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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곱시 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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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석 Jan 24. 2023

UX의 이론과 실행의 간극

Product Thinking: 학교와 온라인 강의에서 알기 어려운 역량

지난 학기에 한 대학에서 학부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UX 디자인 강의를 하게 됐다. 처음하는 학부 강의라 조금 긴장이 됐는데,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던 중 실무에 가까운 UX를 알려주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첫 수업시간에는 UX는 디자인 할 상품(Product)를 더 좋게 하는 것이 목표이며, 지난 30년동안 그 목표는 사용성을 좋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서비스 기획, 디자인을 통한 혁신 요소 발굴 및 전략 수립으로 발전되고 확대되어 왔다고 설명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실제 현장에서 실무 디자이너들이 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민 중인 UX문제를 소개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간단한 숙제를 내어보았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기간은 1주일이었다.


UX 디자인 수업의 첫번째 숙제: 사용자가 처하는 상황을 모두 찾아보고 램프 동작 규칙을 정해야 한다.


이 숙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근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의 이용 경험에 대해서 사용자가 처할 수 있는 정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각 정황에 따라 사용자들이 어떤 정보를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지를 파악한 후, 램프의 동작 규칙을 정하는 것이었다. 며칠 후 학생들이 숙제를 제출하고 나서 놀라운 것을 알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적절한 ‘관점‘으로 접근해서 수행한 학생이 불과 3~4명 뿐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특별한 근거 없이 본인의 주장만 적거나 (예: 램프의 색깔을 초록/주황/빨강으로 나누고 그렇게 구성한 각자의 생각을 적음), 몇 개 안되는 사용 정황을 커버하지 못하거나 (예: 충전기와 이어폰의 충전상태를 모두 보여주지 못함), 뚜렷한 목표 없이 수업 시간에 배웠던 방법론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 사용자 인터뷰를 하고 퍼소나를 만들어서 설명하려고 노력함).


다음 수업시간에는 숙제들 중에 그나마 잘 된 숙제들을 소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설명과 어떻게 접근했어야 했는지 설명했다. 나중에 수업 피드백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보통의 디자인 수업에서 진행하는 텀 프로젝트처럼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 수업 때 배운 방법론과 절차에 따라 (사용자 인터뷰 하고, 퍼소나 만들고,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전통적 절차) 수행할 시간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고 했다. 즉 학생들이 어려워 하고 의도와 다른 답안들을 제출했던 이유는 이런 문제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관점‘을 몰랐던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생각해보니,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신입사원들도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던것이 기억났다. 신입이다 보니 간단한 기능에 대한 UX 기획 업무를 주었었는데, 며칠 후 리뷰할 때 엉뚱한 기획안을 가지고 오거나, 어떤 경우는 고민만 하다가 결과물이 없는 경우도 꽤 있었다. 이 기획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문제 접근 방법을 설명해주면 그제서야 이해하고 빠르게 기획안을 완성했었다. 


결국 학생들과 신입사원들은 해당 기획안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즉 ‘관점‘을 몰라서 어려워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관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습득할 수 있을까? 이는 Product Thinking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제품 중심으로 생각하는 역량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데 아직 적절한 한국어는 없어서 이 글에서는 영어 표현을 사용하겠다). 


전 Facebook의 디자인 총괄이었던 Julie Zhuo의 트윗: Product Thinking은 UX는 물론 PM과 벤처캐피탈과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역량임 (출처: 트위터) 


Product Thinking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아래와 같은데, 요약하면 “무엇이 제품을 사용자에게” 더 유용하고 사랑받게 될지 알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역량이다 (the skill of knowing what makes a product useful — and loved — by people).  


The Beginning of your Design Career, Julie Zhuo, 2017

https://medium.com/the-year-of-the-looking-glass/the-beginning-of-your-design-career-549828025494).

Product Thinking 101, Naren Katakam, 2020. https://uxplanet.org/product-thinking-101-1d71a0784f60 

Product Thinking, Interaction Design Foundation. https://www.interaction-design.org/literature/topics/product-thinking 


마치 우리가 학교 또는 학원에서 배우는 UX 이론(UX 방법론과 프로세스 등)이 태권도의 태극1장, 2장, 3장이라면 Product Thinking은 태권도 실전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테니스의 포핸드, 백핸드, 발리, 전후진 스탭이 UX 이론이라면 상대방과의 경기를 할 때 필요한 것이 Product Thinking이다. 


그렇다면 Product Thinking 역량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이는 (예술적 감각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역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즉 실제 프로젝트를 하면서 기획한 UX가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보였는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 휴대폰 출시를 여러 번 해보고 감을 잡기 시작했으며, 모바일 서비스를 여러 개 출시해 보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기 시작한 것 같다. 특히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요건을 아는 경우 확실히 확률이 올라가는 것 같다. 결국 UX 전문가에게 Product Thinking은 “비즈니스를 고려해서 UX를 기획하여 상품을 성공시키는 역량”으로 정리되며, 잘 알려진 IDEO의 Innovation Sweet Spot과 바로 연결된다. 


IDEO의 Innovation Sweet Spot: 혁신은 사용자가 원하는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사업성은 있는지의 세가지 요건이 충족되야 함 (출처: UX Collective)


즉 특정 분야의 UX 전문가들이 가지는 역량이 Product Thinking 역량이다. 각 분야에서 일하는 UX 전문가들이 실무에서 경험한 수 차례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습득하는 역량으로 휴대폰 UX 전문가, 커머스 UX 전문가, 모빌리티 UX 전문가, 커뮤니티 UX 전문가, 엔터프라이즈 UX 전문가 등이 있다. 그래서 네이버의 UX 전문가가 커머스 회사에서 좋지 않은 성과를 보인 경우와, 삼성전자의 휴대폰 UX 전문가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에서 실패한 사례들이 있다. 


그렇다면 Product Thinking은 각 분야에서 오래 일해야만 생기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Product Thinking 역량은 분야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문제 해결 역량”이다. 문제를 파악하고, 사용자가 누구인지 어떤 경험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여 인사이트를 발굴하여,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 역량”은 이미 여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채용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UX 인력의 면접에서는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묻는다. 포트폴리오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인터뷰 자리에서 문제 풀이를 요구하거나, 며칠 걸리는 실습 문제를 주기도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전문성이 다른 분야라도 문제 해결 역량을 가진 분들은 회사를 옮긴 이후에도 더 좋은 성과를 내는 확률이 높았다. 


자 그렇다면 문제 해결 역량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졌다. Julie Zhuo는 2021년에 Product Thinking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한 글을 기고했다 (The Power of Product Thinking, https://future.com/product-thinking/). 여기서 그는 Product Thinking는 습관이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고 했다. 그리고 역량을 향상하기 위해서 매주 적어도 하나의 상품의 기능 추가나 UX 변화에 대해 그 효과가 어떨지를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했다. 


다시 이글의 맨 앞에서 소개한 숙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런 실습 문제들은 “문제 해결 역량”과 “관점”을 가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실습 문제를 할 수록 더 잘하게 된다). 나는 회사에서도 신입사원들을 트레이닝 시킬 때 간단하지만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과제를 주고는 했다 (그 중 하나가 롯데리아 모쉬핏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https://brunch.co.kr/@dongseok17/4). 지금도 많은 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이 UX 서적을 읽고 강의 위주의 교육을 받고 다른 사람들이 한 과제 결과물을 보고 따라하고 있는데, 강의보다는 실습 위주의 교육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번에 강의를 하게 된다면 더 많은 실습 문제들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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