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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19. 2023

일단, 높은 고하도高下島

전쟁을 준비하기에 최적이었던 섬

이번에도 섬입니다. 아마 목포 머물면서 방문하는 마지막 섬이 될 듯합니다. 목포 앞바다와 다도해에 펼쳐져 있는 모든 섬을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가볼 만한 곳은 대부분 다녀왔다고 생각합니다. 외달도, 신안, 진도, 해남, 나주....... 아, 해남과 나주는 섬이 아니군요. 뭐 어찌 되었든 많은 도움을 받아 잘 돌아다녔습니다. "글을 보니까 진도밖에 없구만 무슨 섬을 다 다녀왔다는 거냐?"라고 물으실 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습니다. 절대 귀찮다거나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섬들을 소개하는 글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쓰겠습니다.




이번 섬은 고하도입니다. 이름에 대한 유래는 높은 산(유달산) 아래에 있는 낮은 섬이라서 고하도 高下島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헌에 따라서 보화도 寶化島, 조금 다른 한자를 쓴 보화도 寶和島 또는 보화도 寶花島라고 기록되었거나, 고하도 高霞島라고 적힌 곳도 있다고 합니다. 지역주민들은 섬이 칼처럼 길고 뾰족하게 생겼다고 해서 그냥 칼섬이라고 부르거나, 섬 끝부분이 용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섬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특히 난중일기에는 보화도라고 기록되어 있어 한때 학계에서 해당 지명이 어디를 뜻하는지 별도로 연구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난중일기에는 장산도가 발음도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옛 지명은 대부분 순우리말이었지만 이것을 문헌이나 공문서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뜻이나 음을 빌려서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고하도라는 지명도 순우리말로 불렸겠지만, 개인이나 공공기관이 이를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처럼 고하도라고 명시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고하도를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 '高霞'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霞는 놀 또는 노을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그래서 高霞라고 하면 노을이 높거나 매우 아름다운 노을이라는 뜻이 됩니다. 목포에서 제일 높은 유달산이나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다순구미 언덕에서 바라보면 고하도 너머로 해가 지면서 생기는 노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던 예전, 목포 해안 가까운 곳에서 조금 올라간 구릉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이들은 늘 고하도가 노을로 붉게 물드는 것을 바라봤을 겁니다. 당연히 목포사람들 마음속에 그 섬은 노을이 아름다운 섬이라는 이미지가 늘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리마당 언덕에서 째보선창을 바라본 옛 모습입니다. 목포 앞바다 너머 고하도가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글에서는 노을이 아름다운 고하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뭐냐 이것도 신종 낚시냐?"라고 화내시는 분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 노을이 아름다운 고하도 이야기를 이어서 하겠습니다.)




자, 이제 고하도로 가 보겠습니다. 고하도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루트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 번째는 목포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유달산 북쪽에 있는 북항 승강장에서 탑승하면 고하도에 있는 승강장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이 부분도 고하도 다음 이야기에서 소개하겠습니다.) 목포대교와 케이블카가 생기면서 고하도가 훌륭한 관광지로 조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2020년 COVID-19가 한창일 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대면 관광지를 선정해서 발표했는데, 그때 고하도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대중교통이나 자가차량을 이용해서 목포대교를 건너가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이 제일 빠르고 저렴합니다. 목포역을 기준으로 택시나 승용차를 이용하면 20분 정도 걸리고, 버스를 이용하면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세 번째는 영산강하구둑에 있는 삼호대교를 지나 영암을 거쳐 목포 신항만으로 이어지는 신항교를 건너가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이 가장 오래 걸립니다. 차량을 이용해도 목포역에서 약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이번에는 차를 몰아 고하도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할 곳은 이충무공 기념비가 남아 있는 유적지입니다. 이순신은 명량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에 고하도로 진을 옮기고 이곳에서 106일 동안을 머물렀다고 합니다. 아무리 큰 승리를 거뒀다고는 해도 남아 있는 전력이 너무 약해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전쟁을 견뎌내려면 재정비가 필요했습니다. 여러 곳이 후보지로 검토되었지만 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곳 고하도가 먼저 낙점되었습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서북풍을 막아주고 전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며, 섬 안을 둘러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아 이곳에 머물기로 작정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섬에 남아 있는 유적은 크게 당시 축조했던 고하도진성 흔적과 1722년에 이충무공 공적을 기려 세운 기념비입니다. 고하도진을 쌓아 올리면서 이순신은 괴멸 수준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전력을 복원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목포는 영산강을 따라 내려오는 조운선과 많은 배들이 지나는 곳이고 인근 해역에 있는 섬에서 소금을 비롯한 다양한 생산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그러한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충분한 군량과 전선 53척, 장병 9천여 명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준비과정이 결국 노량해전까지 이어져 임진왜란을 종결로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판옥선 40여 척을 건조한 것이 수군 전체 전력에 크게 보탬이 되었습니다.


고하도 복지회관 앞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유적지로 향해 봅니다.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기념비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기념비에 적혀있는 공식 명칭은 '충무이공유허기사지비 忠武李公遺墟記事之碑'입니다. 이 기념비는 이순신이 고하도에서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을 후세에까지 전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이순신 5 세손이자 삼도수군통제를 지낸 이봉상이 1722년에 건립했다고 합니다. 유적을 찾아가 보면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고, 홍살문과 실제 비를 모신 모충각 慕忠閣이 있습니다. 원래 비는 선착장에서 언덕 위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외롭게 서있었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훌륭한 곳이었다고 합니다만 세월이 오래 지나 풍화에 바래고,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총을 쏴 일부가 훼손되는 등 손상이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광복 후 1949년 모충각을 세워 비를 모시고 이곳에서 충무공탄신제를 거행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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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일본인 또는 일본군이 총을 쐈다는 흔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때 구전으로만 전해져서 사실 유무를 입증하기 어려웠는데, 1928년 8월 1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도서순례: 고하도편'에 주민들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1910년 사진에도 훼손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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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유적을 다 돌아봤으니 제일 유명한 해상데크 산책로를 가 보겠습니다. 총길이가 1.9킬로미터에 달하는 탐방로는 배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유달산, 목포항, 목포대교 같은 경관은 물론 고하도 동북 해안 거의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해상테크로 들어가려면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는 고하도스테이션을 지나야 합니다. 건물 옆을 지나서 바로 섬 정상부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섬 정상부에는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고하도전망대도 있습니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명지 100선에 꼽힌다는 길을 걸어보겠습니다.


하지만 해안데크길로 가는 길이 조금 험난합니다. 산책로는 케이블카 고하도스테이션에서 고하도 반대편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하도를 넘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총 150개 계단을 올라가야 77미터 높이라는 고하도 정상에 겨우 오를 수 있습니다. 계단 숫자도 모르고 그냥 올라간다면 조금 힘들고 짜증이 났을 겁니다. 다행히 계단 한 개 한 개마다 나이를 붙여서 '150세 계단'이라고 해서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장수한다는 의미를 은근슬쩍 부여해서 계단을 올라야 하는 관광객들 다리에 힘을 실어 줍니다. 만일 계단을 다 오르면 장수할 수 있다는 유혹에도 정상까지 오르기 힘들다면 중간에 작은 둘레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늘이 진하게 드리워있어서 따가운 햇살을 조금 가릴 수 있고, 주변에 나무들이 가득해 호흡도 편합니다. 하지만 조금 낮은 높이에 있는 길이라는 것일 뿐 길이가 단축되거나 편하고 수월한 곳은 아니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하도 정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멀리 유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가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군데군데 목포시가 보이기도 합니다. 한참을 지나 드디어 가장 높은 곳에서 고하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고하도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방문한 기간에 내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서 올라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높지 않지만 높게 느껴지는 고하도 정상 능선을 걷고 나니 갑자기 쉼터가 필요해졌습니다. 1층에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가 있어 다행입니다. 들어가 땀과 목을 식히며 창문 너머 전경을 바라봅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전망대 최상층부까지 가려면 조금 수고스럽겠지만, 올라간다면 분명 멋진 풍광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바로 발걸음을 휘적휘적 저어 나가봅니다. 전망대가 목적지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다시 계단이 나옵니다. 아까와 비슷한 숫자, 아니 해수면과 가까운 곳까지 내려가야 하니까 더욱 많은 계단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내리막이라 다행이지만, 다시 오를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쉬어집니다. 그래도 오후가 되면 고하도 너머로 해가 지나가서 해안데크길은 대부분 그늘입니다. 가급적 고하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산책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다는 의도가 잘 드러나는 산책로입니다. 해안절벽에서 가까운 곳은 5~6미터, 먼 곳은 1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구조물을 세우고 그 위로 산책로를 만들었습니다. 칼처럼 긴 고하도 능선이 바람까지 막아서 습하지만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기분은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데크길을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목포 전경이 힘을 조금 덜어줍니다. 서쪽으로 이어진 산책로에는 중간중간 이순신 장군과 용 모양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용머리 조형물에서 돌아 나오면 영산강 상류 방향으로 이어진 산책로 끝에는 고하도 해안동굴이 나옵니다. 194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목적 동굴로 섬 전체에 총 14개가 발견되었고, 현재까지 11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모든 배는 고하도를 지나지 않고서는 목포항과 영산강 상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제국도 그러한 조건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해군전력이 한반도에 다다르는 상황을 가정해서 방어전략을 꾸몄습니다. 다양한 방어와 공격 방법 중 기습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은 전술에서 가장 기초에 속합니다. 일본군은 적 함선이 좁은 목포 앞바다에 진입한다면 후미진 고하도 바위절벽 아래에서 사람이 조종하는 어뢰잠수정으로 공격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동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군사시설 잔해는 목포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 남아있습니다.



고하도 자체가 아름답다거나 비경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고하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지리적 위치가 중요도나 활용도를 높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그러했고, 일제강점기에도 그러했고, 부흥을 꿈꾸는 현재 목포에게 그러합니다. 하지만 고하도는 더 이상 섬이라고 하기 어려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신항만과 연결되어 대단위 간척사업이 이미 진행되었고, 신항만과 연결된 부위에도 아직도 방조제 축조와 배수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아마 머지않은 시일 내에 고하도에는 목포항을 바라보고 있는 절벽과 해안데크만 남을 것 같습니다.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해군 3함대사령부가 확장이나 개발을 막아주고는 있지만 그것도 그리 큰 장애물이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것들은 운이 따라 준다면 미래에도 볼 수 있겠죠. 선조들이 고하도를 높이 평가했던 이유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입니다.



참고자료

김주미, 목포 여행 레시피, 서울, 즐거운상상, 2016.

최성환, 대한민국 도슨트 03 목포, 서울, 21세기북스, 2023.

노대현, 목포산책,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관람 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 787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제한 없음. (해상데크 출입은 09:00~22:00)

[주차 정보] 마을 입구에 공영주차장 있음.


<함께 보면 좋은 것들>

*섬 입구에 고하도 목화체험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육지면 재배지라는 역사를 테마로 만든 공원입니다. 어른들에게는 유치할 수 있지만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곳입니다.

*섬 한복판에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이 있습니다. 규모가 크고 신기한 전시물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목포신항에는 그 유명한 세월호가 녹슨 채 정박해 있습니다. 거대하고 조금은 흉물스러워보일 수 있지만 아픔을 함께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기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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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너무 달달한 꿀팁!>

*해상데크 산책로로 가기 위해서는 차량을 해상케이블카 고하도스테이션 전용 주차장에 세워야 합니다.

*차단기도 있고, 주차요금 정산기계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금은 무료입니다.

*괜히 산책로를 다녀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노상에 불법주차 하거나 진입해서는 안되는 구역에 주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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