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이꺼이 울었다
어느 날 문득, 내 안의 날 것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
<인생극장> 이 책을 들여다보자.
거기에 내 엄마가 있고 내 아버지가 있다.
위로되고 치유되어 힘이 나지만 눈물도 쏟아지기도 한다.
노명우의 <인생극장>100자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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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과 '머리말' 13쪽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눈물이 나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이 두꺼운(400쪽이 넘는)것을 고작 13쪽 읽고 눈물바람 나게 하면 이 책을 어떻게 끝까지 온전히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래 예감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도대체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몇 줄 읽으면 눈물나고, 진정해서 또 몇 줄 읽으면 또 눈물이 나온다. 허긴 페이스북에서 저자의 토막토막 글을 보고도 눈물바람 하기는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두께만큼 오래 걸렸고,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며칠 나를 울고 웃게 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의 저자, 노명우 사회학자가 근 3년만에 <인생극장>을 세상에 내놓았다. 전작인 <세상물정의 사회학>이 까칠한 사회학을 펼쳐 두었다면, 이번 <인생극장>은 따뜻한 모카 커피같다. 그것도 우유의 풍미가 아주 너그러워 마음이 그냥 편해지는 그런 커피 말이다.
66년생 사회학자 노명우가 이제는 고인이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돌아다보는 기록물인데, 그 기록물이 오롯이 아버지,어머니의 회고록 같은 자서전이 아니다. 그냥 우리 부모 이야기이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온 그 당신들의 일상들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기록으로 잘 간직되어 있을까. 사실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엄마에게서 작정하고 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추억과 기억을 따라서 그 장소에 비행기를 타고 만주, 일본으로 가 본 정성들. 공주 반포면의 시골 마을을 보면서 사회학자로, 아들로 담담히 그려보는 그 옛날들. 그런 일상의 추억에 우리 나라 사회 전반의 영상을 붙이고 기록물을 찾아서 그 시대에는 이랬다, 저랬다. 라는 사실적 설명들. 시대상황에서 엄마는 그래서 그렇게 가슴 저몄을 것이고, 아버지는 저래서 세상의 청운아로 살았으리라는 자식의 상상들.
이 책을 보면서 방대한 영상 자료와 기록물을 보고 정말 놀라왔다. 도대체 이 자료들을 일일이 구하면서 이런저런 저작권들과 또 얼마나 싸웠을까 싶어서 그 오롯한 정성에 다시 감동되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편집자의 소회가 올라와 있더라. 저작권을 일일이 확인하며 양해를 구하고, 혹은 비용을 지불하는 그 과정들이 정말 힘들었다고. 그럴 때마다 편집자도 원고를 다시 붙들고 또 울고, 정신차리고 그랬다고 페북에 올라와 있는데, 나는 그 글을 보고도 또 울었다. 젠장, 무슨 사랑학 운운하는 이별곡도 아니고, <인생극장> 관련 글만 나와도 눈물이 나오니.
특히 나는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하거나 공주 반포면 송곡리에서 아버지가 출향하면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고는 사무치고 눈물나서 혼났다. 그 시대에 가방을 들고 양복을 입고 길을 나서는 모습의 사진(페북에 먼저 올라온 사진)을 보면서 나는 머리속에서 그렇게 상상했다. 아, 이 집안도 소위 지식인 집안이었구나, 그러니 그의 아들로 자연스레 유학가고 사회학자로 살았구나.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래, 자자손손 지식인 집안은 아닌, 그냥 일상의 평범한 아버지였음에 그 이상한 동료애 같은 것이 불쑥 올라왔다. 그래 사는 것은 거의 비슷한 우리들 일상이야.
우리가 살면서 부모세대를 얼마나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영화나 기록물에서 만들어지는 옛 것의 기록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들 옛 과거, 역사 였다고 이야기하지, 그게 우리 부모 세대의 일상이었음을 누가 제대로 대입하기는 할까. 영화는 영화이고, 기록은 기록이었다고 서로 따로국밥으로 한 쪽으로 밀쳐두는 경우가 허다한데, 흑백의 옛 영화를 보면서 세로줄의 깨알 같은 인쇄물을 보면서 우리는 부모의 그 일상들을 퍼즐 맞추듯이 연결해 나간다. 그게 사는 것이더라.
나는 한 저자에게 꽂히면 그동안 집필한 책들을 줄줄이 사탕마냥 다 읽는 습관이 있다. 노명우 사회학자도 내 안에 '한 저자, 제대로 때리기(읽기)'에 라인업 된 저자인데 글의 결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그도 나이듦에 대한 완숙미 아닐까. 이 책은 전작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3년이 지났으니, 그 세월만큼 깊이나 결이 더 멋지다. 40대 사회학자가 50대 사회학자로 세대갈이 하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부모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들이라 더 애잔해졌을까. 사실은 이 책을 보기 전에는 그가 50대인지 몰랐다. 그간의 글들이 그만큼 젊었다는 반증이다. 그만큼 깨어 있다는 느낌도 있었을 것이고.
좀 두껍다.책이 두껍다. 그러나 권한다. 지루하지 않게 잘 읽을 수 있고. 좀 오래동안 이 책을 들고 있어도 그 무직함이 이상한 든든함을 주기도 한다. 재미도 있다. 영화 줄거리인지, 노명우 자신 이야기인지 헷갈리 때도 있는 그런 즐거움도 있다. 그래서 잘 들여다 보게 된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화장실로, 카페로, 사사무실로, 버스로, 기차로, 그리고 다시 내 책상 위로 참으로 오래도 쥐고 있었던 한 권의 책이었다. 하루는 서러웠고, 또 하루는 야속했고, 또 하루는 공감했다. 그 안에 노명우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 아니라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삶이 거기에 녹여 있었고, 그래서 이해도 했고, 공감도 했지만 여전히 용서 되지 않는 내 삶의 한자락도 있었다. 사는 게 그래 전쟁이기도 했구나, 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무엇들이 어찌나 울컥하게 하는지.
내 몸에 잘 맞는 보약 한 첩 먹은 책이었다. 2015년, 2016년 연속으로 부모를 잃어서 애닯고 서러워서 이별을 잘 다독이려고 헬싱키를 갔다는 저자의 눈부신 자유러움이 부럽지만. 아들도 사회학자로 대상을 적절히 객관화 하면 쓴 오랜 노고의 책, 기꺼이 추천한다.어느 날 문득, 내 안의 날 것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 이 책을 보자. 그래 또다른 나를 거기에서 볼 수 있다. 부모도 있지만, 그 안에 나도 있다는 거,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시대의 사회학을 읽는 것은 덤이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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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부모님의 평화를 기원하며, 삼가고인의명복을 빕니다.
신간소개입니다.
노명우, 인생극장, 사계절,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