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나는 어쩌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15-
15화.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3부.
15.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신이시어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면, 어떤 신에게 물어봐야 할까. 강남구 신사동 집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우겼던 이계성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라서 진짜 그 집에 하나님이 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단이 기독교인 중학교를 나왔는데, 이걸로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하나님이 강남구 신사동 집에 전입신고도 하지 않고, 집에 살고 있다고 강남구청에 신고해야 할까. 다 멍청한 생각이다. 어금니 쪽에 통증이 느껴진다. 욱신거리는 턱관절 어귀의 고통이 내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님 저를 인도하소서. 남아시아에 있는 인도라는 나라로 인도해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차에 치이지 않게 인도로 인도 해주시는 것까지는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동노 오빠. 이 저녁에 왜 주민센터에 들어왔어? 뭐 두고 갔어?"
하나님의 음성은 아니지만, 수진이가 일을 마무리했는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못해놓은 일이 생각나서 마무리나 할까 싶어서 왔지."
"오빠 일들 내가 거의 다 처리 했어. 메모도 해놓았는데 못 봤어?"
"봤지. 근데. 하여튼 좀 그런 일이 있어."
"오빠. 요새 괜찮은 거 맞아? 이계성 할머니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 보여."
"별 수 있나. 우리 일이 다 그렇지. 더러워도 참고 해야지."
"근데 동노 오빠. 나 재미있는 영상 하나 찾았는데 오빠한테 보내줄게. 꼭 끝까지 봐!"
"로또 번호 점지 영상이 아니라면 슬퍼질 것 같은데?"
"아니 그러지 말고. 좀 오빠가 봤으면 좋은 영상이라 그래."
"수진아. 불법적인 영상을 공유하면 형법상 문제가 될 수 있어. 난 널 신고하고 포상을 받을 수 있다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구나."
"아구 닫아! 이 오빠가 왜 날이 갈수록 밉상이지? 맞을래?"
"너에게 맞는다면 나는 중년의 위기가 시작될 것 같아."
"말을 말자. 하여튼 꼭 봐! 난 오늘은 일 끝. 나머지 내일 와서 해야지."
"고생했어.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하렴. 나의 후배야."
"좋은 일 있어? 어쩐 일로 오랜만에 실실 웃는다?"
"좋은 일까지는 아닌데. 나쁘지는 않을 일이 있어."
"또 이상한 소리 한다. 나 퇴근한다."
수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민센터 문을 박차고 나간다. 수진이가 떠난 자리를 지켜보다가 의자에 몸을 완전히 밀착시키고 천장을 본다. 몸에 기운이 없다. 하긴 며칠 동안 일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오늘은 술도 뜬금없이 많이 마셨고. 정신이나 차리자 싶어 이계성 할머니의 노트를 가방에서 꺼내본다. 그냥 지금이라도 파쇄기에 갈아버릴까. 박 여사한테도 결과적으로는 이계성 할머니 집이 정리된 꼴이니까 협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박 여사가 몇 채나 되는 부동산들을 가지고도 문제가 없었던 건, 자신이 뱉은 말과 세운 원칙을 지키는 그 담백함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지금 상황이 박 여사와 협상이 안 될 노릇도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휴대전화 신호음이 울린다. 수진이었다. 수진이가 나한테 말한 영상을 보내준 모양이다. 영상을 재생한다. 영상은 10년 하고도, 3년이 더 지난 나의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 선거 출마 연설 동영상이었다. 영상 속 시기의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곧바로 학교로 복학한 시점이었다. 그때의 나는 친구도 많고, 이런저런 행사들을 도맡아 치르던,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 그 자체였다. 다들 나를 좋아했고, 내 주변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연스럽게 단독으로 학생회장 후보에 추대되었고, 학생총회에서 당선 연설에 가까운 후보자 연설을 하던 순간이 수진이가 보내준 영상의 내용이었다. 학생회 서기였던 수진이는 후보자 연설을 촬영했었고, 그때의 영상을 나에게 보낸 모양이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보였다. 어렸고, 얼굴에 생기가 있었고, 웃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회복지학과 학회장 후보에 단독 출마한. 여러분들의 벗. 여러분들의 우상. 여러분들의 꿈 그 자체. 강동노이올시다."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영상에서 흘러나온다. 지금 내가 마주하는 풍경들과 비교하면, 상상하지 못할 만큼 생명력이 느껴지는, 즐거운 모습이다.
"저 강동노가 어떤 이유로 학과 학생회장에 도전하느냐! 그건 바로. 여러분들이 좋기 때문입니다. 더 넓게는, 저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영상 속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상 속 저들은 다들 즐거운 모양이다. 지금은 다들 잘 지내려나. 아니면 나처럼 살고 있으려나. 어떤 사람이든 다들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하물며 저는, 영광의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에 낙선한다 해도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왜냐!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숫자니, 돈이니, 근거가 있는 결론을 떠나.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이 말입니다!"
"동노야 그만 해라! 오그라들어서 못 듣겠다. 그만해라!“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말들도 영상에서 들려왔다. 영상 속 나의 말들은 지금의 내가 듣고 있자면 소름 끼칠 정도로 철없는 말인데. 다들 어떻게 저렇게 즐겁게 웃으며 듣고 있을까. 그리고 나도 어쩜 저렇게나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웃고 있는 걸까. 얼굴이 뜨거워진다. 다들 세상 물정을 몰랐기 때문에 저런 말에 웃음을 지었을 거다. 아는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한때는 매일매일 함께 다니며 웃고 떠들었는데 지금은 살아는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내가 많은 걸 잊고 살고 있구나.
"강동노 거짓말 하지마! 그냥 권력을 가지고 싶은 거잖아! 이게 무슨 선거야! 쿠테타지! 그리고 권 교수님이 인간 사랑이니 뭐니 철없는 소리 하지 말고 통계수업이나 똑바로 들어오라고 전달해달래"
"아르바이트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벗 서영준 학우님. 말씀은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안 계시지만 권 교수님께도 진심으로 사과 말씀 올려봅니다. 하지만! 딱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인간의 빛을 믿습니다. 희망을 믿습니다! 누구나 그 빛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미래이지 않습니까! 인간의 운명이고 또 행복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서영준 학우님의 잃어버린 빛까지 제가 찾아다 드리겠다. 이 말입니다."
"나 알바 가야 하니까 빨리 끝내기나 해. 인마!"
"등록금에 허덕이는 우리 서영준 학우님.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우리 사회복지학과 취업이 얼마나 잘 됩니까!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인류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인간의 빛을 지켜온 우리는 먼 후대에 빛을 지킨 성도들로 추앙받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동노 완전 사이비 교주네! 그래봤자 박봉일 거잖아. 학생회장말고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들어가서 사회복지사 지부 이런 거나 만들어라! 그게 너 나중에 국회의원 출마할 때 더 도움 될걸? 일단 빨리 끝내기나 해."
"오 나의 벗 서영준 성도님. 딱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의견은 싫습니다! 전 언제나 앞에 있고 싶습니다. 다들 술 먹고 노느라 잊어버렸겠지만.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내 말이 맞으면 다들 박수 한번 주세요!"
"됐고. 학생회장 같은 거 하지 말고. 대학원이나 가자!"
"확 마! 저거는 끝을 모르고 계속 농지거리네. 내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니란다. 여러분 제 말에 동의 하면 다시 박수 한 번 주세요!"
"박수는 무슨! 그런 놈이 행정고시 준비한다고 그러냐!"
"행정고시는 제가 제일 먼저 여러분들의 미래를 보고 오겠다는 의미에서 준비하려는 겁니다. 물론 저의 영달도 아주 중요하고!"
"우우우. 물러가라! 부정부패 학생회장 되면 나중에 크게 죄지을 놈이다. 우우우. 이번 기회에 싹을 자르자."
다들 떠나가라 웃고 있었다. 촬영하고 있던 수진이도 웃음이 났는지 카메라까지 흔들렸다. 나를 비롯한 영상 속 사람들은 이 유치한 이야기에 뭐가 좋다고 웃고 있는 걸까. 다만 지금의 나는 영상을 보며 웃고 있다. 마음이 울렁거린다. 영상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 뭐가 다른 걸까. 저 시절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의 나는 인간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들에 냉소를 넘어 혐오한다. 지금 나에게 인간은 짜증만 자아내는 일감에 불과하다. 내가 납득 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누가 대답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가 늙어버린 걸까. 문득 늙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곱씹는다. 내 치아는 이미 박살 났다. 신경치료도 많이 받았고. 이제는 임플란트도 해야 한다. 앞으로는 내 신체가 아닌 물질들이 내 몸을 채워나갈 거다. 어느새 내 몸은 공장에서 만든 것들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게 노화일까. 아마 아닐 테다. 늙는다는 건. 내 생각에 마음이 지친다는 거다. 예전에는 순수하게 세상을 한껏 누렸다. 춤추듯 살고. 희망을 가졌었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에 하루하루를 살았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실패하고, 작아지고, 희망을 갖기보다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미리 접는다. 사람이 주는 충만함보다는 나의 호의가 배신당하지 않을까. 겁을 먹고 기계처럼 하루들을 꾸역꾸역 보내버리고 있다. 그게 늙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노인이 된 게 아닐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지쳤다. 많은 걸 잊어버리려 노력하며 살았고. 잠깐 잊는 걸 넘어 잃어버리는 데까지도 성공한 것 같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의 나를 보며 '그땐 그랬지.'라며 미소를 짓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이 부끄럽다. 이걸 인정하기 싫어서 과거의 나를 바보 취급하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언가를 놓쳐버려 고장이 난 나를 조금이나마 수리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을까. 다시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과거처럼 될 수 없다는 건 안다. 다만 과거의 강동노와 비슷한 사람 정도는 되고 싶어진다.
어쩌면 쉬운 일일 수도 있다. 되고 싶은 사람이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이 아니라, 내가 한번 경험해 본 나의 과거 어느 때의 강동노라면, 지금의 나라도 충분히 될 수 있는 장래희망이지 않을까. 이미 정답은 스스로 알고 있다. 그 정답을 인정하고, 내 입 밖으로 뱉어낼 용기의 문제만 남았다. 휴대전화를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부재중 통화가 와있었다. 수진이었다. 누가 되었든 대화를 하고 싶어졌기에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빠! 내가 보낸 동영상 봤어?"
"봤지. 나 되게 젊더라."
"그렇지. 나나 오빠나 어렸을 때니까. 그거 말고 다른 감상평은 없어?"
"수진아. 하나 질문이 있는데. 너는 인간이 원래 착하다고 생각하냐. 아니면 나쁘다고 생각하냐."
"음. 오빠가 예전에 나한테 한 말이 있어. 인간은 원래 선하다고. 다만 몇 번 상처를 입다 보면, 착한 일을 하는 게 무서워지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도망 다니다 너무 멀리 떠나간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이 안쓰럽다."
"내가 그랬었나?"
"응. 오빠가 그랬었어. 그리고 오빠가 사람이 본성대로, 선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우리가 그래야 한다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 이야기 지겹도록 말하고 다녔어."
"진짜? 만취해서 그런 민망한 말을 했던 건가?"
"그건 아닐 거야.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오빠랑 대화하면 오빠가 항상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똑같았으니까. 사람이 원래 선하다는 걸 믿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이걸 되찾아 주고 싶고, 우리도 잃지는 말자고. 그때 오빠는 참 멋있었지. 지금은 영 이상해졌지만 말이야."
그때의 내가 기억났다. 나는 항상 인간이 선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렇게 믿기도 했다. 이상한 논리의 비약이지만 그래서 행복했다. 다만 옛날의 내가 했던 말처럼 이제는 상처 받기 싫어서 사람은 원래 악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버리고 사람이 선하다는 마음을 가질 용기가 이제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나마저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랬구나. 나 그랬었구나."
"맞아. 나도 그때 오빠한테 설득된 것 같아. 그래서 지금도 사람은 선하다고 믿어. 그리고 그게 나한테도 행복해. 그렇게 생각해야 나도 버티며 살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빠한테 진짜 고맙지. 나도 오빠한테 질문 하나 할래."
"돈 빌려달라는 말만 아니면 뭐든 해봐."
"이 와중에도 헛소리네. 됐고! 오빠는 사람은 다 나쁘다고 생각하잖아. 그럼 안 무서워?"
"무섭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 세상 사람들 다 나쁘다고 생각하면. 나쁜 사람들 속에 나만 덩그러니 있는 거잖아. 하이에나 무리 안에 혼자 있는 사슴 마냥. 그럼 사는 게 무서울 것 같아서."
"그렇네... 나 무섭네. 나 겁에 질려있네."
"오빠. 나도 오빠가 왜 그렇게 된지는 모르겠어. 근데 동영상 안에 있는 옛날의 동노 오빠가 더 행복해 보이더라. 그냥.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던 사람이니까.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나도 도와줄게."
"고맙다. 고맙다. 수진아."
"아! 맞다! 그리고 진짜 궁금한 거 하나 더 있어."
"말해보렴 나의 후배 수진아."
"오빠 왜 행정고시 준비하다 말았어? 오빠 고시 준비반도 합격했었잖아. 그것도 장학생으로. 우리 학교 고시 준비반 학생들 용돈도 줬었잖아."
"아... 그거?"
"내가 기억이 뚜렷한 게, 오빠 4학년부터 행정고시 준비한다고, 전공필수 강의도 2학년이랑 3학년 때 다 들었잖아. 신림동에 방도 구하고. 근데 왜 그만둔 거야? 나나 친구들이나 오빠가 행정고시 준비 그만 한다고 했을 때 엄청 놀랐었어. 뭔가 오빠는 되든 안 되든 계속 도전했을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그게. 음..."
"합격할 자신이 없었어?"
"그건 아니고. 하아...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나네. 허허허. 아마 너 말대로 불합격할 것 같아서 준비를 똑바로 안 하고 시간 버리다가 그만뒀나봐. 내가 말만 번지르르 했던 거지."
"진짜로?"
"음. 솔직히 말해줄 테니까 웃지마."
"안 웃는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노력 해볼게. 말해봐."
"문득 공부를 하다가, 책상머리에서가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사람을 살리고 싶었어. 오만한 생각이지만. 한 명의 사람이라도 내 손으로 내가 직접 살리고 싶었어. 그래서... 이 불행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지."
"역시 그랬구나. 나도 솔직히 말할게. 다들 처음에는 놀랐는데. 내심 모두들 알고 있었어. 오빠는 그럴 사람이니까. 뭐가 됐든 제일 앞에서 있을 사람이라고. 그리고 난 확신해. 오빠 하나도 안 변했어."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고맙다 수진아."
"우리 사이에 뭘. 대신 나 다음 달에 길게 휴가 써도 돼? 프랑스로 여행 가려고 하는데. 오빠가 내 업무 그동안만 좀 봐주라. 그 정돈..."
"늦었다. 수진아. 얼른 자고. 휴가는 다시 생각 해보자. 너 돈 아껴야지. 그래야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절도 사지. 나 끊는다!"
"야 이 새..."
전화를 끊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이 뭔지 안다. 나한테 필요한 건 되돌아갈 용기다. 용기를 내야 한다. 너무나 뻔하고 재미없는 답안이지만, 원래 정답은 재미가 없다. 이계성 할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확인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나라는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 중간에 쓰다가 손목이 아파서 덮어버린 나라는 책을 이번에는 완성을 시켜야겠다. 막연한 기대고, 갑자기 폭발한 생각이지만. 그 끝에서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판을 내자. 쓸모도 없으며 돈도 안 되지만. 우선은 이계성이라는 이야기의 끝을 확인해야겠다. 결과야 모르겠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이야기를 완성해야겠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다. 내가 다시 살기 위해서다. 개 같은 거 한번 해보자.
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