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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구리작업실 Mar 25. 2024

아가냥들의 첫 외출! (11화)

#11. 미덕이의 육묘 탈출

 미덕이의 껌딱지였던 꼬물이들의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녀들의 유아시절, 자고 일어나면 눈에 띄게 쑥쑥 큰다고 이야기하는 부모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부모들은 시간이 흘러 문득 자녀들의 폭풍 성장한 모습에 기특한 마음과 동시에 아쉬움을 내비치곤 한다.

나는 아이의 부모는 아니지만, 미덕이를 만나 미덕이의 엄마집사가 되어 아가냥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만 같다.

나의 조카들이 입학과 졸업 등을 거쳐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씩 뭉클해지기도 한다. ( 눈시울이 붉어지고 왠지 모를 감동에… 훌쩍이기도… )

언니들은 가끔 엉뚱하고 해맑고 귀여웠던 조카들의 어릴 적 사진을 SNS에 공유하곤 한다. 마치 그런 시기가 있는 것 마냥. 특히 '생일, 새 학기, 입학, 졸업시즌'같은 특별한 날에는 그들의 기억을 더 빠르게 과거로 돌려놓는 듯 보인다.

아마도, 그 외에도 수시로 과거의 사진첩을 둘러보며 자녀들의 지나온 길을 돌아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새끼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뒤적거리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주워 담으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하고, 감동스러워하며 울컥거리는 마음에 눈물을 훔치고 있는지도. (...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조카들이 떠올라 눈물이 고인다… 참… 못 말리는 감성쟁이 이모다. 갱년기 증상인가.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던데… 아무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나간 추억의 사진첩을 하나하나 꺼내어 추억팔이를 하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행복한 순간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또다시 아쉬운 마음 한 스푼을 마음에 담는다.

나 또한 그렇다.

미덕이를 만나 네 마리의 아가냥들을 선물 받았고,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고양이 가족과 함께 쌓아둔 사랑스러운 흔적들을 때때로 들춰보며 흠뻑 빠지곤 하니까.





 어느덧 아가냥들의 첫 외출날이 다가왔다.

태어난 지 45일 만의 첫나들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병원 나들이다.

아가냥들은 총 3번의 기본 혼합예방접종을 해야 했다. ( 2021.10.05의 1차 접종을 시작으로 10.26 / 2차 접종, 11.16 / 3차 접종 완료 )

병원에 가기 전 매일매일 몸무게를 체크해야 하는데, 미덕이가 꼬물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탓에 이것 조차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몸무게를 재려고 한 마리씩 데려갈 때마다 경계하는 미덕이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꼬물이들은 엄마에게 위험신호를 보내듯 ‘삐약이 소리’를 내며 목청껏 울어댔다.

고양이들은 어릴 땐 ‘야옹, 애옹’이 아닌, ‘삐약 삐약’ 높은음으로 삐약이 소리에 가깝게 운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가냥들을 그들의 작은 텐트(집사가 직접 천과 이불 등으로 아늑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준 텐트)에서 꺼내어 한 손에 들고 있자니, 너무 귀여워 내적 환호성을 지른다.

‘너무 소중하다… 정말… 왜 이렇게 쪼꼬매~~ 아요~~ 예뻐라~~’



< 냥생 9일 차 기록 >

요 녀석 잡았다!
아가를 걱정하는 엄마 '미덕이'와 2:8 젖소냥 '몽돌'
하얀 양말을 야무지게 신은 턱시도냥 '코코'
머리가 무거워 자꾸 앞으로 기우는 하투콧물 턱시도냥 '코난'
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고등어냥 '토리'


 아직 초보티를 벗지 못한 집사는 몸무게를 재는 것도 서툴렀다.

부엌에서 쓰는 저울 위에 그냥 올려두었다가 자꾸만 내려오는 탓에 정확하게 재는 것이 어려웠다. 그 뒤로는 작은 플라스틱 그릇 안에 냥이를 넣어 재는 방법을 썼다. 이 방법이 훨씬 수월했지만, 그 안에서도 나가려고 바둥거리는 녀석들. 작은 그릇의 높이도 넘어가지 못하고 침울해하는 모습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그릇 안에 들어가 놀라고, 겁먹은 표정이 어찌나 얄미롭고 귀엽던지... 그 당시 사진으로 찍을 땐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귀여운 건 참을 수가 없다.^^


 아가냥들의 초반 몸무게는 '토리 - 몽돌 - 코난 - 코코' 순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순서는 바뀌어 갔다. 그런데 코난이가 넷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고, 쭈쭈를 먹을 때도 다른 형제들의 힘에 밀려 못 먹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곤 했다. 쭈쭈가 잘 나오는 젖꼭지가 있는 건지, 아니면 각자가 선호하는 위치가 있는 건지... 그곳을 차지하려고 버둥거리며 자리싸움을 할 때, 힘에서 밀리는 코난이가 쭈쭈를 부족하게 먹는 것은 아닐까 신경이 쓰이곤 했다. 하지만 집사의 염려와는 달리, 미덕이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냥생 19일 차 '코난'과 '코코'


 드디어 아가냥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날.

지역에서 나름 소문난 동물병원이라, 시간 때를 잘 맞추지 않으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나설 준비를 하고, 아가냥들을 안전하게 이동장으로 모시는 작업을 시작했다. 큰언니가 물려준? 강아지 이동장을 준비해 폭신한 이불을 깔아 두고, 한 녀석씩 옮기기 시작했다. 별것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조금씩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미덕이와 아가냥들의 첫 분리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덕이는 아가들을 왜 이동장에 넣는지 알턱이 없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주말이 아니라 남편 없이 혼자서 네 마리를 다 데리고 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가벼운 쪼꼬미들이라 하나의 이동장으로 모두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이동장안에서 영문도 모른 채 옹기종이 모여 서로 엉켜있는 삐약이들. 그 모습이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처음이라 어떤 상황인지 몰라 멍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려선 안 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집사였다.

나도 고양이는 처음이라 하나하나의 과정이 모두 낯설었지만, 한편으론 아가냥들의 건강상태와 성별을 알 수 있음에 설레는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수의사 선생님께 우리 예쁜 아가냥들을 보여드릴 생각에 왠지 모를 뿌듯함도 밀려왔다.

동물병원에서 예방접종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마는, 생애 처음이라는 타이틀이 모든 걸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고양이의 습성상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외출을 해야 할 때는 고양이가 들어간 이동장 전체를 담요 등으로 덮어 외부 시야를 차단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검색한 내용을 참고로 담요로 이동장을 가려주었다. 하지만 아가냥들은 차에 타서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불안의 4중 떼창‘을 하며 울어댔고, 나의 초조함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라, 가까스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한 채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떼창을 완전히 멈추고 조용해지는 것이 아닌가.

강아지를 키웠을 때도 겪어본 일이긴 하지만, 이 쪼꼬미 아가들이 처음 오는 병원을 알턱이 없을 텐데 어찌 알고 이러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갑자기 아무도 없는 척,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 땡그란 눈만 요리조리 굴리는 냥이들은 모든 순간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드디어 진료차례가 다가왔다.

( 아직 아가냥들의 성별을 모르기 때문에 이름을 짓지 않은 상태였다.)

“미덕이 보호자님~”

“네~”

설렘과 약간의 걱정을 안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친절한 수의사 선생님께서도 아가냥들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작디작은 소중한 아가냥들을 보시더니, 나의 기대에 부응해 주듯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어찌 이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보고 감탄을 안 할 수가 있을까.

드디어! 아가냥들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두근두근…

수의사 선생님은 아가냥들의 궁둥이와 항문주의를 보시며 성별을 구분하셨다.

“와….. 미덕이가 수컷만 네 마리를 낳았네요~^^”

암컷은 한 마리도 없고, 모두 수컷! 이라니! 와우.

“미덕이가 아가들을 매우 꼼꼼하게  보살폈나 보네요. 모두 깨끗하고 건강해 보여요.”

‘역시 우리 미덕이~~’

찬찬하게 한 마리씩 성별과 건강체크를 했고, 모두 개월수에 맞게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곤 코난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구가 작으니, 앞으로도 먹는 것과 몸무게 체크 등을 잘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코난이의 꼬리 끝이 말려있는 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영양이 부족해서 기형이 된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사실 체구도 작고 꼬리도 말려있어서 걱정을 좀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수컷의 중성화 비용이 암컷에 비해 적게 들어간다는 정보를 주시며, ‘미덕이가 효녀네요.’ 하시는 것이 아닌가!

‘역시… 우리 미덕이 고맙다…ㅜ.,ㅜ’


예방접종을 하는 아가냥들은 뾰족한 주삿바늘이 피부를 찌르는대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너무나 얌전하게 접종을 마쳤다.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건지,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건지, 모두가 순둥순둥한 아가들이었다.

예방접종 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고열이 나거나 얼굴 또는 눈이 퉁퉁 붓거나, 너무 기운 없이 처져있다면, 지체 없이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 집에 와서도 아가냥들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야 했다.

다행히 아가냥들은 잠에 곯아떨어진 것 말고는 아무 이상 없이 하루를 보냈다.


 아가냥들과 병원에 다녀오는 사이, 혼자 있는 미덕이가 아가냥들을 찾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홈캠을 켜보았다. 아니... 글쎄, 이게 웬일. 내 걱정과는 달리 햇살이 살며시 스며드는 곳에 들어가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곤에 쩌들어 대자로 뻗어 자는 미덕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아가들을 캐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이 잠깐의 육묘탈출 시간이 얼마나 달콤할까.

24시간 동안 아가들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켜보고 보살폈을 미덕이에게 잠깐의 휴식이 되었을까.

나의 부모님도 갓난아기였을 나를 세심히 보살피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혹여나 다칠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키워내셨겠지.
나는 미덕이를 보며 모성애를 깨닫고, 나의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고양이들을 향한 나의 모성애를 발견하곤 한다.

함께 사는 남편도 나 못지않은 세심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2차 예방접종하러 병원에 간 사형제


 1차 접종 후, 2차 접종을 하기 위해 주말아침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아가냥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고, 순둥이들의 예방접종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근처 카페로 차를 돌렸다.

사형제 냥이들을 데리고 말이다. 야외 테이블에 냥이들의 이동장을 올려두고, 세상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사실 진짜 목적은 잠깐이라도 ‘미덕이의 육묘탈출 시간’을 늘려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차를 제외하고, 집밖으로 나와 구경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사형제들은 조심스럽게 호기심을 내뿜으며 이동장 위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보였다.

하나, 두울, 세엣, 넷.

“ 뿅! 뿅! 뿅! 뿅! ”

가장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어 보이는 '코코'가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고, 그다음은 '몽돌', 그 밑으로 '토리'와 '코난'이가 고개를 들었다.

작은코를 씰룩씰룩, 귀를 연신 쫑긋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린다.

이 쪼꼬미들에겐 이 순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얼마나 새롭고, 신기할까! 내심 두렵고 조심스럽겠지만, 세상에 대한 탐색욕구를 두려움 따위가 이기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나와 남편은 냥이들이 이동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그 모습을 소중히 담고 있었다.

집사와 아가냥들이 외출한 시간 동안, 미덕이는 또 한 번의 달콤한 꿈을 꾸며 단잠을 자고 있었을까.


카페에서 세상구경 중인 쪼꼬미들



마지막 3차 접종까지 부작용 없이, 건강하게 모두 마친 사형제들은 하루하루 다르게 폭! 풍! 성! 장! 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과 탐색욕구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고, 엄마옆에서 야무지게 그루밍을 하고, 어설프지만 습식 사료를 핥작거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서로서로 의지하며 포근하게 잠을 자기도 하고, 잡기놀이, 숨바꼭질, 사냥놀이를 하며, 뜨거운 가족애와 사회성을 길러갔다. ( 냥이들의 사회화 시기는 생후 3주 차 ~ 9주 차인데, 이때 집사 또는 냥이들 간의 다양한 놀이와 스킨십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외부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하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낮아진다고 한다. 물론 냥바냥이긴 하겠지만! )

이렇게 아가냥들이 커가는 동안, 미덕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미덕이에게도 휴식의 시간이 조금씩 찾아오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제냥이들. 그와중에 시선강탈 '코코' ㅋㅋㅋ


‘육묘탈출’의 시간이 미덕이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어떤 마음으로 아가들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문득, 미덕이의 생각과 마음이 궁금해진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3년 가까이 우리는 가족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요즘 브런치를 통해 미덕이와 사형제냥이들의 시간들을 세세히 추억하다 보니, 또다시 마음 가득 따뜻한 행복으로 물들어 간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 기록하고 남겨 둘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난 고양이 가족과의 시간들이 천천히 건강한 모습으로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처음이 된 나의 고양이 ‘미덕’
이름처럼 아름답고 어질고 예의 바른
우리 미덕이.

너에게 다가가 살며시 얼굴을 마주대면
동그랗고 맑은 눈에 사랑을 가득 담아
“냥~”하고 다가와
내 이마에 너의 얼굴을 ‘콩!’
너와 나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
난 어김없이 또 ‘심콩‘해.
이런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오랜 시간이 흘러도 너와의 연은
신기하고 감사한 순간으로 기억될 거야.
미덕아~ 가슴깊이 고맙고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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