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길냥이의 이름
오리고깃집 마당냥이는 오전 오픈시간에 맞춰 계단에 앉아 있거나, 사람이 붐비는 시간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식당 입구 안쪽에 깔려있는 야자 매트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 녀석 참 신기하고 똑똑한 고양이다.'
우리 부부는 미묘의 냥이를 오며 가며 만났고, 남편은 냥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식당의 이름을 따서 '미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味duck? 美德? )
나는 길냥이에게 정을 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적당한(애매한 거리...)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영혼이었다. 자고로 '이름'을 지어주고 부르게 되면 '정'이 쌓이기 마련이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역시나...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고, 식당의 불이 꺼진 어두운 밤에도 아른거리는 미덕이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식당 앞에 보이지 않으면 "미덕아~~ 미덕아~~" 하고 여러 번 불렀고, 우리의 기대에 부응해 주듯 어둠 속에서 짠 하고 나타나 자신이 원래부터 '미덕이'였던 것처럼 다가와 주었다.
우리는 미덕이를 위해 생전 처음으로 '츄르'라는 고양이 간식을 사들고 이 밤 저 밤 찾아가기 시작했고, 츄르를 향해 유독 예쁘게 반짝이는 동그랗고 큰 눈을 꿈뻑이며 더 달라고 애원하듯 '냥~냥~' 하고 울음소리를 내곤 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때로는 안쓰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늘은 잘 있을까. 식당 문이 굳게 닫힌 어두운 밤에는 어디에서 지낼까...' 날씨라도 궂은날이면 더 생각이 나곤 했다.
2021년 8월. 이사 후 맞이한 두 번째 여름.
날씬했던 미덕이의 몸매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새끼를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부터는 혹여나 굶지는 않을까, 조금이라도 영양보충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간식과 사료를 챙겨서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찾아갔다. 그렇게 마음이 쓰여 찾아가면서도 '자꾸만 정주면 안되는데.....'라는 마음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의미 없는 다짐이었으리라.
"미덕아~" 하고 이름을 부르면 반가운 듯 야옹야옹하며 다가와, 간식과 사료를 아주 맛있게 먹어 주었다.
식당 마당냥으로 지냈지만 변변한 밥그릇도 없는 처지라 반려견 뚱이가 사용했던 물고기 모양 접시를 미덕이에게 내어 주었다. 이제는 변변한 그릇에 사료도 먹는 미덕이가 되었다.
이 그릇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2019년 무지개다리를 건넌 뚱이가 병원치료를 하기 위해 서울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을 때 사용했던 밥그릇이다. 뚱이를 위해 건강식도 만들어주고, 밥과 약을 섞어서 담아 주기도 했던 아프지만 소중했던 추억이 가득 담긴 그릇이었다.
8월 중순이 되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옆으로 불러오는 것이 눈에 띄었고, 밖에서 생활하는 미덕이가 더 애처롭게 여겨지는 날이 하루하루 늘어갔다. '언제쯤 새끼를 낳을까?' 하는 것이 가장 궁금한 시점.
어떤것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그저 미덕이가 하루하루 잘 보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식당 영업이 끝나갈 때쯤, 우리가 준 사료를 오도독 오도록 씹어 싹싹 먹은 뒤 흙바닥에 누워 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어떤 젊은 여자분이 통화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미덕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순간 귀가 쫑긋!... 미덕인 '미야'라고 불렸고, 이번이 벌써 3번째 임신이라는 것이었다.
'오 마이갓... 충격이다....' 어리게만 보였던 미덕이가 3번째 임신이라니...... 이 전에 새끼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미덕인 몇 살 일까. 궁금증과 더불어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지는 순간이었다.
명색이 식당 마당냥이라고 불렸지만, 길냥이 집이나 밥그릇 물그릇도 없는 처지였다. 그저 가끔 마음 착한 식당 직원이 챙겨주는 오리고기로 배를 채우던 길위의 고양이였던 것이다. 특히 더 안쓰러웠던 것은.... 식당 직원분들도 임신한 것을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길냥이를 보살피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물론, 식당문이 열려 있을 때면 내 집인 양 입구 앞에 누워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을 애교와 사교성을 두루 갖춘 터줏대감 냥이였을지도 모른다.
점점 무거워지는 몸으로 순간순간을 살아가던 미덕이의 과거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던 여름밤이었다.
'오늘밤도 내일밤도 부디 무사히 보내렴. 미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