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의 한 토마토 농장. 이곳은 대형 비닐하우스 안에서 흑토마토를 주로 생산하는 농가였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총 5명. 모두 태국에서 오셨다. 딱 한 분만 제외하고 한국말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작업장은 온통 태국어로 가득했다.
"한국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6월 돼써요(6개월 됐어요)"
"일은 힘들지 않으세요?"
"(고개를 저으며) 한국말 몰라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있었다. 잠깐잠깐 쉬는 시간에 손짓 발짓을 해가며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어가 가능하신 분이 계실 때는 통역을 해주셔서 서로 이야기가 가능했지만, 이분은 한국말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장님의 지시를 받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바쁘셨다.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손발은 잘 맞았다
아버님(사장님) 역시 작업을 지시할 때 이분이 없으면 지시 전달이 잘 되지 않아 힘들어하셨다. 수량을 잘못 알아듣거나, 한곳을 남겨두고 작업을 하라고 말했는데 잘못 알아듣고, 다른 작업을 해버리는 등등 언어소통의 문제가 계속된다고 했다.
"아버님, 의사소통이 안되면, 일하실 때 힘들지 않으세요?"
"그래도 저 친구들 없으면 농장이 안 돌아가."
실제로 대부분의 시골에서는 외국인이 없으면 더 이상 농경지가 돌아가지 않았다. 특히 규모가 큰 농장이라면 더욱더 그랬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 등등 국적도 점점 더 다양해져 갔다. 이제는 외국인이 없는 시골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다. 어떤 시골은 읍내에 위치한 식당의 매출 대부분이 외국인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정도이니, 얼마나 외국인 수가 급증했는지 알 수 있다.
인건비가 올라 일당을 많이 주어도, 내국인은 농사일을 하지 않으려 할뿐더러,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도시에 나가 있어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농가는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외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외국인들 중에 불법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들도 많다는 것인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되었다.
불법체류자는 말 그대로 불법으로 체류 중인 상태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계약을 할 수가 없다. 구두계약으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가끔 바쁜 농사시즌에 야반도주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일손이 여유로울 때는 일을 잘하다가 바빠지는 시기에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농장주들은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멍 때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야반도주'의 주동자가 대부분 한국인 브로커라는 것이다. 한국인 브로커는 그들의 약점인 '불법체류'를 이용하여 협박을 하고, 다른 농장으로 그들을 이주시킨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이사비용' 의 명목으로 챙기는 돈은 적게는 1인당 20만원부터 많게는 50-60만원.(정확한 금액은 아니다)물론 불법체류로 돈을 버는 것도 잘못됐지만,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 역시 잘못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정식으로 인증된 근로자와 농가를 이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데, 농가에서 필요한 인력에 비하면 너무 적은 인원수라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도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 지역은 이 마저도 없어서 고용을 못한다고 하니 농촌의 일손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