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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시간이 느려진다.

소소한 일상 #3

by 라라라

원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물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시간이라는 녀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정하고 균일한 상수가 아닙니다. 실제로 산에 사는 사람과 평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아주 작은 차이지만 다르게 흐릅니다. 20세기 초 아인쉬타인은 정밀한 시간계측장비가 없었지만 물리학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벌써 글을 읽는 눈에서 초점이 흐려지고 동공이 흔들리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봐 주세요.


시간은 중력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더 큰 질량을 가진 물체는 주변에 있는 시공간을 더 많이 왜곡시키고, 그 영향으로 그 물체 주변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릅니다. 이해가 어렵다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블랙홀과 가까운 밀러 행성에 잠시 다녀왔을 뿐인데 우주선에 남아 있던 로밀리 박사에게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게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냐구요? 이제 그 물리학 법칙을 사랑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주에서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심지어 부피가 없어도 중력을 가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질량이 시공간을 왜곡시켜 주변에 있는 다른 물체를 자신과 가까운 곳으로 끌어당기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도 그런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길을 가다가 바로 그 사람이 맞은편에서 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일부러 조금이라도 그 사람 동선에서 가까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야 눈이라도 마주쳐 인사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짐짓 미워져서 일부러 멀리 돌아가도 얼마 가지 못해서 그 사람의 주변을 맴돌게 됩니다. 마치 저 멀리 태양계 바깥으로 도망갔다가도 다시 끌려오는 혜성처럼 말이지요.


다행히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려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면 길을 걸을 때나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붙어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 않아도 말이지요. 두 사람 사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이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미세한 감각들 하나하나가 활짝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바깥에서 보면 두 사람 사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중력장이 점점 더 왜곡되어 바깥과 비교했을 때 시간이 솜털만큼이지만 느리게 흐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시간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것을 관찰하고 감각을 더욱 잘 느낄 여유를 얻게 되거든요. 마치 방사능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얻게 된 스파이더맨이 이전과는 달리 자신을 괴롭히던 녀석의 주먹을 피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어찌어찌하여 두 사람이 하나가 됩니다. 뭐 행복한 결말인지 불행이 시작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사랑을 나누는 순간, 각각 질량을 가지고 있던 두 물체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갑자기 질량이 두 배 가까이 (아아아...알았어요. 1.5배 정도라고 칩시다.) 늘어나고 당연히 주변 시공간은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왜곡됩니다. 한동안 일거리가 없어 개점휴업 상태이던 내부 기관들이 신경전달물질들을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영향으로 그렇지 않아도 더디 흐르던 시간은 마치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이지요.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고, 반대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래 둘로 존재했던 물체가 영원히 하나로 있을 수는 없는 법. 두 사람은 떨어져 각자 자신이 속한 시공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잠깐이지만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함께 있을 때 맛본 느리게 흐르는 시간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꾸 그 느릿느릿한 시간대로 돌아가고 싶어 집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사는 지구의 표면에서는 사물이 자연스럽게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쪽으로 향합니다. 물체가 떨어지는 것, 그러니까 두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것도 공간 사이에 발생하는 시간차 때문입니다.


자신이 홀로 머물고 있는 외로운 공간, 그 미세하게 빠른 시공간에서는 이상하게 불안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존재는 서로를 찾고 다시 하나가 됩니다. 아주 가벼운 깃털만큼이지만 느려진 시간에서 비로소 여유와 안정을 되찾습니다. 결국 상대 품속에서 속삭이게 되지요. “더 꼭 안아줘요.” “응. 다시는 놓치지 않아."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된 그 순간, 순간은 영원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이지요.


사랑하면 젊어진다고들 하잖아요.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시공간 속에서 머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어지는 거랍니다. 그러니 사랑하세요. 그리고 더 많이 상대를 꼬옥 안아 주세요. 중력이 배가되어 시공간은 더 크게 왜곡되고, 오래오래 안아주면 안아줄수록 장수하실 거예요. 그 사람 몸통에 살집이 붙더라도 미워하지 마세요. 중력이 커진 만큼 시공간은 더 크게 왜곡되고, 시간은 더 느리게 흘러갈 테니까요.



참고자료

카를로 로벨리, 이중원 옮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서울, 샘앤파커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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