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첫 고양이, 우리 부부의 첫 반려동물.
포슬포슬 고소한 향이 나는 갓 쪄놓은 감자처럼, 동글동글 따끈따끈 포근포근 보들보들한 ‘미덕이’를 만났다. 미덕이를 시작으로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으로 매일을 채워가고 있다.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아직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다는 막연한 마음이 들다가도, 어느새 3년이나 지났을까 아쉬운 마음도 든다.
언제나 그렇듯 미덕이와 눈을 마주치곤 보드라운 이마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미덕이의 작은 얼굴에 내 얼굴을 파묻으며 또 생각한다.
‘정말 신기해. 아직도 신기해, 미덕아. 어디서 나타나 내 옆에 와 있는 거니?‘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의문이고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느낌이다.
잠들기 전, 침대 위로 올라온 미덕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속삭인다.
“ 미덕아, 좋은 꿈, 예쁜 꿈 꿔~ 잘 자, 잘자아… 사랑해. 사랑해~. 우다다는 조금만 하고 자~. “
뭐가 그리도 아쉬운지 인사를 몇 번이고 건넨다. 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 것만 같은 부푼 마음을 품고, 미덕이를 살포시 감싸 안는다.
“아옹~ 아옹~ 아옹” 작은 소리로 계속 대답하는 미덕이. 그 모습이 귀여워 한 번 더 폭~감싸 안으면 ‘이건 아니지~’하며 슬며시 빠져나가버린다.
빠져나간 미덕이를 보며 ‘답답하다는 건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마치 내 마음을 다 안다고 대답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금세 몽글몽글 해진다.
미덕이가 길 위의 고양이였던 시절, 그녀의 주영역이었던 ‘미덕원’이라는 식당 앞을 종종 지나간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길이 머무는 곳곳에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마치 어제의 일들처럼 그 빛이 바래지도 않고 선명하게 내 마음과 모든 감각기관에 깊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잘 가꾸어진 나무와 꽃들, 납작한 돌판, 나무계단, 풀숲의 새소리, 초록색 공기와 바람,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유원지 같은 분위기는 순식간에 나를 그때의 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여전히 신기하고 특별하고 꿈만 같은 순간이다.
미덕이도 그때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미덕이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가끔씩 테라스 난간에 서서 목을 쭉 빼고 건물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혹시 기억하니?
엄마, 아빠 뒤를 천천히 따라왔던 그때를……?’
고양이들의 언어와 마음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서로를 위해 더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서로를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더 깊은 애착을 형성하고 서로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행복과 기쁨, 설렘, 아픔, 슬픔 등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분을 가진 미덕이와의 만남을 글로 남기는 동안 지난 사진첩을 몇 번이고 둘러보았다. 내 사진첩의 80프로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 가족 사진들. 보고 또 보며 놀라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들에 아쉬워하기도 했다. 늘 새롭고, 귀엽고, 예쁘고,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카메라를 켜고 또 켰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러하니까.
미덕이, 토리, 몽돌, 코코, 코난 ‘미토몽코코’ 다섯 마리 고양이와 두 집사가 조용하고 온기가 감도는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오롯이 부부의 공간이었던 우리 집 이곳저곳에 그저 귀엽기만 한 고양이가 다섯 마리나 있다니. 모두 다른 성향과 외모덕에 질릴 틈도 없이 우리를 홀리기에 바쁜 고양이들이다. 이제는 미덕이보다 덩치가 커지고 청년이 된 사형제 ’몽토코코‘가 미덕이와 함께 ‘우리의 집’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지금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흡사 고양이 집에 들어와 사는 ‘집사부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주는 온전한 평화로움과 따스한 안정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 이 글과 사진들, 나의 몸과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을 흔적들이 그 시간의 흐름을 늦춰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 본다.
에필로그
조금은 어설프고 마음 여린 나에게 ‘고양이 엄마’의 역할을 귀여운 솜방망이로 살며시 건네준 미덕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음이 무거워 가라안고 싶을 때, 살아갈 이유를 살포시 얹어주는 나의 고양이들. 세상을 솔직하고 가볍게 바라보라며 내 마음의 창가에 앉아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오늘은 조금 더 성의껏 낚싯대를 흔들고, 맛있는 간식을 푸짐하게 담아 줘야지.
어떤 만남이든 내가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소소하지만 특별한 인연의 실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소중한 분들께도 ‘미덕이와 나’의 만남처럼 따스운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순간이 찾아오길, 실오라기 같은 인연이 시간의 쌓임으로 단단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 )
그동안 ‘덕을 쌓은 고양이’의 이야기를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