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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13-

13화. "그냥 좀 부탁할게. 더 묻지는 마. 그냥."

by 동노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13-

13화. "그냥 좀 부탁할게. 더 묻지는 마. 그냥."


2부.


13.


주민센터로 돌아왔다. 어쩐 일인지 조용하다. 일하는 곳이 조용하다는 게 이상한 직장이라니. 이것도 뭔가 잘못된 일이다. 팀장님. 아니, 저 팀장 놈은 또 졸고 있다. 기면증일까. 아니면 밤새 철학적 고민을 했기에 잠을 못 잔 걸까. 깨워서 내가 일을 시키기라도 해볼까. 아니다. 팀장님은 그냥 영원한 잠에 빠져버렸으면 좋겠다.


다른 직원들도 멍청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모니터를 보고 있는 거지. 일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주민센터 밖 세상은 생기 넘치는 아이의 맥박처럼 쿵쿵쿵 변화하고 있는데 이곳은 참. 그런 곳이다. 조용하고. 비생산적이며. 멍청하다. 그래도 내가 주민센터까지 다시 온 보람이 있어야 하니, 팀장님의 자리 곁으로 가서 은근슬쩍 발로 책상을 찬다. 예의가 없다고? 뭐 어떤가. 세상도 예의가 없고, 팀장도 예의가 없는데.


"으음. 으? 누구야? 아오. 강 주임이네. 생각할 게 있어서 눈 감고 있느라 못 봤어. 왔으면 티를 좀 내지."


말을 말자.


"이계성 할머니 입원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별문제 없지? 강 주임이 잘 하니까."

"의사 소견으로는 아마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짠하게 됐네. 근데 그 할머니 가족 있지 않나? 가족들한테 먼저 연락해서 병원이랑 연결 해줘. 아 맞다. 가족이랑 관계가 끊겼다고 했었나? 그러면 좀 어려우려나."

"사전에 이계성 할머니 자녀분이랑 통화를 했는데. 자녀분이 이계성 할머니랑 가족관계 단절을 주장하더라고요. 이계성 할머니다운 결말이기는 하죠."

"음. 그래. 일단 알겠어. 일 봐."


어쩐 일로 팀장님은 이계성 할머니에 관해 추가 질문을 하는 걸까. 역시 사망이라는 사건은 자기한테도 불똥이 튈 수 있으니, 신경은 쓰이나 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한테 불똥 안 튀게 하려고 하겠지. 참 못났다. 나는 저렇게는 안 늙어야겠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하고 나면 행정고시를 바로 준비할 계획이다. 이 쓰레기 같은 곳에서 벗어나야겠다. 난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니다.


이계성 할머니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 부서로 전화를 돌린다. 주소지 이전 문제는 행정팀 주민등록 담당에게, 이삿짐 문제는 복지정책과 담당에게, 사망자 집정리를 대행하는 사회적 기업에, 병원비 지원은 사회복지과 담당에게. 다행히 모든 관계자들이 OK 사인을 내어주었다. 좋다. 완벽하다.


팀장님께 이계성 할머니 집주인과 이계성 할머니 관련해서 논의해야 할 것이 있다고 보고하고, 다시 출장을 나간다. 날은 춥지만, 햇살은 따사롭다. 사거리 근처 재개발 지역에 있는 고급 아파트들의 화려함을 지나, 평범한 오피스텔과 주택들을 통과해, 똥궁빌라가 있는 가난의 공간에 도착한다. 이 망할 놈의 똥궁빌라를 대체 몇 번이나 오는 건지 모르겠다. 도착한 똥궁빌라 입구 앞에는 정갈하게 묶어놓은 종량제 봉투를 누가 애써 헤집어 놓았다. 누가, 왜 쓰레기를 헤집어 놓은 걸까. 하긴 나도 사회의 쓰레기통을 헤집는 일을 하고 있는데. 종량제 봉투를 헤집는 사람을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피식 웃고는 계단을 내려간다.


이계성 할머니의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한 남자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다. 저승사자인가. 아니다. 저승사자가 집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는 건 좀 우습지 않은가. 게다가 이계성 할머니는 병원에 있고. 그러면 누구지? 이계성 할머니의 가족일까. 휴대전화 랜턴을 비추어 본다.


"누구야!"


저승사자는 아니고 그냥 평범한 동네 술쟁이 이대윤 아저씨였다.


"대윤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

"아니 이게 누구야! 강병1동 동사무소의!"

"됐고. 나 오늘 바빠요. 추워서 여기 들어와 술 드시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볼 일이 좀 있어서. 여기 사는 할머니 많이 아파?"

"그건 개인정보라 말씀드리기 어렵구요. 근데 대윤 아저씨가 여기 사는 할머니 아픈 건 어떻게 알아요?"

"지난번에 119 구급대 오고, 생난리를 쳤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

"병원 간 건 맞아요. 근데 대윤 아저씨, 여기 사는 할머니랑 아는 사이세요?"

"아니. 너가 생각하는 그런 끈적한 관계는 아니고."

"엣헤이! 거 더러운 말은 좀 삼가세요."

"뭐가 더러워 인마! 그런 생각을 하는 너가 더러운 거야! 하여튼. 여기 사는 할머니가 나 술 먹고 있으면 가끔 순대도 던져주고 그랬어. 그러다 보니 뭐 얼굴 트고 지냈는데. 그 할머니 입원하면 이제 내 순대는 이제 어쩌나 싶고."

"순대요?"

"아니. 그렇잖아. 이 할머니가 순대 챙겨주는 게 참 쏠쏠했거든. 그거 없어지면 아쉽지."


역겹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까. 저걸 사람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어지럽다. 이를 꽉 깨문다.


"그리고 강 주임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좀 호전적이어서 그렇지. 이 집 할머니가!"

그치지를 못하는구나. 목뒤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저씨. 그냥 가."

"뭐? 이놈이 또 반말을."

"아저씨. 지금 내가 정상은 아니거든? 그냥 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가 지금 아저씨한테 몹쓸 짓 해서 내 신세 망칠까 봐 말해주는 거야."


마른세수를 계속한다. 날이 추워서인지 얼굴에 상처가 나는 느낌이 들지만. 마른세수를 멈출 수 없다. 계속 벅벅 얼굴을 문지른다. 손바닥이 미끌미끌 해진다. 피인지 땀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른세수를 멈출 수가 없다.


"그..그래도. 너 인마 조심해! 내가 한번 봐주는 거야!"


이대윤 아저씨는 겁을 먹었는지 욕 비스무레한 말들을 웅얼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똥궁빌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계단에 앉는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야 마른세수를 멈출 수 있었다. 다시 이를 꽉 깨문다. 참자. 참자. 거의 다 왔다.


이계성 할머니 집 문고리를 잡았다. 지난번 119 구급대가 뜯어놓은 문고리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문도 지쳤는지, 문이 스르륵 힘없이 열린다. 집은 냉골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어야 할까. 신발을 벗는 게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해본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계성 할머니의 명령을 떠올린다. TV 아래 서랍장. 어렵지 않게 공책 한 권을 찾았다. 이름도 모를 옛날 공책이다. 공책 표지에 눈이 멈춘다. 공책 표지에는 생이 꺼져가는 이계성 할머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기발랄한 공주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신기하게도 공책에는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았다. 공책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계성 할머니가 돈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 받은 명단일까. 아니면 이계성 할머니가 나를 대통령에게 신고하기 위해 적어둔 일지일까. 역시나 자식한테 재산을 돌리기 위한 비책이 적혀있을까.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알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집에 더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계성 할머니의 공책을 가방에 넣는다. 우선은 이제 이계성 할머니에게 공책을 전달하자. 그리고 이계성 할머니가 공책에 쓴겠다는 내용을 다 쓰고 나면, 이계성 할머니 자녀에게 이계성 할머니 유품이랍시고 공책을 무작정 발송할 예정이다. 뒤탈이 나면 어쩌냐고? 문제없다. 어차피 이계성 할머니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다. 죽으면 다 끝이다. 누군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때부터는 나중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공책을 가방에 넣고, 이계성 할머니의 집에서 나와 문을 닫는다. 물론 문이 고장났기에 문을 닫는 행위는 큰 의미가 없다. 문이 안 열리게 문밖에 무거운 물체라도 대놓아야 할까. 그만두자. 역시나 의미가 없다. 어차피 이계성 할머니 집에서 가지고 나올 게 없다. 무엇보다 이제는 이계성 할머니가 이곳에 없다. 문을 뒤로하고 몸을 돌려 계단 한 칸을 딛고 올라간다. 이제 이 집에서, 이계성 할머니에게서, 남은 건 없다. 똥궁빌라 지하의 어둠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선다.


이계성 할머니가 입원한 행운병원 12층 도착했다. 이계성 할머니가 또 무슨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에게 대거리를 할지 모른다. 만약을 위해 대동할 간호사를 찾았지만, 12층 안내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입원실 쪽 복도에서 큰 소음이 들렸다. 얼핏 눈으로 보니 1201호다. 반대쪽 복도에서 간호사와 의사가 소음의 진원지로 뛰어가고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도 1201호를 향해 전속력으로 뛴다. 1201호로 들어가 내가 본 장면은 이계성 할머니를 둘러싼 의료진이었다.


의료진들 틈새로 이계성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계성 할머니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세운다. 그 난리 속에서도 홀린 듯 이계성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의료진들도 무엇에 홀렸는지 다가오는 나를 제지하지 않는다. 이계성 할머니는 나에게 손으로 더 가까이 오라고 까딱거린다. 이계성 할머니가 병원에 실려 온 그날 이계성 할머니 집에서처럼 할머니 머리맡으로 다가간다. 할머니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 너... 싫은데... 호랑이상인 놈이라 싫은데... 마지막 그것만 좀 부탁할게. 그냥 좀 부탁할게. 더 묻지는 마. 그냥."


의료진은 정신을 차렸는지 나를 이계성 할머니와 떼어놓았고, 이계성 할머니는 병원 침대에 이끌려 복도를 지나 저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이상하게도 정신이 또렷해진다. 다만 별다른 감각은 느낄 수 없다. 손바닥을 펴서 몇 번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역시나 감각이 없다. 눈앞에 손바닥으로 보이는 게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만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황망해져 주민센터로 향한다. 팀장님께 상황을 보고한다. 팀장님은 역시나 무성의하게 알았다는 대답만 반복한다. 내 자리로 올라와 앉는다. 키보드 앞에 놓인 A4 용지에는 누가, 어떤 일로 나에게 전화했고.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메모가 되어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진이가 내 업무를 많이 해결해 준 모양이다. 수진이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퇴근 시간이다. 동료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주민센터를 나와, 사거리를 지나, 나의 집 501호로 향한다. 횡단보도에는 로또 명당에서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 보행신호가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몸에 기운이 없다. 행여나 넘어질까 오른손으로 가로수를 짚어 몸을 지탱한다. 손끝에 느껴지는 나무의 꺼끌한 감각이 생경하다. 왼손으로 내 얼굴을 만진다. 땀인지 기름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까 마른세수를 했을 때 난 피인지 모를 액체 때문에 끈적거린다. 얼굴의 모양 역시 생경하다. 왼손 검지를 내 입에 넣었다. 물컹한 혀와 거칠거칠한 입천장이 느껴진다. 역시나 느낌이 어색하다. 나는 살아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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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가 바뀌었고. 다시 집을 향해 걷는다. 그렇게 나의 집 501호에 도착한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신발장 앞에 무너져 내리듯 앉는다. 불을 켜고 싶지 않다. 청각도, 시각도, 촉각도 모든 감각을 다 닫고 싶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그대로 누웠다. 메고 온 가방에서 이물감이 느껴진다. 가방을 열어 보니, 이계성 할머니의 공책이었다. 공책을 열어 볼까. 이계성 할머니는 그 공책에 어떤 말을 쓰고 싶었던 걸까. 그냥 공책을 버릴까.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오늘 하루를 지워버리고 싶다.


냉큼 편의점으로 튀어가 이름 모를 양주를 3병 산다. 비싼 술이면 오늘의 나를 빨리 죽여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진짜 비싼 양주를 살 돈은 없으니 편의점 양주나 사는 내 꼴이 우습다. 양주 중 가장 누런색의 양주를 컵에 잔뜩 따라 한입에 털어 넣는다. 맛은 모르겠다. 하긴 박봉 공무원이 양주 맛을 알 리가 있나. 그래도 확실히 양주는 신속히 나를 취하게 해줬다. 하늘이 도는지, 내가 도는지 모를 만큼 술기운 기운차게 돈다. 그렇게 그날의 나를 죽이고. 새벽에 잠시 부활하여 한참을 토했다. 부활하여 토해낸 지 30분이 지났고, 그날의 나는 다시 한번 죽었다. 하지만 출근이라는 기적으로 말미암아 부활한다. 출근은 종종 인간에게 기적을 만들어준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 말이다. 이게 기적일지 저주일지는 모른다. 죽었다가 살았다가. 또 살았다가 죽었다가 하는 게 성경 속 기적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하는 출근이라니. 아멘.


출근을 한다. 9시가 되었고. 팀장은 자리에 없었고. 수진이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민원대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9시가 되었고. 내선전화 전화벨이 울렸다.


"강병1동 주민센터 강동노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행운병원 원무과입니다. 이계성 환자분 담당 공무원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이계성 환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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