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방학이 끝난 싱클레어는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간다.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카인이 그랬던 것처럼 드디어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떠나게 된 것이다.
선하고 안락하기만 한 세계를 벗어난 싱클레어는 그때부터 혼란에 빠진다. 본인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인간이라 생각한 그는, 스스로를 지독한 자기혐오와 고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어쩌면 '원죄'의 딱지가 붙은 채 낙원을 떠나게 된 아담과 카인 또한 싱클레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마도 아담은 뱀을 원망했을 것이고, 카인은 자신의 제물을 받아주지 않은 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한동안 자신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세계'와 멀어지게 한 데미안을 탓하며 지낸다.
가끔 '영지주의'나 '신비주의' 같은 것들에 빠져 헤매다 보면 문득 '앎' 그리고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 자체에 원망 섞인 자조감이 들 때가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아는 무언가가 생기게 된다는 것, 결국 비의(秘儀)에 입문하게 된다는 것은 어느 순간 목에 걸린 가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과도 같아서 차라리 모르고 살 때가 더 편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하튼 싱클레어는 이제 '아버지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절반의 세계에 막 발을 내디딘 참이다. 그는 마치 중2병 걸린 소년처럼 방황하며, 사춘기의 축축한 감상과 술에 젖어 지내기 시작한다. 더 이상 성탄절은 즐겁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혀 퇴학 경고를 받는다. 그는 데미안에게 이따금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답은 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우연히 공원에서 한 소녀를 보게 되고, 그녀를 열렬히 흠모하게 된다. 싱클레어는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지만,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구원의 여인 '베아트리체'에서 이름을 따와 그녀를 베아트리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녀를 자신의 타락한 삶을 구원해 줄 여신으로 삼은 이후, 싱클레어의 모든 행동은 베아트리체에게 봉헌된다. 그의 습관과 말투, 자세 등 삶의 모든 부분이 결국 베아트리체에 대한 예배로 바뀐다.
여기서 베아트리체는 싱클레어가 처음 자신의 방식대로 정립한 '진리' 또는 '구원'의 형태다. 이제껏 아버지의 규율과 데미안의 가르침만을 따르던 그가 최초로 자신만의 신상(神像)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싱클레어는 당시 자신을 괴롭히던 성적 욕망을 베아트리체에 대한 숭배로 억누르는데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본성을 금욕과 정결함에 대한 강요로 다스리는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를 닮았다.
베아트리체와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의 표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여성원리'를 의미한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적 요소로서 남성원리(Animus)와 여성원리(Anima)의 대립을 들었는데 전자는 인간의 좌뇌를, 후자는 인간 우뇌의 역할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경우 좌뇌는 논리적/분석적 사고를 통한 과학, 수학 능력을 담당하며, 우뇌는 창의적/감정적 사고를 통한 연민, 양육, 배려, 도덕 등의 능력을 관장한다.
좌뇌의 상징은 보통의 삼각형으로서 남성원리(남근)를 표현하고, 우뇌의 상징은 역삼각형으로서 여성원리(자궁)를 표현한다. 여기서 좌뇌는 논리와 힘에 의한 '지배성'을, 우뇌는 감정과 양육을 통한 '피지배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보통 좌뇌가 만성적으로 뇌를 지배하게 되면 '통제자'가, 우뇌가 만성적으로 뇌를 지배하게 되면 '노예근성'이 나타나게 된다.
베아트리체와 일반적인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 모두 신의 사랑, 연민, 배려, 도덕성 등을 강조하는 여성원리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당시의 싱클레어 및 일반적인 현교(顯敎)의 신자들로 하여금 피지배층을 자처하는 경험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나무와 예배당 같은 풍경을 그렸으나 점점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그려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이상했다. 곧 그는 자신의 그림이 베아트리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얼굴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데미안이 누구인가. 그는 '힘'의 상징인 카인의 후예이자, 에소테릭(esoteric) 비전(秘傳)의 전수자가 아니던가. 이는 지배성을 지닌 '통제자'로서 좌뇌형 인간의 표상이며, 베아트리체나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 같은 우뇌형 인간의 표상과 대척점을 이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싱클레어는 자신이 그린 얼굴 그림을 오랫동안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차츰 그것이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닌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과 반이 만나 합으로 가는 것, 결국 이것은 음과 양이 만나 태극을 이루고,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만나 다윗의 별을 이루는 과정을 나타낸다. 신비주의에서는 이를 일컬어 '제3의 눈'을 떴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자신이 섬기던 신성(神性)이 결국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며, 불교에서는 이를 일컬어 '견성(見性)'이라 부른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데미안은 감상적 향락에 취해 비틀대는 싱클레어에게 말한다.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라고.
그와의 짧은 만남 이후 싱클레어는 한동안 원망했던 데미안의 세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깨닫는다. 베아트리체라는 현교(顯敎)를 거쳐 결국 다시 에소테릭(esoteric) 비의(秘儀)로의 귀의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싱클레어는 꿈을 꾼다. 데미안에 의해 강제로 매의 문장을 삼키고, 그것이 자신을 파먹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꿈을. 하지만 모든 죽음이란 어김 없이 새로운 탄생의 시작일 뿐이다.
이동수
어떤 목적으로 네가 지금 술을 마시는지는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벌써 그걸 알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걸 말이야.
- 데미안 '베아트리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