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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Mar 06. 2024

탐방로 이야기 (2)

길은 시대를 담는다

흙길과 돌길, 그리고 포장길


다수의 관광지 혹은 유적지의 보행로는 걸음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잘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딱딱하기만 한 차로용 포장 말고, 도시 곳곳에 마련된 산책길처럼, 붉은색 계열의, 적당히 부드러운 포장로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것은 국립공원, 도립공원, 혹은 기타 유원지 등과 같은, 공간의 종류에 따른 것으로 보기도 힘들었다. (*예를 들면, 재정 지원이 보다 많은 국립공원이 여타 공립공원보다 보행로가 더 좋다던지 등등)


대신, 전체적인 풍경에 보다 어울리거나 또는 해당 공간에 보행로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 연속성을 유지하는 방식인 경우가 많았다. 구한말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다 흙길이다. 돌길도 잘 없다. 비만 와도 다 진흙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적지의 실제성을 극대화시킨다면, 비오는 날은 관람이 고행길이 될 공산이 크다. 또한, 지금은 관리자의 통행과, 치안, 소방, 및 각종 공사 등을 위해 차량통행을 위한 포장도로가 필요하기에, 그런 기능이 통합된 통행로가 설치된 곳도 많다. 


흙길의 경우라도, 겉으로는 잘 다져놓은 흙길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되고 쉽게 진흙탕이 되지 않게 조성된 곳이 많다. 또한, 이런 경우 바로 옆에 포장된 차도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산지승원 같은 대형 사찰에서, 주차장과 대웅전 사이 길이 이런 형태가 많았다.)


흙길은 소리가 적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모든 도립 및 국립공원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본 대부분의 곳은 보행로 만큼은 잘 관리되어 있었다. 전날 비가 왔어도, 보행에 어려움을 겪은 곳은 없었다. 흙길이어도, 단단하게 다져 놓는다던지, 혹은 중간중간 돌판을 대는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문경새재는, 이랬던 나의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앗아가버린, 첫번째 방문지였다. 


문경새재 1관문 앞. 전날 얼었던 터라, 약간씩 미끌리는 정도의 진흙길이었다. 
오픈 세트장 내. 광화문 앞 거리. 쉽게 걸음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찐득한 흙길이었다. 


완전 초입부에 위치한 문경새재 1관문까지는, 그 옆에 트램을 위해 건설된 포장로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흙길밖에 없었다. 다른 곳의 흙길과 달리, 견고하게 다져놓은 것 같지도 않았다. 방문객 수가 적지 않았는데,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행에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물이 고인 곳부터, 밟으면 미끄러질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뻘길이었다. 게다가, 그 길로 가끔 승용차가 오갔는데, 매우 천천히 운행하는데도 흙탕물이 화르륵 튀어올라 차량 옆면을 코팅하는 수준이었다. 


국립공원이 아니라 도립공원이라 그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방송사와 함께 드라마 세트장으로 운영하며 수입을 얻었을 것을 생각해 보면, 다른 도립공원에 비해 훨씬 재정이 탄탄할 것 같았다. 게다가 공원 앞 식당가의 규모도, 내가 경험한 웬만한 곳보다 컸다. 식당가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최대였다. 아마 수많은 스텝과 연예인들이 매끼 해결해야 하니, 그 높고 깊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가는데 왜 길이 이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리 저리 가설을 세워보다, 내가 도달한 결론은 바로, 흙길이 제일 조용하기 때문에 놔두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사극 오픈세트장은 도립공원 한켠에 위치하고, 1새재와 2새재 사이에 있으며, 새재길과 붙어있다. 오픈세트장이다보니, 새재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차량의 움직임 소리가 촬영 중에 삽입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많은 국립공원 보행로처럼 우레탄 느낌의 포장로는 꽤 조용한 편이지만, 차량통행이 어렵다. 보행로와 차도를 병행하기엔 옛길이 좁아 어렵다. 산길이나 좁은 숲속 산택로에 많은, 볏짚이나 가마니를 엮어 만든 보행로는, 넓은 길을 커버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성곽 유적이나 선비촌 등에서 보이는, 돌판 보행로는 소리가 크기도 크지만, 울린다. 새재길은 옛길부터 흙길이었기에,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하면 유적의 맛이 죽는다. 포장로 급으로 잘 다져놓은 흙길은, 모두에게 좋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모래와 신발이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크다. 인도처럼 타일을 까는 방식은, 소리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방송장비차량이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구도가 문제다. 


결국, 방송을 위해, 촬영을 위해, 보행의 불편을 감수하고, 부드러운 흙길의 유지는 도립공원의 가장 큰 소비자인 방송사의 요구가 따로 있었을 거라는 결론에 닿았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분명 소리는 없었다. 오픈 세트장 내부는 더 부드러운 흙이었고, 한옥들 뒤편으로 장비 돌리를 굴린 바퀴흔적이 진하게 여럿 남아있었다. 힘이야 들겠지만, 고가의 장비가 실린 수레들이니, 그 안전과, 가뜩이나 시끄러운 수레 바퀴들을 감안하면, 이런 결론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길일까 돌길일까


소수서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학 중의 하나다. 유학을 지도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이 모여 공부하고 일부는 생활하는, 일종의 기숙학원이 아니었나 싶다. 당연지사 그 환경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아니 조용하다는 단어로는 뭔가 부족하다. 고요하다. 곳곳에 선비의 절개를 뜻하는 노송과 은행나무 등이 있어

듣기 좋은 바람소리만 가끔 흩날릴 뿐이다. 


소수서원 곁 징검다리. 다리와 함께 보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형태상 현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였다.
소수서원 옆 보. 뭔가 옛날부터 있던 모양이었다. 물의 소리는 이곳에서 주로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 고요한 사색의 공간을 채우는, 불규칙하지만 지속적으로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있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였다. 얼기 직전의 차가운 1월의 냇물은 그 흐름이 여느 때보다 더 조용하기 그지없다. 특별한 장애물 없이 흐르기만 하는 하천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두어 개의 보가 설치되어 있었다. 애초에 보를 상정하고 만든 것 같은, 자연스러운 보가 하나 있었고, 다리의 기능을 만들되 보의 기능을 겸하도록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가 있었다. 


징검다리처럼 보이는 보는, 후대에 건축된 것 같았다. 조성된 산책로의 끝에 위치하여 하천의 양 건너편을 잇는 기능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돌의 모양이 직각이라, 물의 흐름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다만 고저차가 좀 있는 편이고, 하류지점은 풀이 가득하여 물이 부딪는 소리가 잔잔하게 형성되었다. 그에 반해, 징검다리보다 조금 더 상류에 있는 보는, 원래부터 수백년 간 그 자리를 지켜오던 듯 했다. 수량이 좀 적으면 징검다리로 사용할 수도 있을 법 했으나, 그 생김새가 물가에서 조용히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발걸음을 겨우 받아낼 정도의 모양이었다. 보를 조성한 것인지 원래부터 돌들이 구르고 굴러 그 곳에 박힌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연의 모양대로 물은 낙차를 그리며 세상 소란하게 흐르고 있었고, 텅 빈 공간을 소리로 채우는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두 길의 기묘한 공존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유적지에 있을 법한 옛길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참 많다. 차량 통행이 제한된, 유적지의 중심지역은 옛길을 정비하여 사람의 통행과 정비를 위한 차량의 통행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 정비차량은 우리가 쉽게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일반차량은 아니고, 골프 카트 같은, 초소형 전기차인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옛길은 일반 도로들처럼 중량을 받아내기 위한 토목설계가 반영된 것이 아닐테니 그렇게 운용하는게 아닐까 싶다. 


김제 금산사 입구 근처. 중앙이 원래 있던 길이고, 좌측은 차량통행을 위한 길, 우측은 산책로로 조성된 길이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유적지라도, 유적지 중심부로 접근하는 길은 옛길 하나로만 운용하지 않는다. 옛길은 옛길답게, 흙길이나 돌길, 혹은 산책로 기능을 위한 볏짚 길로 조성하고, 그 옆을 평행으로 돌아나가는 포장로를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옛길은 그 정취나 역사적 의미를 위해서라도 보존이 필요하다. 그 미적 수요의 충족을 위해 더 관리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그 길은 예전의 시대에서는, 끽해야 말이나 소, 혹은 수레나 달구지 정도의 이동수요만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최소 열 배는 되는 중량의 장비들이 움직인다. 주변에 서비스 건축물이 들어서는 경우도 있고, 기존 유적들의 개보수를 위해서 해체 후 다시 건립하는 경우도 있다. 사찰의 경우, 초대형 불상의 관리 및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중장비의 접근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제대로 된 포장도로를 바로 옆에 추가하거나, 혹은 멀리 돌더라도 다른 접근도로를 뚫게 된다. 


결국, 같은 출발지 같은 목적지를 갖는 복수의 도로가 함께 기능하는 셈이다. 옛길은 그 형태로 보나 너비로 보나 차량 통행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포장도로는 사람의 통행도 가능하다. 사람에게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주로 맨땅이 젖은 경우에 매우 유용하다. 현대식으로 조성된 돌판길은 마치 타일 같아서 돌과 돌 사이 흙이 젖긴 해도 찐득찐득하지는 않다. 그러나 돌은 단단하기는 하지만 잘 부서진다. 그리고 옛날 느낌의 판판하지 않은 돌판은, 물이 곳곳에 고여 있는 경우도 많다. 


김제 금산사 입구 쯤에 있던 옛문. 산책로와 연결도 안 되고, 차로에 갇혀 있다. 


옛길은 흙이나 돌로 구성된다는 재료상의 공통점 외에, 옛 건축물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공유한다. 옛길 중에 남은 길은 보통 성문을 통과하는 길 등 의미나 기능이 많았던 길이 남았다. 전자의 경우 형태가 보존되었지만, 후자의 경우 그 옆에 더 큰 길이 생기는 식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성문을 통과하는 길이 대표적인 후자의 예다. 성문의 너비는 그 옛날 기준으로는 정말 컸을 것이고, 대로의 너비 역시 과거의 수요를 처리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당부분은 조선말기 혹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신작로라는 이름 하에 부서지고 재건되거나 대체되기 시작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서울의 남대문, 동대문이나 수원 화성의 문들 처럼, 도로 교통의 중심에 위치하는 일종의 랜드마크로서 기능하는 것이 최선이 되었다. 신도심이 구도심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는 한, 그 위치는 여전히 중심지 혹은 부도심에 준하는 입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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