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노는 게 제일 좋아.
우리 부부와 가족이 된 다섯 마리 고양이 가족은 끈끈한 애착관계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사형제 냥이 중, 누구 하나 서운하지 않도록 정성스레 따뜻하게 보살펴온 미덕이에게도 조금씩 휴식의 공간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가냥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엄마품을 벗어나 매일매일 새로운 것에 눈을 돌려 탐험을 시작했다. 새로운 무언가가 눈앞에 보이기라도 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 앞에 모여들어 얄미로운 머리를 맞대고, 귀를 쫑긋 세우고는 앙증맞은 솜방망이를 요리조리 휘둘휘둘거리며 탐색하기에 바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게 뭐라고~저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나~ 너희에겐 하찮은 행동이 하나도 없구나’하며, 그 귀여움에 감탄하고 푹 빠져버린다. 어느 날은 아주 작은 벌레 하나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코딱지만 한 벌레에 조심스레 흥분을 감추고 초 집중하는 것이 아난가! 고양이들의 호기심과 집중력에 놀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눈앞에 스멀스멀 기어 다니던 벌레가 후다닥 날아가버리면, 냅다 쫓아가 허공에 아쉬움 가득한 발길질을 해댔다. 그 실망스러움이란… 어떤 걸까? 상상할 수 없는 냥이의 마음이라 아쉽기만 하다.
하루는 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볼펜을 유연한 발놀림으로 건들건들하더니, 바닥으로 또로록 떨어뜨렸다. 타닥하고 떨어진 볼펜이 뭐라도 되는냥, 어디선가 모여든 사형제들. 또다시 새로운 물체에 시선이 모이고, 하나둘 솜방망이를 조심스레 장전한 뒤, 목표물을 향해 발사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서로 다른 곳에 있다가도 ‘한 녀석이 신기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 그것을 어찌 알아챘는지 소리 없이 그곳으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같은 주파수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볼수록 알수록 신기한 고양이들이다. 모든 것이 신기한 냥이들에겐 볼펜 하나도 재미난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 남집사와 산책길에 주워온 도토리.
‘공 굴리는 고양이’라는 이름의 장난감이 있듯이, 동글동글 굴리기 좋은 도토리를 주워와 냥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관심을 보이며, 앞발로 톡톡 건드려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 ‘토리’가 굴리는 재주가 뛰어났다. 미덕이를 닮은 듯했다. 미덕이도 도토리 정도 크기의 캣닢볼을 보송보송한 작은 앞발로 살짝살짝 건드리며 요리조리 굴리고, 얼굴 주변을 비벼대곤 했다. ‘도토리를 좋아하는 토리!’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해 준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사형제들은 미덕이의 보호아래 안정감을 느끼며, 텐트밖 세상으로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내딛다가 점점 빠르게 성장해 갔다.
안락한 그들의 작은 텐트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 관찰하던 모습.
보이지 않는 엄마를 찾으러 이불속으로 줄줄이 파고 들어가 삐약삐약 울어대던 모습.
작은 턱조차 넘어서지 못하던 아가냥들이 텐트 안쪽 둘레에 만들어둔 ‘안전턱’(아가냥들이 구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불을 돌돌 말아 턱을 만들어 준 것) 위에 올라가, 마치 담벼락 위에서 노는 고양이들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귀엽게 놀던 모습.
어느 날부턴가 텐트 밖으로 나와 요리조리 살피며, 조심스럽게 들락날락하던 모습.
이랬던 아가냥들이 텐트생활을 청산하고, 고양이 방석과 스크레쳐를 사용하던 시기쯤이었을까.
미덕이가 함께 놀아주며 알려준 ‘뒷발팡팡 사냥놀이’ 또는 ‘고양이 레슬링’에서 서로의 몸을 아프지 않게 살짝살짝 물고 노는 방법을 터득해 갔고, 잡기놀이, 숨바꼭질, 사냥놀이 등 다양한 놀이를 하며, 사회성과 학습능력을 키워 갔다. 더불어 신체의 순발력과 협응력도 발달해 갔다. 높기만 했던 캣타워에 매달려 어설픈 점프를 하던 꼬마냥들은, 용기를 내어 자기 힘으로 점프를 하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장난을 치고, 대롱대롱 매달린 장난감으로 혼자 놀기도 하면서 한층 더 독립적으로 성장해 갔다.
계속해서 다양해지는 환경을 충분히 활용하여 적극적인 놀이를 하고, 더불어 서로가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 나갔다.
고양이들의 성장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집사의 손길을 많이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미덕이의 강한 모성애로 인해, 형제묘들을 아가냥일 때 자주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지 못해서 소위 말하는 ‘개냥이’의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집사의 손길대신 미덕이(엄마묘)의 다정한 보살핌과 애정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하기로 했다. 미덕이 덕분에 우리 사형제냥이들은 문제행동? 없이, 비교적 모두 안정적인 성향의 고양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성향과 매력이 뚜렷해졌고, 현재는 서로 다른 형태로 ‘개냥이’의 성향을 보인다.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도 모두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듯, 고양이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꼬물이 시절부터 조금씩 타고난 성향이 나타나더니, 청년이 된 지금은 그 모습이 뚜렷해졌다.
어느새 어여쁜 미덕이를 만나 가족이 된 지도 2년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의 여러 가지 변화에 서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고, 그만큼 우리 사이엔 끈끈한 애정과 신뢰가 쌓여갔다.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엽고, 매력적인 사형제 냥이들의 에피소드는 차고 넘치지만! 나는 여전히 미덕이가 가장 사랑스럽고, 봐도 봐도 예쁘고, 존경스럽다. 어떤 말을 하든 다 알아듣는 것처럼 대답을 해주고, 나의 마음을 다 아는 것 같은 지혜로운 미덕이. 미덕이가 아가들을 뜨거운 모성애로 책임지며 살뜰히 보살피고, 지금까지도 엄마의 위치에서 형제묘들을 지켜주고, 사랑을 주는 모습을 볼 때면, 감동을 넘어선 존경심을 갖게 한다. 이런 미덕이가 우리 곁에서 건강하게 행복한 고양이로 오래오래 함께해 주길 바라는 소중한 마음을 글자 하나하나에 꾹꾹 담아본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이 함께 흘러가는 만큼, 미덕이가 언젠가는 마음을 활짝 열고, 발톱정리를 할 때만큼은 얌전한 무릎냥이가 되어줬으면 하는 욕심도 부려본다. ;)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세상을 맑고, 편안하게
환기시켜 주는 우리 냥이들과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 그리고…
오늘은 온마음과 체력을 다해
사냥놀이를 해줘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