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gwoo Kim Feb 28. 2024

눈구름을 찾아 헤메다 (1)

눈속에 파묻힌 고창읍성 방문기

보이는 소리


보기에만 좋고 실질적으로 가치가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눈이다. 비처럼 바로 흘러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쌓이자마자는 예쁘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쉬이 더러워지거나 얼어버린다. 쉽게 치워지지도 않는다. 그 눈의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평소에 눈을 얼마다 보지 못했는가에 따라 그 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행히(?) 나는 눈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보는 것과 밟는 것, 그리고 적당히 만지작거리는 정도로 좋아한다. 애초에 눈이 내리지 않는 남쪽동네에서 나고 자랐고, 눈이 내려도 바로 녹는 동네였으니 더더욱 그렇다. 눈 많이 내린다는 동네로 이사왔지만, 뭔가 나는 눈구름을 쫓아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폭설이 내린 1월 말경, 구름 위성사진을 보다가 고창읍성을 찾았다. 큰 기대를 안고 간 것은 아니었다. 폭설을 기대하고 간 고군산군도에서, 눈이 쌓이지 않는 눈보라에 실망한 뒤, 조금이라도 눈을 밟아보자는 생각에 집에 가는 길을 돌려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고창읍성 주차장 앞, 이 정도의 설경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표지판은 있지만 길은 분간하기 어려웠다.


족히 발목을 넘어 다리 중간까지 빠지는 눈밭을 걷는 느낌은, 새로웠다.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들리는 소리지만,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이 걷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조용한 흙길이어도 주변 관람객들이 걷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날 나에게 들리는 눈의 소리는 나의 작은 공간에서만 울리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고창동헌과 내아 앞, 숲에 쌓인 눈이 갑자기 쏟아졌고, 순간 폭풍처럼 눈보라가 나를 휘감았다.

물리적으로 마이크에 잡히는 그런 소리만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의 귀도 충분히 민감하지만, 분명 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찍은 영상에는 찬공기에 대응하는 거친 숨소리가 기록되었지만, 내 기억에는 내 눈앞을 화려하게 감싸안던 하얀 눈꽃잎들과 그들이 내 공간을 스치는 소리만 가득했다. 


비슷한 경험을 순천만에서 겪었었다. 주변에는 관람객이 가득했다. 이따금 들리는 고함소리 일부를 제외하면,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오직 바람에 쓸려 서로 부딪치는, 갈대밭의 파도 소리 뿐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기에, 온통 갈대소리로 가득해지던 순간이면, 방향을 잃은 듯 발걸음을 멈춰세우곤 했다. 


10월의 순천만. 관람객이 가득했지만, 갈대소리만 내 귀에 가득했다.


실내는, 소리를 사시사철 설계할 수 있지만, 실외는 그렇지 못하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할 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극대화될 수 있다. 많은 경우, 눈에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시각적인 부분 역시,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새롭다. 그러나 청각적인 부분은 순간순간이 새롭다. 같은 모양이라도, 기억에 더 많은 모습이 담기는 것은 그러한 이유로 여러 가지 소리가 함께 하는 상황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을 나는 드론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