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생각
- #이병률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 중에서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사 -
늘 궁금했다. 시인은 어떨 때 시를 쓰는지.
언제 시가 술술 써지는지. 어떤 상태에서 오감이 예민하게 작동하는지.
이병률 시인이 말해준다.
“쓰려고 앉아 있을 때만 써지지 않고” “시를 생각할 때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용할 때만 오지도 않고” “쓰지 않으려고 할 때도 걷잡을 수 없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그렇게 온 시가
“흐렸다 갰다를 반복하는 세상 어느 골짜기에다
종소리를 쏟아 붓겠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나에게 시는 참 막무가내로 오고 간다.
불쑥 나타나 온통 분탕질을 치고는 감쪽같이 사라져 애태우게 한다.
찾아 나설수록 꼭꼭 숨어버리고, 잡고자 할수록 더 멀리 도망가 버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곁을 맴돌다가도 정작 필요할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시와 숨바꼭질하는 세월은 늘어가는데 아직도 종잡을 수 없지만
시란 놈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 둘 알아가고 있다.
시는 어둠이 걷히며 안겨 오는 푸른 새벽바람을 좋아하고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사이로 난 숲길을 좋아하고
산책길에 떠올리는 이런저런 상상을 좋아하고
일상에서 엿보는 세심한 생각들을 좋아하지만
엉뚱발랄한 아이들의 호기심도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도 시를 찾아 헤매는 나에게
가끔 시가 올 때는
눈, 코, 귀와 입을 활짝 열고 손과 발을 쉼 없이 움직일 때
어떤 그리움이 심장과 가슴을 뜨겁게 달궈 놓았을 때
엉덩이 철썩 붙이고 앉아 오늘 하루를 노려볼 때
그때.
- 자작시 <시작(始作), 시작(詩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