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축하합니다.

아직 지키지 못한 약속

by 라라라

문득 스마트폰 화면을 보니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오른쪽 위에 빨간 동그라미 숫자가 걸려있어요. 누군가 메신저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봐요. 아마 대부분은 광고겠지만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메신저를 켜봐요. 메신저를 켜니 첫 화면에 몇몇 사람들 이름이 뜨네요. 오늘 생일을 맞은 사람들이라고 친절하고 똑똑하게 알려줘요. 훌륭한 기능이에요. 사회생활하기 참 편해졌어요. 그죠? 그런데 그 이름들 중에서 당신을 봤어요. 순간 반갑지만 기쁘지 않고, 궁금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서로 상반된 감정과 충동이 엄지손가락을 고진동 진자처럼 흔들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요. 명함을 주고받은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당신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직 큰 선물을 할 정도로 친하지는 않았지요. 여러 사람이 함께한 자리에서 술 몇 잔 기울였다고 바로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늘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생일을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뭘 선물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책을 떠올렸어요. 술자리에서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교보문고를 뒤져서 신작 여행에세이 코너에서 책을 한 권 골랐어요. 서점에서 함께 파는 작고 앙징맞은 카드를 얹어서, 아침 일찍 당신 책상 위에 올려놨어요. 당신이 좋아할지 아니면 당황해할지 몰랐지만 내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어요. 절반 정도는 그래 잘했어 라는 스스로에게 느낀 만족감, 나머지 절반 정도는 당신이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할까 라는 기대감이었어요.


당신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기쁜 미소를 지으며 오늘 점심을 사겠다고 했어요. 내게 뭘 좋아하냐고 물어서 최근에 생긴 수제버거 가게가 있는데, 거기 가서 햄버거를 먹자고 했지요. 향이 진한 패티와 번을 씹으면서 우리는 여행이야기를 나눴어요. 최근에 런던을 다녀온 이야기부터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했던 몰디브 추억까지, 당신은 저보다 아름다운 여행지를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하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데 혼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고, 누군가 같이 갈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며 입꼬리를 삐죽였어요. 걷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며 언젠가 함께 가자고 내가 그랬지요. 며칠 뒤 술자리에서도 당신은 그 약속 지키라고 눈을 가늘게 찡그렸어요. 그리고,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친구가 되었어요.


많은 해가 지났어요. 우리는 아직 산티아고에 가지 못했어요. 아니, 아마 함께 갈 일은 결코 없을 사이가 되어 버렸지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신 이름을 눌러 행복한 하루 보내셔요라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거나,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커피 케이크 세트 쿠폰을 선물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망설여집니다. 너무 슬퍼요.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디서부터 뭐가 틀어진 걸까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조금씩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것은 당신이었어요. 아마 당신 생각을 메신저 창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잊지 않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피도 맛있게 마실게요라고 했지요. 그리고 내 생일이 되면 비슷한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줬어요.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인사도 당신이 결혼한 다음 해부터는 없었어요. 문득 메신저 대화 창에 생일 인사 말고는 다른 이야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 당신과 선물을 주고받은 것이 마지막인 그 대화창을 지우지는 못할 것 같아요. 아주아주 가끔 열어보기는 하겠지만요. 수많은 광고 메시지들에 밀려서 저 아래 어딘가로 밀려서 보이지 않게 되겠지요. 굳이 당신 이름을 검색창에서 찾아 불러오지 않는다면 10년도 더 지난 사진을 아직도 걸어놓고 있는 당신 프로필을 볼 일도 없겠지요.


언젠가는 말이지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면. 아니 아니.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사진을 찍고 제일 먼저 당신에게 보내겠어요. 난 약속을 지켰어요. 함께 했던 약속에서 절반인 당신은 잊었겠지만요 라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지요.




처음 일을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행사를 기획하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공보분야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더구나 언론을 상대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고, 다소 거드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는, 더구나 나이도 지긋하신 지역 언론사 출입기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은 매우 까다롭고 다소 성가신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생일 축하는 좋은 핑계였어요. 잘 모르는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좋은 핑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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