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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구리작업실 Mar 04. 2024

덕을 쌓은 고양이 (1화)

#1. duck 덕??  德 덕??

 2019년 8월 초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복잡하고 소음 가득한 서울 신혼집 생활을 마치고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집 주변은 맛집들이 즐비해 있는 동네여서 어느 식당을 가볼까 고민하는 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이곳에 집을 보러 왔을 때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마치 유원지 같은 오래된 나무들과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이어졌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낭만에 취했는지 좁은 도로가의 풍경마저 마음에 들어왔다. 주변엔 칼국수, 한우, 돼지, 오리, 장어, 불고기, 주꾸미 등 다양한 메뉴의 식당들과 드라마에 나올 법한 카페들까지 모여 있었다. 아주 세련되거나 모던한 분위기가 아닌 어느 정도 세월의 흔적과 향기가 배어있는 장소들이었다. 카페와 식당 중간에 조성되어 있는 작은 정원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거나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기에 딱 좋은 '나의 취향 저격' 감성적인 공간이었다.

맛집골목은 그렇게 우리 동네가 되었다.



 날씨가 좋거나 내 마음이 원하는 날엔 출근하는 남편을 따라 아침 산책을 나가곤 했다.

이사 온 지 1년이 지나고 그해 11월 아침. 입동이 지났지만 가을가을한 날씨에 후드득 떨어지는 예쁜 낙엽들을 눈에 담고, 지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오리고기 식당 앞을 지나다가 나무계단에 다소곳이 발을 모으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동글동글 작고 예쁜 얼굴, 동그랗고 큰 눈, 선명한 털 무늬, 꼿꼿하게 선 두 귀를 가진 길. 냥. 이였다.

나도 모르게 생전 처음 보는 미묘의 고양이에게 눈길이 갔고, 나의 따가운 시선? 과 마주친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고 나를 향해 야~옹~야옹 하며 반응을 보였다. 처음 보는 그 모습이 귀엽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댔다.

나는 고양이보다는 개! 멍멍이!! 를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14년간 함께 했던 천사 푸들 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난 뒤로는 반려동물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몇십 년간 멍멍파!로 살아왔고, 고양이는 내 머리와 가슴속 어느 곳에도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리고깃집 앞의 그 고양이는 신기하게도 너무 예뻤다......

그 뒤로 남편과 나는 식당 주변을 지날 때마다 냥이가 있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어쩌다 운 좋게 마주치는 날이면 "어! 저기 또 있네~!" 하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낯선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천천히 적응하며 흘러갔다.



 이곳에서의 두 번째 봄이 왔다.

3월의 따스한 볕이 좋아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매화의 꽃봉오리가 퐁퐁 터지며 설레는 봄을 맞이하고 있을 때였다. 항상 비슷한 코스로 산책을 다녀오기에 그 식당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오? 또 그 예쁜 냥이네!!!

오리고기 식당 앞 그 계단에 딱! 예쁜 모습 그대로 앉아 있는 길. 냥. 이를 다시 보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내심 궁금했었는데... 다시 보니 반가운 마음에 또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 댔다.

아직 어려 보이는 외모에 오리고기를 많이 얻어먹었는지 윤기가 좔좔 흐르고 길냥이가 아닌 것 같은 깔끔한 외모를 유지 중이었다. 그렇게 또 내 핸드폰의 사진첩과 SNS에 흔적을 남기고 시간이 흘러갔다.



 그해 5월 남편과 오리고깃집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마침 식당 마당의 풀숲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고양이를 발견한 남편은 호기심이 발동해서인지 아니면 냥이가 예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한 손엔 두부과자 봉지를 들고 냥이에게 다가갔다. 나는 냥이를 만져본 적이... 없어서 가까이 가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길냥이에 대한 편견도 있었고, 조금은 무서워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아무런 거리낌 없이 냥이에게 다가갔고, 냥이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다리와 손에 얼굴을 비벼대며 야옹야옹거렸다.

'우와... 너무 귀엽잖아.'

'아니... 무슨... 길냥이가 저렇게 사람을 안 피하고 좋아하지? 과자를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의문에 빠져있을 때쯤, 남편은 자신에게 다가온 냥이에게 손을 달라며 손짓하고, 이에 당황한 듯 한 표정의 냥이를 바라보며 나는 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식당 앞에 붙박이처럼 지내던 냥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 보였고,

식당 직원들이 챙겨주는 오리고기를 먹은 덕분인지 털에서도 윤기가 났다.

자기 나름 야생에서의 험난한 경험과 지혜로 오리고기 식당을 택했을 테고, 그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정하고 지키느라 무던히도 애쓰며 지냈을 녀석. 오리고기 식당 마당냥이와의 시간들이 우리 부부의 사진첩과 기억 속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너무나 예쁜 두 눈에 덕을 쌓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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