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짓말을 해요?
‘왜 거짓말을 해요?‘ 연작은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한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반일 종족주의”입니다. 혹시 읽어 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되었던 그 책은 여러 측면에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논란 덕분에 어떤 사람들이 썼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집필했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지인들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 자위대 중견 간부인 지인은 서점에서 그 책을 들고 사진을 찍어 저에게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이 책 읽어봤냐?“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죠.
하지만 그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역사 전문가도 아니고 역사에 해박하지도 않지만, 왜 그런 책이 출간되었는가 라는 정치적 배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참고로 역사 전문가가 아니라고 했지 역사를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학생일 때 국사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을 호통치려고 꼬장꼬장했던 선생님이 한 학생을 지목해서 교실 앞으로 불러내 배운 내용을 말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의도와는 다르게(!!) 그 학생이 한 시간 수업 내용 전부를 빠뜨림 없이 모두 외워 읊는 바람에 국사 선생님은 뻘쭘해하시며 수업을 끝내셨습니다. 그 학생이 저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국사 선생님은 저를 졸업할 때까지 애정 하셨습니다.(응?) 그 영향인지 역사를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물론 가점을 준다고 해서 공부한 거지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1급을 취득하기도 했으며, 역시 지인이 사회자라는 이유로 ‘역사저널 오늘’ 애청자가 되어 단행본 전권과 ‘조선왕조실록 해설서’들을 다 읽고 집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사무실 책장에서 “반일 종족주의”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펼쳐 들었습니다. 프롤로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첫 문장을 읽고 책을 다시 덮었습니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제가 역사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저 한 문장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째, 프롤로그 첫 문장은 저자 스스로를 거짓말쟁이 패러독스로 몰아넣었습니다.
거짓말쟁이 패러독스가 무슨 말인지 궁금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기억을 잘 더듬어 보시면 여러분도 10대 학창 시절 논술이나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는 과목에서 가장 먼저 배웠을 겁니다.) 거짓말쟁이 패러독스는 다양한 변형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장이다.”라는 말을 했던 에피메니데스 Epimenides Ἐπιμενίδης 패러독스입니다. (참고로 이 분이 한 말은 신약성서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듯합니다.)
‘응?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문장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라고 물으실 수 있겠네요. 여기서 문제는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은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크레타 사람인 에피메니데스가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에피메니데스가 한 말은 참 true일까요 거짓 false일까요?
그가 한 말은 참이거나 거짓 둘 중 하나겠죠? 먼저 에피메니데스가 사실을 말했지만 그도 크레타 사람이니 그가 한 말 대로 저 문장이 거짓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는 거짓이거나,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는 사실이 아니거나, 모든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아니거나, 모든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쟁이인 것은 아니거나, 어떤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거나, 어떤 크레타 사람이 한 말은 참이게 됩니다. (뭐가 뭔진 더욱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죠? ^^)
반대로 그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서 저 문장이 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는 사실이거나,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는 거짓이 아니거나, 어떤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아니거나,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거나, 모든 크레타 사람이 한 말은 참이 됩니다. (뭔 말인지 어리둥절하지 마시고 정신 꽉 붙드세요. ^^)
이 패러독스를 풀기 위한 다양한 해법과 철학적 고찰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조금 단순하고 쉽게 풀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에피메니데스가 한 말이 참이려면 그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른 섬사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크레타 섬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그가 한 말이 거짓말이 됩니다. 그럼 다시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 없게 됩니다. 반대로 에피메니데스가 한 말이 거짓인데 명제가 참이려면 크레타 사람은 에피메니데스 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시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이걸 “반일 종족주의” 첫 문장에 간단히 적용해 보겠습니다. 저자는 한국사람이고 책도 한국 문화 속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거짓말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이 사실이라는 그 문장이 참이려면 그 거짓말 문화 창작물 중 하나인 “반일 종족주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 저작이거나 책 속에 담은 내용은 거짓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 세 명이 공동 저술했기 때문에 한국에 거짓말 문화가 있다는 것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거짓이 됩니다. 반대로 저 문장이 거짓인데 명제가 참이려면 “반일 종족주의”는 한국에서 나온 유일한 저술이어야 하는데, 이전에도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셨으니 한국에 거짓말 문화라는 것이 없거나 저 문장은 참일 수 없습니다. 결국 저자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
둘째, 거짓말은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패러독스는 어려우니까 문장을 하나하나 해체해 보겠습니다.
문화는 어떻게 형성될까요? 특정 사회에서 일정한 경향성과 지속성을 가지면서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다양합니다.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아주 오랫동안 다루어진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통상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로 ”특정한 사상, 이념, 가치, 규범, 문화“를 꼽습니다. 그 핵심 요소들은 각각 독립된 변수라기보다는 사회라는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영향을 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원칙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그 시스템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결국에는 시스템이 지속성을 가지는데 필요한 기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반일 종족주의” 첫 문장은 한국은 극단적인 저신뢰 사회라는 명제와 같습니다. 모든 한국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말로 귀결됩니다. 그러한 명제가 참이려면 한국이 저신뢰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됩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것은 공동체 규모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외부인이 빈번하게 그것도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가족과 같은 혈연 공동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씨족 사회에서 출발해 문명이 진화하면서 구성원 수도 차츰 증가합니다. 인류학자들이 내어 놓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공동체 인구가 약 1500명을 넘게 되면 더 이상 혈연관계라는 공감대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종교나 민족이라는 도구가 사용됩니다. 공동체 규모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고 배타적 성격을 지닌 지리적 경계선으로 타 공동체와 구분이 되는 수준으로 규모가 성장하면서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과 같습니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사회가 성장하는 단계별로 구성원들이 지향해야 할 사회적 이상 Social Ideal이 제시되고, 그 이상적 개체가 갖추고 따라야 하는 사회적 규범도 함께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한 규범이 혈연이라는 본능적 유대감이 수행했던 기능을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저신뢰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현상은 거대 공동체 규범이 지향하는 바와 배치되기 때문에 지속되거나 문화로 자리잡기 어렵습니다. 저신뢰 현상이 확산되고 규범이 작동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지속성을 상실하고 붕괴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신뢰 현상은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물론 특정 사회가 저신뢰 현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수준으로 고도화되었는데 일정한 경험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저신뢰 현상을 궁극적으로 억제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거대한 현대 사회 내에서 소규모 단위 공동체를 형성하고, 개인들은 그 안에서 정체성과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신뢰 현상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주류로 성장해서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거짓말은 인간이 타인과 나누는 커뮤니케이션 유형 중 하나입니다. 자신을 타자화해서도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 즉 상대가 필요합니다. 왜 거짓말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문화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거짓말이 문화가 되려면 특정 사회 구성원들이 발화하는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일정하게 거짓을 강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구성원 대부분에게, 지속성을 가지고 작용해야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근대 이후 사회에서 그러한 여건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이 유일합니다. 특히 다른 구성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강요하거나 생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매우 쉽게 체득하게 됩니다.
만일 거짓말이 문화로 자리 잡은 사회가 있다면 그곳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들이 배척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풀기 어려운 또 다른 패러독스에 직면하게 됩니다. 개인이 속한 가장 작은 단위인 혈연 공동체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동일하게 깊은 유대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연 공동체에서는 거짓말이 문화로 자리잡기 어렵습니다. 앞에서 제시한 유형과 정반대로 거짓말하는 구성원은 최연장자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처벌을 받고, 심하면 공동체에서 추방까지 당합니다. 설사 거짓말하는 구성원이 계속 발생하고 증가한다면 신뢰를 상실한 혈연 공동체는 결국 해체되고 지속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거짓말이 문화로 자리 잡은 혈연 공동체가 소멸되면서 거짓말 문화는 함께 소멸합니다.
혈연 공동체 내부는 거짓말 문화가 자리잡기 어렵다 치고, 어찌어찌하여 외부 구성원에 대해서만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받는 문화가 있다고 해봅시다. 거주 가능한 토양면적 대비 인구분포가 극적으로 옅어서 외부인과 접촉할 기회가 적으면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생물학적으로 그런 환경에서는 종이 생존에 필요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부인이 가진 DNA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한 필요성은 타지인, 특히 남성이 찾아온 경우 공동체 중 임신이 가능한 여성과 맺어주는 조금 우울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추측할 수 있는 조건이 있기는 합니다. 각각 독립된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다가 특정한 목적 때문에 접촉하면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입니다. 극심한 갈등이 분출하는 전쟁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편이 가진 것과 추구하는 목표를 감추고 속이는 은폐 隱蔽 concealment, 엄폐 掩蔽 cover, 기만 欺瞞 deception들과 같은 것이 전쟁에서 기본 전술로 취급받는 이유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속이지 못하고 반대로 내가 어처구니없이 속으면 죽습니다.
(수렵 본능도 비슷하지 않냐고 하실 수 있는데, 인류는 농경과 유목사회로 진입해 너무나도 오랜 세월 생활하다 보니 먹잇감을 공격하기 위해 자신을 은밀하게 감춰야 할 필요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더구나 지배종으로 자리 잡은 이후로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과시하거나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부풀리는 행위가 공동체를 지키는 것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따라서 여기서 해당 유형은 제외하겠습니다.)
또 다른 조건으로는 낯선 구성원들이 하나로 모여 집단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도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대부분 경쟁과 갈등이라는 문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에도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그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 타지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유입되어 도시를 형성했습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제한적 자원을 두고 다른 낯선 구성원과 경쟁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거짓말이 문화로 자리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 도시에서 지배권력을 가진 계층은 서로 기본적인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구성원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거나 규율을 강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는 본능적으로 경쟁과 갈등을 통해서 입을 가능성이 있는 손실을 회피하려고 노력합니다. (이후는 다시 앞선 설명으로 회귀하게 되어 생략하겠습니다.)
자, 거짓말 문화가 왜 형성될 수 없는지 충분히 이야기를 한 듯합니다. 그리고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첫 문장만 읽고 덮은 이유도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 책에 담긴 주장들에 대한 역사적 반박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아래 참고자료에 추천 도서를 넣겠습니다. 독서가 힘드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역사 전공자나 전문가분들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전문가를 자처하며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다른 거짓말들. 그래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거짓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도 있지만, 진실인데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하는 불필요한 노력이 소모됩니다.
다른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당신! 당신도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입니다.
참고자료
야마오카 에쓰로, 안소현 옮김, 거짓말쟁이의 역설, 서울, 영림카디널, 2004.
데이비드 데스테노, 박세연 옮김, 신뢰의 법칙, 파주, 웅진씽크빅, 2018.
유필무, 한국의 시민사회와 새로운 진보, 서울, 논형, 2004.
호사카 유지, 신친일파, 파주, 봄이아트북스, 2020.
김호경 외, 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 파주, 돌베개, 2010.
호사카 유지,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 1, 서울, 황금알, 2021.
이영훈 외, 반일 종족주의, 서울, 미래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