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많은 회사들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은 왜 효과가 없을까?
며칠 전 빠른 컴퓨터가 필요해서 컴퓨터 조립을 했다. 4~5년 전에 했었는데 그 때는 부품을 고를 지식과 조립에 자신이 없어서 조립 컴퓨터 매장에 가서 추천하는 부품으로 조립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었다. 이번에는 한 웹사이트를 찾았는데 판매 순위가 높은 부품을 가격과 보여주고 (UI가 깔끔하지는 않았다), 선택한 부품끼리 호환되는지 확인해주었다. 결재를 하자 메신저로 조립이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었고, 조립에 성공해서 잘 동작한다는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배송되고 내일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이전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며 걱정을 없애주는 경험을 여러 채널(Omni-Channel)을 적절히 활용해서 제공한 잘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라고 생각한다.
"잘된 UX 디자인은 어떤 것인가요?"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질문을 하신 분이 이전에 함께 일하던 UX 디자이너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사용성만을 강조한 UX 디자이너와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잘된 UX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좋은 답변은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한 UX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이 사용성 확보이든지, 신규 사용자 유치를 위해 디자인한 새로운 기능이든지, 결재 단계를 줄여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것이든지, 깔끔하고 명확한 비주얼 디자인이든지 관계 없이 말이다.
그렇다면 요즘 가장 핫 한 이슈 중 하나이고, 많은 회사들이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이하 DT)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자. 성공적인 DT란 무엇일까?
DT의 목적은 (1) 고객경험을 혁신하거나 (2)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서 회사의 비즈니스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DT의 결과는 고객경험이 유의하게 좋아지거나, 업무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이전 글 (https://brunch.co.kr/@dongseok17/8)에서 정리한 것 처럼 전자는 Consumer UX Design (Design for Simplicity), 후자는 Enterprise UX Design (Design for Productivity)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즉 DT의 성공 방정식은 잘 된 UX 디자인이 비즈니스에 기여하는 것과 같은 선 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공적인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은 고객경험을 유의하게 좋게 하거나, 업무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UX 디자인은 이 두가지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렇다면 최근들어 많은 회사들에서 진행하고 있는 DT 과제들의 상태는 어떨까? 아쉽게도 아직 많은 DT 과제들이 이 기본을 잘 지키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필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DT 사례와 함께 실패하는 이유, DT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특히 UX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재 진행 중인 DT 프로젝트들을 들어보면, 어떤 기업들은 고객이 사용할 모바일 앱을 만들고 있고 (이제서야 ㅠㅠ), 휴대전화에서 인터넷 접속이 많아진 것을 대비하여 모바일 앱을 개편하고 있고, 매장에 무인 키오스크를 만들고 있고, 물건을 직접 판매하는 온라인쇼핑몰을 만들고, 개인화 추천을 하는 앱/웹으로 개편하고 있으며, 기존 백엔드 플랫폼을 클라우드로 바꾸거나 MSA (Micro Service Architecture)로 바꾸고 있다.
좀더 나아가서 어떤 기업들은 이미 너무 많이 만든 앱들을 (은행들은 평균적으로 대여섯개의 앱을 운영하고 있다) 합치는 노력을 하고 있고,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적으로 기획하는 O2O (Online to Offine/Offline to Online) 과제들을 하고 있으며, 무인 상점을 오픈하고 있고, 업무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정말 많은 DT 프로젝트들이 중요한 목표를 가지고 많은 비용을 들여 진행 중이다 (많은 회사들이 어떤 DT 과제를 할지 정의하고, 기획하고, 개발할 인력이 내부에 없기 때문에 컨설팅 과제와 개발 과제를 외주 프로젝트로 진행한다. 그 비용은 보통 수십억에서 수백억이 소요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2020년 중반 부터였다고 생각한다) UX 업체들이 사람이 없어서 DT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큰 회사들이 UX 인력을 내재화하는 것 때문에 할 일이 줄어들고 있다고 많은 UX 업체들이 걱정을 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DT 과제들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현장에서 겪어본 사례에서 원인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마존을 따라 한다.
Amazon의 DT는 널리 알려져있다. 모든 DT 과제의 기획자들은 Amazon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회사에 적합한 DT는 본질적으로 회사의 상황에 맞게 진행되어야한다. Amazon에서 성공했어도 그 회사에는 맞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DT 원칙을 소개한 문헌에는 Amazon을 따라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을 정도이다.
Amazon의 Customer Obsession이라는 경영 원칙은 참조할 수 있겠으나 단순히 Amazon Go를 벤치마킹한 매장을 오픈한다든가, 킨들이나 에코, Dash의 사례를 보고 새로운 디바이스를 추가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2. DT 과제 기획을 짧은 컨설팅 과제에 의존한다.
많은 회사들이 DT 기획을 수행할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에 (또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 컨설팅 회사와 3~6개월 정도의 DT 기획 과제를 수행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컨설턴트 들은 경쟁사 분석, 사례 분석, 사내 이해당사자 인터뷰 등을 수행한다. 그들은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있고, 그 회사의 KPI를 알고 있으므로, 사내 이해당사자들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거기에 알고 있는 여러 비즈니스 사례들에서 그 회사에 적용되는 것들을 찾아낸다. 결국 여러 회사에서 진행되어 이미 알려진 DT 기획들이 정리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DT 과제 기획은 상당한 창의력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싱가폴 DBS 은행은 주택구매 앱(의 DBS Home Connect)을 출시하였는데, 이 앱은 지도기반으로 매물로 나온 집을 찾을 수 있고, 해당 집을 구매할 때 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이자는 얼마인지를 바로 볼 수 있게 하여, 집을 구매하는 절차를 매우 Simple하게 지원한다.
DBS Home Connect와 같은 의미있는 새로운 시도가 DT 추진에 매우 필요하다. 회사 내부에서는 성과가 필요하고, 시장에는 지속적인 혁신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짧게 진행되는 컨설팅 과제에서는 이런 의미있는 새로운 과제는 잘 발굴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3. 컨설팅 결과에는 좋은 말이 있는데, 실제로 구현되지 않는다.
컨설팅 회사의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가? 체계적이며, 논리적이며, 근거를 가진 명확한 메시지가 정리되어 있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우리 UX 디자이너들이 작성하는 보고서와는 차원이 다름을 인정한다). 그래서 컨설팅 결과물 보고는 대부분 잘 되는 것 같다. 경영자들이 보기에 이 보고서 대로 추진되면 상당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믿음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실무자들이 보기에는 실제적인 전술/추진 방안이 구체화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모바일 웹에서 3 클릭안에 보험 신청 가능하게"라는 컨설팅 보고서의 고객경험 목표는 매우 올바른 목표이다. 하지만 실무 UX 디자이너들은 이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막막하다. 현재의 보험 신청 프로세스와 내부의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어야 하는 어려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후 구현 과제가 시작되면 실무자들은 이미 높아진 경영진의 기대를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되고, 개발 과제는 악성 과제가 되기도 한다 (금융 프로젝트에 대한 UX 기획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중요한 원인이다 ㅠㅠ).
그렇다고 실무자들이 염려하기 때문에 진취적인 고객경험 목표를 수립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목표는 수립하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기획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혁신적인 고객경험을 목표로 UX를 기획하는 과제는 적어도 2~3개월의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즉, 컨설팅 과제 수행 후 UX 기획 과제가 수행되고 나서, 그 이후에 개발이 시작되어야 한다. 전략수립 (컨설팅 과제 목표) > 고객경험 기획 (UX 기획과제 목표) > 시스템 개발 (구현 과제 목표)는 대부분의 IT 기업에서는 익숙한 프로세스이나, 아직 이 프로세스가 익숙하지 않은 회사들이 꽤나 존재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예산과 기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경영진들은 컨설팅 과제 도출 이후에 이미 목표가 구체적으로 정해졌으니 이를 바탕으로 기간을 정해서 디자인과 개발 과제를 진행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UX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기획할 물리적인 비용과 시간이 부족하게 되고, 결국 디자인, 개발 모두 ‘컨설팅이 도출한 진취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거나, 그 당시에만 Working하는 단편적인 해결방안으로 제품, 서비스를 구현하게 되어버린다.
회사와 경영진 입장에서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으나 컨설팅의 초기 보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어가는 것을 보며 고민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결국 성공적인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과제는 전략수립 > 고객경험 기획 > 시스템 개발의 프로세스로 진행되어야 한다. 고객경험 기획 단계를 넘어뛰면 전략과 개발의 간극을 극복하기 어렵다.
성공적인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과제는 전략수립 > 고객경험 기획 > 시스템 개발의 프로세스로 진행되어야 한다. 고객경험 기획 단계를 넘어뛰면 전략과 개발의 간극을 극복하기 어렵다.
4. 고객경험과 거리가 먼 부서에서 추진한다.
최근 DT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는 분야는 금융 분야로 보인다. 카카오뱅크와 토스, 뱅크샐러드의 고객확보 및 마이데이터 사업 추진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금융 회사들은 DT를 몇년 째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모바일 웹으로 보험 가입하는 것이 쉬워졌는가? 또는 개편한 모바일 앱으로 타 은행에 송금하는 사용자가 늘어났는가? 자산 관리를 앱으로 하는 고객이 늘어났는가?
“디지털은 고객의 모든 기대를 현실화 했으며, 모든 것을 원하는 고객을 만들었습니다.” 2020년 Gartner IT Symposium에서 발표된 문장이다. 고객의 기대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나는 얼마전에 은행 매장에 간 적이 있는데 창구 직원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모바일 앱의 로그인으로 입증하면 되지 않냐고 물었는데 안된다고 했다. 말이 안되는 듯한 경험이었고,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건이었다.
고객이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추진할 과제가 완료되면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를 예측하는 역량은 DT 과제 추진에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된 DT 과제를 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방향으로 DT 과제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회사에서는 이 역할을 수행할 전문가가 없이, IT 부서(금융회사에서의 IT 부서는 서버를 설치하고, 백엔드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용량과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부서이다)나 사업부(특정 사업을 담당하는 수익을 목표로 하는 부서)에서 진행된다. 많은 회사에서 UX 디자인 부서와 많이 충돌하는 부서이다. IT 부서는 개발용이성, 운영 편의성, 비용을 걱정하고, 사업부는 빠른 출시, 수익을 고민하기 때문에 우리와 많이 부딪친다.
한 예로 태블릿으로 금융회사 영업사원 업무 시스템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태블릿의 터치 UX는 기존의 PC 기반의 UX와 많이 다르다 (https://brunch.co.kr/@dongseok17/2 에서 설명했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터치 방식에 맞는 UX를 기획하는 것이었는데, 개발 편의성을 위해 몇몇 페이지만 터치스럽게 기획하고 나머지는 PC UX를 넣어버렸다. 그리고는 직원들이 잘 쓰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UX 전략을 고민해달라고 요청이 왔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잘 만들어진 고객경험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반면에 충분하지 못한 고객경험 또한 빠르게 알아차리며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5. 고객경험 관점의 DT 추진계획(로드맵)이 없다.
DT는 고객경험의 개선을 위한 것이다. 많은 것들이 DT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고객경험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히 되어야 할 것들과, 고객이 기대하는 것들, 경쟁을 위해 타사와는 차별화 되어야 할 것들로 나눌 수 있다. 문제는 클라우드 전환과 MSA 전환과 같이 기본이 되는 DT 과제만 수행하고, 고객의 기대를 충족하며 경쟁 우위를 위한 차별화된 고객경험을 위한 과제들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굴삭기 제조 회사인 KOMATSU는 공사현장에서의 Bottleneck은 굴삭기를 얼마나 쓸 것인지를 정하는게 아니라, 굴삭기가 파낸 흙을 가져갈 트럭이 제 때 도착해줘야 하는 것임을 파악하고, 굴삭기 판매 뿐이 아니라 공사 전체의 일정을 관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경쟁사와의 현격한 차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객에게 제공할 경험 관점으로 DT의 목표가 제시되고, 이를 수행할 과제들이 기획되어 추진되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DT의 목표인 미래의 고객경험(To-be Customer Experience)이 설정되어있는가 아닌가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로 하는 미래의 고객경험이 정의되어있는가이다.
이제까지 DT를 통한 성공적인 사례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위 다섯가지 이유들은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어떤 회사에서는 이 다섯가지 이유가 서로 얽히고 얽혀서 한꺼번에 해결하지 않으면 않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논의한 다섯가지 이유를 극복하기 위한 UX 디자인의 역할을 정리해 보겠다.
첫번째로 UX 디자인은 고객에게 제공될 미래 고객경험을 정의하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고객이 가진 근본적 원을 해결하는 아이디어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엮어서 우리는 새로운 고객경험을 기획하고는 한다 (많은 회사에서 UX 전략 과제, 선행 UX 과제라고 불리운다).
두번째로 UX 디자인은 전략단계 부터 개발단계까지 모두 관여하는 사내의 거의 유일한 부서이다. 우리는 전략이 제대로 기획되는지, 개발되는지, 운영되고 있는지를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전문가이다.
세째로 UX 디자인의 회사의 전략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회사의 전략을 알아야 그에 맞는 고객경험을 기획하고 디자인할 수 있다. 여러 회사에서 UX 디자이너가 임원으로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의 차이가 보여지고 있다. 확실히 UX 디자인 조직의 리더는 사업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이 세가지 역할은 UX 디자이너이는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역할이다. 세상에서는 이런 역할의 이름을 Chief Experience Officer (CXO)라고 부른다. DT 추진에 CXO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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