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꿈에서 본 새의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내고, 얼마 후 책 속에 쪽지 하나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그것은 데미안으로부터의 답장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소설 '데미안'의 가장 유명한 구절과 맞닥뜨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해설과 감상이 이 구절을 그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성장통' 수준으로 해석해 왔던가. 헤세의 문장 속에 이미 '아브락삭스'라는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최고신의 이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적당히 본인의 상식과 감상선에서 대충 얼버무리는 길을 택하고 있다.
소설 '데미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지주의자였던 헤세에 의한, 영지주의의, 영지주의를 위한 작품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쯤에서 '영지주의'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영지주의는 말 그대로 영적인 '앎' 또는 '깨달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이다. 일반적인 엑소테릭(exoteric) 대중 종교가 '믿음'에 의한 보편적인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영지주의는 영적인 깨달음을 얻은 소수의 인간만이 세상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의 물질세계와 인간의 육체는 영혼을 가두고 있는 감옥과도 같아서, 영적 각성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들어 있는 신성(神性)을 복원해야만 이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영지주의자였던 헤세가 '데미안'의 프롤로그에서 '우리 인간 중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라고 한 것 역시 이러한 사상적 바탕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영지주의자들은 대체로 이원론적이었다. 그들은 영혼의 세계는 선하지만, 인간이 몸 담고 있는 물질세계는 악하거나 더러우며, 조악한 수준의 것으로 보았다. 부처가 세상을 온통 고(苦)로 보았듯, 결함투성이인 이 세상을 완전한 신이 창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동굴 우화와 같은 맥락에서 영지주의자들은 영적 최고신인 '모나드(monad)'가 주관하는 완전한 세계의 하급 이미지, 또는 시뮬레이션 버전으로 이 세상이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이 물질세계의 창조자를 '데미우르고스(demiurge)'라고 불렀다.
이 내용을 좀 더 깊이 설명하면 이렇다. 영지주의적 세계관에서는 최고신이자 가장 완전무결하고 무한한 신성(神性)을 '모나드'라 하고, 이 모나드의 신적 권위가 완전하게 충만한 상태를 '플레로마'라고 일컫는데 이는 유대교 카발라에서의 무한 상태를 의미하는 '아인소프(Ain Soph)' 또는 노자의 도교에서 일컫는 '도(道)'와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어쨌든 이 광대한 '모나드' 상태에서 '바벨로(barbello)' 또는 '소피아(sophia)'라고 불리는 여성형 '아이온(aeon)'이 최초로 발현되고, 이 소피아는 후에 처녀생식이라는 불균형 상태를 통해 현 물질세계의 창조신인 '데미우르고스', 혹은 '얄다바오트(yaldabaoth)'라 불리는 '아르콘(archon)'을 탄생시킨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호루스나 히람 아비프, 데미안의 경우와 같이 ‘과부의 아들’ 컨셉이 여기에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함마디 지역에서 한 농부가 우연히 항아리에 밀봉된 오래된 문서 더미를 발견하게 되는데, 일명 '나그함마디 문서'라고 불리는 이 문서 더미에는 2-4세기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영지주의 두루마리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중 예수의 제자였던 요한이 예수로부터 영지주의 지식을 전달받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요한 비밀의 서'에는 위에서 언급한 창조신화가 등장한다. 말할 것도 없이 대중 기독교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이단으로 낙인찍히긴 했지만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비전(秘傳)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손꼽힌다.
'데미우르고스'가 비록 열등한 신의 이미지이긴 해도, 영지주의자들은 이를 곧 기독교의 창조주 '야훼(여호와)‘와 동일하게 생각했다. 영지주의자들이 물질세계를 악의 산물로 인식한 탓에 데미우르고스는 자연스레 '악신(惡神)'이라는 이미지를 얻긴 했지만(실제로 구약성경 속 신의 모습은 악 그 자체다), 그 무렵 데미우르고스는 종파에 따라 '아담 카드몬', '아흐리만', '사탄', '야훼' 등 창조신의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가 궁금해하는 신 '아브락삭스(abraxas)'는 무엇인가. 이는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조금씩 다른데 아브락삭스의 지위에 대한 설명은 영지주의 교파에 따라 세 가지 각기 다른 주장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최고신 모나드(monad) 그 자체로서의 아브락삭스이다. 둘째는 모나드에서 발현된 아이온(aeon)으로서의 아브락삭스이며, 셋째는 그 아이온에서 탄생한 데미우르고스와 같은 아르콘(archon)들을 총괄하는 대아르콘(great archon)으로서의 아브락삭스이다. 이 셋 중 어느 하나의 설명을 택한다 해도 아브락삭스는 이 물질세계의 창조자인 데미우르고스를 뛰어넘는 상위 신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락삭스(ΑΒΡΑΣΑΞ)라는 이름은 일곱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점성술에서 일곱 개의 천체를 가리키며(Α=태양, Β=달, Ρ=수성, Α= 금성, Σ= 화성, Α=목성, Ξ=토성), 수비학적으로는 365(Α=1, Β=2, Ρ=100, Α= 1, Σ=200, Α=1, Ξ=60)개의 천상계와 물질계를 아우르고 있음을 뜻한다.
위대한 정신분석학자였던 칼 융(Carl Jung)은 1916년,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이라는 제목의 영지주의적 글을 발표했는데, 이 글에 아브락삭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융은 모든 대립물이 한 존재 안에 결합된 신이 아브락삭스이며, 이는 기독교의 신과 사탄의 개념을 초월하는 개념의 신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브락사스는 활동이다. 비실재를 제외하고는 그 아무것도 아브락사스에게 대항할 수 없다. (중략) 아브락사스는 태양 위에 있으며 사탄 위에 있다. (중략) 만약 플레로마가 존재를 가질 수 있다면 아브락사스가 플레로마의 그 현현체 일 것이다.
― 두 번째 강의
태양신의 말씀은 생명이다. 사탄의 말씀은 죽음이다. 아브락사스는 거룩한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모두 말하는데 이는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함께 있는 것이다. 아브락사스는 같은 말, 같은 행위 속에서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을 함께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락사스는 경외로운 존재다.
―세 번째 강의
흔히 상징물로써 발현되는 아브락삭스의 모습은 닭의 머리, 사람의 상반신, 그리고 두 마리의 뱀으로 이루어진 다리를 갖고 있다. 여기서 신의 형상을 의미하는 사람의 상반신 외의 다른 외형들은 모두 지혜(sophia)의 권능을 나타낸다.
초기 영지주의자들은 아브락삭스 문양을 넣은 보석을 만들어 지니고 다님으로써 아브락삭스가 그들을 지켜주고, 악한 기운을 없애준다고 믿었다. 이 아브락삭스 보석들에는 이아오(Iao), 사바오트(Sabaoth), 아도나이(Adonai), 엘로아이(Eloai) 같은 히브리식 신의 이름들도 종종 적혀 있었는데 호칭은 달라도 대개 '만군의 주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마법 주문으로 알고 있는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라는 단어 역시 아브락삭스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명하다.
영지주의와 아브락삭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니 이쯤 하고, 이제 다시 데미안으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데미안은 '카인의 후예'였다. 아벨을 죽이고, 인류 최초의 도시를 건설한 카인은 결국 플레로마 상태를 뚫고 창조된 물질계를 상징한다. 여기서 눈치가 빠른 이라면 아마 감이 올 것이다. 데미안이라는 이름은 곧 '데미우르고스'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을. 데미안, 데미우르고스라는 이름의 어원은 데몬(demon)으로서 영지주의자들이 한 때 악하다 생각했던 물질세계의 지배자, 즉 에소테릭(esoteric) 지배군주를 의미한다. 카인도, 데미우르고스도, 데미안도 모두 피지배계층으로부터 악하다 여겨지는 존재이지만, 그것은 실제로 그들이 악해서라기보다 그들이 가진 파워풀한 창조적 권능을 사람들이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자,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이렇게 말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그는 이 물질세계의 복잡한 이원론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싱클레어에게 명확한 지침을 내린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감옥과도 같은 이곳에서 탈출하여 새처럼 날아가라. 그곳에는 선도 악도, 빛도 어둠도, 진실과 거짓도 모두 하나로 감싸안는 신 아브락삭스가 있을지니.
그것은 곧 카인이 아벨을 죽였던 창조이자, 싱클레어가 데미우르고스인 자신 즉, 데미안을 뛰어넘어야 함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동수
우리가 어느 정도나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관여하는지.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오히려 똑같은 불가분의 신성이다. 바깥 세계가 몰락한다 해도 우리 중 하나는 그 세계를 다시 세울 수 있다.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영상이 우리 마음속에 미리 만들어져 있어 영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이며, 그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대개 우리가 사랑의 힘과 창조력으로 느낄 수 있도록 주어진다.
- 데미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