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대로, 말없이, 잠시간 배회하다.
세상에는 활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참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취향이 존재하고 모든 독자가 내가 추구하는 '흘러가는 듯한 에세이'를 좋아할리는 없다. 이것은 분명 내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비슷한 의미로 나 역시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된 전쟁 모임(어딘가에는 전쟁 모임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에서 '어쩐지 전쟁사에는 예전부터 도통 관심이 없어서요'라고 핑계 댈 수도 있게 되니 그건 그런대로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끈질기게 내게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에 대해 알고 있나요?'라 묻는다면, '물론이지요'라고 아는 척하지 않을까 싶다. 분명 그것은 허세에 가깝겠지만, 어떻게 내가 그 이름을 알고 있는가를 돌이켜 본다면 아마 어린 시절 프라모델 조립식 병정을 즐겨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롬멜 장군이 위해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 마니아들에게는 미안하게도, 그의 별명이 '사막의 여우'라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에게 이 별명을 지어준 사람은 필시, 직접 사막에서 여우를 본 적이 없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집트 사막에서의 저녁은 생각보다 급하게 찾아왔다. 타고 온 지프 한대로 벽을 만들고 간이 기둥 몇 개와 천으로 또 다른 한쪽 벽을 만든 우리는 식사를 준비했다. 온 사막이 어둠과 함께 적막해지고 준비가 되어 가던 닭고기 카레 요리의 향이 주변에 흥건해질 때쯤, 그러니까 분명 그때쯤 그들이 찾아왔다. 그 사막의 여우들이. 녀석들은 무리 지어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결코 손에 닿을 만한 거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소 주변을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우리를 계속 응시했다. '으르렁'거 린다 던 지 하는 위협적인 제스처는 전혀 없었지만, 그들은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충분히 전달했고, 우리는 닭고기를 던져주며 기대에 부응했다.
그것은 마치 '이번 달 월세를 못 낸다고? 그럼 대신 거기 있는 신라면 한 봉지로 이번 달 월세를 대신하지'라고 말하며 윙크하는 상냥하고도 위트 있는 집주인 할머니의 모습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지, 전차 기갑대대를 몰고 상대를 위협하는 장군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하고 싶다. 어찌 되었건 욕구를 충족한 그들은 떠나갔고 피곤한 우리는 담요 따위를 대강 모래 위에 깔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이내 곯아떨어져 버리긴 했지만 사막 여우들의 부푼 꼬리와 사막에 누워 마주한 하늘에서 쏟아질 것만 같았던 별빛들은 평생 잊지 못할 만큼의 감격이었다.
이윽고 아침이 되어 길을 떠나기 전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해결해야 했는데, 지프를 운전해준 현지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휴지를 주며, 먼 곳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남녀 할 것 없이 순번대로 휴지를 든 채, 말없이. 사막을 잠시간 배회하고 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따뜻한 호의를 불의로 갚은 것도 같아 그들(사막여우)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참 그러고 보니 아침이 되어 담요들을 정리할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막 여우들의 발자국 흔적들이 내가 잠들었던 곳, 바로 머리맡까지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불을 덮어주러 왔는지, 신라면을 더 챙겨가려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고 있을 동안 이렇게 사뿐하게 왔다 간 것을 보면 과연 조금은 롬멜 장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