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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01. 2018

내 생애 가장 멍청한 짓

설악산을 넘어가겠다고?

강원도 인제에서 속초로 이동해야 했다. 어떻게 가야 하지? 핸드폰으로 지도 어플을 켜고 검색을 해보려는데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설악산


나는 예전부터 설악산의 정상, '대청봉'에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그곳에 올라가면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해돋이까지 볼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 인제가 설악산 바로 아래쪽에 위치해있었구나... 속초도 설악산 바로 옆쪽이네?'


'이참에 설악산을 넘어가 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다. 살아서 돌아온 것이 다행일 정도로.

첫 번째 문제는 내 배낭이었다. 무게가 20kg이었던 내 배낭 안에는 등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카메라 장비와 여벌 옷들로 가득했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짐을 지고 등산을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식량. 설악산 정상에는 '중청대피소'라는 곳이 있어 예약을 하면 이곳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지금은 없어진걸로 알고있다) 무턱대고 이곳을 예약한 나는, 이날의 점심, 저녁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총 3끼의 식량을 준비해야 했는데, 3끼를 모두 빵으로 가져갔다.


한마디로 설악산을 얕본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날 비까지 내렸다. 결국 나는 우비까지 걸치고 설악산 등반을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 (패기는 정보가 없을때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설악산에 대한 정보 없이 패기만 가지고 출발한 등산 초보에게 고행의 길은 예견된 것이었다.


"아니 무슨 배낭이 이렇게 커?", "정상에서 텐트 치고 자려고?"


지나가시는 분들마다 배낭에 대해 물어보셨다.

"아뇨. 배낭을 잘못 가져온 것 같아요..."

"우리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조심해서 와~"

등산객들은 무거운 배낭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나를 제치며 하나둘씩 지나갔다. 배낭은 계속해서 내 어깨를 짓눌렀고, 멈출 생각이 없는 비는 계속해서 나의 시야를 가렸다. 등산을 시작한 지 30분이나 지났을까? 그냥 여기서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다가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산 중턱에서 멈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상이 어디지?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체력이 떨어져 잠시 앉아 쉬면, 땀과 비에 젖은 옷 때문에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거기다 배까지 고프니 완전한 거지꼴이 따로 없다.


다시 일어서 등산을 이어가는데 더 이상 다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중간중간 보이는 SOS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119 구조대?

'저기에 전화를 해야 하는 건가? 아니야 끝까지 가보자.' 계속 가느냐, 포기하느냐 두 가지 선택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맴돌았다.



냉장고 안에 있는 것처럼 정말 추웠던 정상 부근.

등산로 입구에서 만났던 많은 등산객분들은 모두 정상에 도착하셨는지,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 홀로 올라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올라다가 보니 드디어 '대청봉'이라는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1시. 그렇게 등산을 시작한 지 약 4시간 반 만에 대청봉 정상에 올랐다. 



비가 내려 전망이 보이지 않던 대청봉

'하... 내가 이걸 보러 왔던 건가?...'


짓궂은 날씨 때문에 기대했던 전망도 볼 수 없었고, 체온도 많이 떨어져,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중청대피소로 향했다.


"이제 도착한 거야?"


"네..."


올라오면서 만났던 등산객분들은 이미 중청대피소에서 식사까지 마치고 하산을 준비하고 계셨다.(이분들은 설악산을 당일 코스로 오셨다고 했다)


"이거 먹다 남은 건데 괜찮으면 좀 줄까?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제가 사실 빵만 가져와서.."


"하루 자고 가는 거 아니었어?"


"네... 처음 오는 거라 이 정도면 될 줄 알았어요..."


다들 내가 불쌍해 보였던 것일까? 나에게 남은 밥을 주시는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분이 나에게 김밥을 주셨고,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분이 김치를 주시고,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분들이 떡과 물을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먹거리가 풍족해진 나는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등산객들이 주신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먹다 남은 김밥, 그리고 식은 밥과 김치였지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음식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군대 이후 처음으로 '살기 위해' 음식을 먹었던 것 같다.


전투적인 식사를 마치고 나니 휴식이 필요했다. 등산하는 동안 체온이 너무 떨어져 따뜻하게 쉴 곳이 필요했는데, 대피소 객실은 오후 5시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아 몸이 너무 추운데'


체온이 많이 내려갔는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단 급한 대로 취사장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침낭을 펴서 누워있기로 했다. 다른 등산객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이 점점 더 추워지는 듯하더니,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고 방송이 나왔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운 관계로 대피소를 한 시간 일찍 개방하겠습니다"


'와 살았다'




대피소 객실에 들어가 꿀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점심에 적선받은 음식을 들고 취사장으로 내려갔다. 취사장은 등산객들로 가득 차있었다. 다들 같이 온 사람들끼리 모여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라면을 끓이는 사람들, 고기를 굽는 사람들, 찌개를 끓이는 사람들... 취사장에 홀로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밥, 김치, 떡 그리고 빵... 이걸로 내일 아침까지 버텨야 한다. 배분을 하자'


남아있는 음식이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내일 먹을 식량을 남겨두기 위해 두 끼로 나누었다. 이 모습을 본 옆 테이블 아버님 한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혼자 왔어요?"


"네"


"이거 같이 먹어요. 우린 다 먹었어요."


친구분들끼리 함께 등산을 오신 아버님 네 분은 드시던 고기와 소시지 그리고 갓김치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많이 먹어요. 우린 다 먹었으니까"


산 정상까지 무겁게 가져온 음식을 나눠준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건네는 것이 아닌, 아주 소중한 보물을 나눠주는 느낌이었다. 이날 나에게 음식은 말 그대로 '생존'이었고,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에너지' 였기에 더욱이 그렇게 느껴졌다.


요즘처럼 먹거리가 풍족한 시대에 '음식의 소중함'을 느껴볼 기회가 또 있을까? 이때는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 된 것 같다.



2018.06.10-06.11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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