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구리작업실 Mar 07. 2024

덕을 쌓은 고양이 (4화)

#4. 너의 선택

 어떤 대상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마음을 쓰면 자연스레 정이 들어간다.

그때의 우리는 적극적인 캣맘, 캣파더는 아니었지만, 작고 소중한 녀석이 마음속에 자꾸만 밀고 들어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미덕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식당의 직원들, 손님들도 예뻐했을 존재였겠지.

반짝이는 큰 눈으로 도도한 얼굴을 하고, 때로는 곁을 주고 때로는 거리를 두며 자신의 영역을 지켜왔을 미덕이.

어느 날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면, 천천히 오는것 같다가도 공원의 나무기둥을 긁으러 가버리거나, 안 보이는 곳으로 가서 볼일을 보곤 했다.

'설마 따라오겠어?' 하는 마음이었지만, 진짜 따라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심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미덕이에게 아쉬운 마음도 들었었지.

그렇게 미덕이의 밀당을 경험하며 우리의 고민도 깊어져 갔다.

 8월의 장마는 끈질기게 이어졌고, 미덕이의 배가 점점 더 아래로 처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결심했다.

사실 결심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불안 섞인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할지 모르는 어설픈 결심이었다.

'오늘밤. 미덕이가 우리를 계속 따라온다면 집으로 데려오자. 단, 억지로는 데려오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우리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미덕이의 의지로 선택하기를 기다렸다.

만들어 놓았던 미덕이의 집을 철수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미덕인 우리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뒤에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아주 천천히.

이 전에 두 번 정도 따라오는 듯했지만, 자신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가버리곤 했었는데...

놀랍게도 계속해서 뒤따라오며 주변의 냄새를 맡고, 세워진 차에 얼굴과 몸을 비비고, 갑자기 바닥에 뒹구르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는 그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 몰라서 '응?? 갑자기 왜 그럴까?... 더 이상 안 오려는 걸까.' 의문만 가지고 있던 때였다.

알고 보니 자신의 체취를 묻히는 행동이었다. 고양이가 체취를 묻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마도 안정감을 찾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덕인 우리를 따라 자신의 영역을 훨씬 벗어나, 좁은 건물 사이를 통과하고, 어느새 우리가 사는 건물 앞까지 와 있었다.

'그래...! 이제 됐어. 그만큼 용기를 내어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야.'

나는 박스집 안에 깔아 두었던 검은색 담요를 꺼내어 들었다. 단 한 번도 고양이를 적극적으로 만지거나, 안아본 적이 없었다.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약간의 불안함도 있었지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어디서 무슨 용기가 난 건지 미덕이를 담요로 폭 감싸 안았다.

당황한 미덕인 몸을 조금씩 움직이긴 했지만,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내 의지 또한 강했기에 품에 꼬옥 안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무사히 집으로 들어와 미덕이를 내려주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미덕이는 복층으로 가는 계단 위를 올려다보더니, 순식간에 계단옆 아일랜드 식탁으로 점프! 그리곤 계단사이로 몸을 통과시켜 후다닥 올라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미덕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우리의 신경은 바짝 긴장되어 있었고, 무사히 데리고 왔다는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계단 가장 위쪽으로 올라간 미덕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바닥에 누워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집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 미덕이


 드디어 집으로 들어온 길 냥 이. 아니 이제는 집. 냥.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도 없었고, 고양이를 위한 물품과 지식 또한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백지 같은 우리 집에 신비로운 고양이 그림 하나가 생긴 것'이다.


저기요~~ 원래부터 집냥이세요?




  삶을 살다 보면 정말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경험치가 높아진다'는 말이 떠오른다.

결혼 전 같이 살던 친구가 가끔 해주던 말이다.

본인과 같이 살면 경험치가 높아질 거라고..ㅎ(그 이유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는 거로)

우연히 마주친 예쁜 고양이가 미덕이가 되었고,

길냥이였던 미덕이는 이제 따뜻한 집사가 둘이나 있는 ‘집냥이로 살아가기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을 받아들인 우린 '어쩌다 집사'가 되었고,

냥이에 대해 무지했던 시간부터 시작해 하나씩 준비하고, 배워가며 채워가는 시간들을 살아가기로 했다.

때로는 철저한 준비과정이 없는 선택도 필요 한 것 같다.

'닥치면 하면 된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닥쳐봐야 안다.'


너는 이제부터 '우리의 미덕'이다.
이전 05화 엄마가 된 '미덕' (6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