까. 



내가 읽은 <삶은 예술로 빛난다>에서는 미술의 나태함을 이야기했다. 그 나태함을 읽으며 나는 RM이 생각났다. 바야흐로 내가 아미가 다섯 달 동안 모든 일상에, 모든 읽는 것에 방탄소년단을 매칭하는 것이다. 사실 미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매칭들이 나는 싫지 않았다. 이렇게 음악과 미술을 오가며 즐기는 것, 그게 방탄 덕분이다는 생각, 혼자 멋지다라고 외쳤다. 덕질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즐거울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니까. 



우리는 나태할 때 비로소  예술적으로 살 수 있다. 삶에서 '아무 할 일이 없는' 시간의 공터를 스스로 허락하고 만들어야 비로소 내가 숨 쉬고 살아있음을 체감할 수 있고,

<삶은 예술로 빛난다> p110-111 중에서



"나는, 우리는 특히 음악으로 자신의 색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음악에 담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사람인데요, 그런 의미를 꾹꾹 담으려면 우리는 각자 조금씩 쉬어야 해요. 쉼 없이 성적을 바라보고 일을 미친 듯이 하면 우리는 이 일을 오래 할 수가 없어요. 정말 방탄소년단을 오래 하고 싶어서, 각자의 색깔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싶어요."

- 방탄소년단 리더 RM, 2022년 방탄회식에서 한 말-



김남준은 이런 말을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스스로 나태해져야 다른 창작을 할 수 있다고. 그렇다. 우리는 쉬어야, 뇌세포도 쉬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고, 에너지도 충전이 되는데 우리는 그 쉼을 너무 못 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쉬어가는 것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다음 날 "방탄소년단 해체"라는 기사가 뜨고, 하이브 주가는 떨어졌다. 사람들은 쉬어야 제대로 된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리더 김남준이 쉬어가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행복했다. 저 친구들 정말 오래가겠구나, 정말 오래 하고 싶어서 정말로 고군분투하는구나, 하는 안도감들이 나를 정말 편안하게 했다. 그래서 나태함을 쉼표로 생각하면서 나태함을 찬양하기로 했다. 나의 나태함, 너의 나태함... 우리는 얼마나 용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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