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과 함께 지인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코로나19 거리두기 단계가 1단계로 완화됨에 따라 결혼식장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바로 전 달만 하더라도 거리두기 2단계여서 친척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는데, 그 사이 확진자 수도 점차 줄어들고 도서관을 비롯한 주변 공공시설들도 차츰 개방하기 시작했다.
지인의 신부가 되는 여성분은 머리 위 화려한 왕관과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앉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결혼식장에 오면 난 항상 두 가지가 제일 궁금하다. 첫 번째는 신부가 예쁜지, 두 번째는 밥이 맛있는지
물론 신부의 외모만 보는 건 아니다. 신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헤어스타일, 웨딩드레스, 표정 등등 약 5초 안에 내 눈은 빠르게 이 모든 걸 스캔한다. 이래서 단순한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는 복잡한 존재인 걸까.
늘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부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약간의 ‘긴장감’과 ‘설레임’이었다. 오늘도 수줍게 미소를 띤 채 앉아있는 신부를 보며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는 그 설레임이 나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8년 전,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한껏 치장을 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고 수도 없이 거울을 보았던, 그 날의 신부였던 나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남자 친구가 지금처럼 늘 나를 사랑해주고 옆을 지켜줄 것 같은 그 믿음으로 행복을 꿈꾸며 결혼식장의 카펫을 밟았다. 늘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저 때는 몰랐었다.
물론 지금의 남편과는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ㅎㅎ
어쩌면 그 과정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결혼이 더 신비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입을 다문 채 지어진 신부의 수줍은 미소처럼.
결혼식이 곧 시작되고, 양가 부모님들이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유독 신부의 친정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결혼식 축가가 시작되고, 신부의 친정엄마는 계속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눈에 뭐가 들어간 줄 알았으나 곧 눈물을 참으려고 수없이 눈을 깜빡거림을 알 수 있었다. 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눈물을 삼키려는 그 마음이 느껴지자 내 눈시울도 같이 붉어졌다. 그리고 나도 같이 울었다.
전에는 신부 입장에서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되는 그 마음에 신부와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는데,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또 나의 친정엄마가 없다 보니 다른 친정엄마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를 통해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하셨겠구나, 이런 마음이시겠구나 라고 나 혼자 상상을 하곤 한다.
딸을 시집보내는 이 기쁜 날에 조금이라도 딸이 마음 편하게 식을 올릴 수 있도록 갖은 애를 쓰며 울음을 삼키는 신부의 친정엄마를 보면서 나의 친정엄마를 떠올렸다.
내가 결혼식을 올린 땐 이모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주셨지만, 엄마가 계셨다면 바로 저런 마음이셨겠구나 라고 상상을 하며 내 결혼식에 오지 못한 엄마의 ‘그 마음’을 그분의 깜빡거리는 눈을 보며 친정엄마의 마음을 계속 느꼈다.
축가가 시작되고 다음 단계가 진행되었지만 나는 오로지 신부의 친정엄마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치 8년 전 결혼식장에서 내가 느끼지 못했던, 알 수 없었던 내 친정엄마의 마음을 그분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간절한 심정으로 그렇게 나는 ‘엄마를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사랑받는 딸이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었던 게다.
신랑 신부가 신부 측 부모님과 인사하는 시간이 되자, 친정엄마는 마지막에 두 팔 벌려 딸을 꼭 안아주었다. 딸을 떠나보내는 그 애틋한 마음으로.
나의 엄마도 27년 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고, 애써 키운 나를 떠나보낼 때 저렇게 두 팔 벌려 힘껏 안아주셨을 테지?
마침내 옆에 앉은 8살 큰 딸을 보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엔, 내가 저 자리에 앉아 내 딸을 저렇게 떠나보내겠지.라고 생각하자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저 자리에 내가 앉아있어야 하는데 라는 심심한 걱정을 뒤로한 채,
내 발걸음은 유유히 뷔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