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어느 날 싱클레어에게 구원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구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으로부터 왔다. 전학생 데미안. 미망인의 아들. 크로머로부터 싱클레어를 구해내는 구원자.
데미안이 새로 이사 온 전학생이라는 설정은 기존에 본인이 속해있던 세계를 두고, 다른 세계로 내려온 메시아임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메시아는 무엇을 위해 온 것일까.
지난 글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크로머는 우리 인류의 '원죄'와 그 '원죄의 매개자'를 상징한다.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가 등장한 이후 우리 인류는 늘 '원죄'로부터의 죄책감과 싸우며 살아왔는데, 데미안이 선사하는 구원은 바로 그 '원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엑소테릭(exoteric)은 피지배 계층의 사상이며,
에소테릭은(esoteric)은 지배 계층의 사상이다.
지금까지 엑소테릭(exoteric)의 대중 종교는 우리 인류를 '원죄'의 도그마에 가둔 채,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을 말살해 왔다. 인간 개개인이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죄인이라는 생각을 깊숙이 각인시키는 것은 망아지처럼 날뛰는 인류를 통제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소수의 지배 계층 사이에서 비밀리에 전승되어 온 비의(秘儀)는 다르다. 그것은 대다수가 신봉하는 기존의 상식과 도그마를 파괴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으며, 통과의례를 거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인간이 '앎'을 통해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슬을 던져버리는 경지에 이르자 깨달음과 자유, 그리고 새로운 창의력이 주어졌다. 나는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한 말의 숨은 속뜻이 결국 비의(秘儀)를 통한 해방을 의미한 것이었다고 믿는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와 이야기를 나눈 첫날, 싱클레어의 집 현관에 장식된 '매'의 문장(紋章)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매'는 아주 중요한 상징인데, '매'는 이집트의 신 호루스를 뜻한다. 이집트에서 호루스는 매의 머리를 한 남신이며,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관장하는 통치자 즉, 지배 계층을 상징한다. 이런 연유에서 이집트의 왕이었던 파라오들은 자신들을 호루스의 계승자로 여기며, 호루스로부터 보호를 받는 존재라고 여겼다.
흔히 인터넷에서 일루미나티 또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전시안' 역시 호루스의 눈을 나타내는데, 이는 에소테릭(esoteric) 전승자들의 권위와 그들이 믿는 신의 전능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싱클레어의 집 현관에 놓여 있던 '매'의 문장(紋章)이라던가, 소설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표현인 '알을 깨고 날아가는 새'와 같은 문장(文章)은 결국 싱클레어가 에소테릭(esoteric) 비의(秘儀)의 전승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읽혀야 정확하다.
여기에 덧붙여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상징이 있는데 그것은 데미안이 '과부의 아들'로 나온다는 점이다. 참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화나 전승 중에 '과부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방금 언급한 이집트의 신 호루스 역시 남편 '오시리스'를 잃은 과부 '이시스'의 아들이었으며,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이스라엘 솔로몬 성전을 건축한 마스터 건축가이자, 모든 프리메이슨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꼽히는 '히람 아비프' 역시 과부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덧붙여 성경 속에는 구약 시대의 엘리야와 신약 시대의 예수가 각각 과부의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는 내용이 나오는데,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든 '과부의 아들'들의 경우, 하나 같이 죽음과도 같은 시련에서 부활하는 선택받은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로서 헤세가 데미안을 '과부의 아들'로 설정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주제인 카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에 관한 색다른 견해를 전한다. 성경 속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낙인찍혀 모든 인간에게 비난받았다고 알려진 카인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할 만큼 강한 존재였으며, 신이 그에게 '표적'이라는 훈장을 주어 평생 보호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성경에는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이 등장한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니 카인과 아벨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자,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자. 도대체 왜 카인은 아벨을 죽여야 했으며, 신은 왜 카인에게 '표적'을 주어 평생 그를 보호한 걸까. 여기에도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가 숨기고 있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 있다. 성경에 적힌 이야기를 영적인 지식 없이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경우, 단순히 인류 최초의 살인에 대한 기록과 '살인은 나쁜 것이다'라는 일차원적인 교훈만이 도출될 뿐이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대해서는 고대 유목민과 농경민의 대립을 나타낸 것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먼저 우리는 '카인'과 '아벨'이라는 이름의 의미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카인'이라는 이름은 '얻다, 획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벨'이라는 이름은 '공허, 무(無)'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고 하는 이야기 속에는 사실 '공허를 깨뜨리고, 무언가를 얻음'이라는 내러티브가 녹아있는 것이다.
'아벨'은 무언가 영속적인 것, 빛이 있기 전에 빛을 존재하게 하는 매질이자 모든 만물의 본바탕인 에테르를 나타낸다. 반면 '카인'은 무언가 유한하며, 입자화 된 것, 우리의 물질계와 번영을 상징한다. '아벨'로 대변되는 '무'의 세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직 안정만이 있을 뿐, 그 상태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에서 유로 가는 '창조'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무'로 대변되는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그 공허를 죽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카인'이 '아벨'을 죽인다고 하는 이야기 속에는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와 새로운 창조라는 상징이 암시되어 있다. 게다가 이는 단순히 '아벨'에 대한 살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편에서 이야기했듯 덜 아름답고, 더 지루하며, 황량하기만 한 '아버지의 세계'에 죽음을 고하는 것이다.
'아벨'을 죽인 '카인'은 신으로부터 쫓겨나지만, 결국 새로운 땅에 정착하여 인류 최초의 도시를 만드는 건설자가 된다. 사실상 지금까지의 인류는 카인이 세운 문명을 이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에서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낙인찍혀 망아지처럼 날뛰는 인간들을 교육시키는 데에 좋은 본보기로 활용되지만, 에소테릭(esoteric) 비의(秘儀)에서 '카인'은 인류 최초로 문명을 만든 건설자이자, 우리의 물질계를 일으킨 최초의 '창조 행위자'로 일컬어진다.
그렇다면 신은 대체 왜 '카인'에게 '표적'을 주었으며, 평생 그를 적으로부터 보호했을까.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 이 모든 계획이 전부 '아버지의 세계'에 속해있기 때문이었다. '카인'은 신을 대리해 창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극성의 법칙에 따라 창조는 반드시 파괴를 동반하며, 생명은 죽음을 수반한다. 우리의 우주는 지금도 '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며, 우리 인간의 모든 경험은 결국, '신'의 경험을 위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은 그저 '카인'의 손에 대신 피를 묻힘으로써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을 뿐이다. 마치 데미안의 손을 통해 크로머를 극복해 낸 싱클레어처럼.
그렇게 신을 도운 '카인'과 싱클레어를 도운 '데미안' 모두 쓸쓸히 잊힌 채 한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원래 구원자란 철저하게 버림받는 법이니까. 그렇게 데미안은 카인의 후예가 된다.
이동수
돌 하나가 우물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다. 그리고 긴, 몹시 긴 시간 동안 카인, 쳐 죽임, 표적은 바로 인식, 회의, 비판에 이르려는 내 시도들의 출발점이었다.
- 데미안 '카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