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을 넘어왔다니...
대피소에 들어가 꿀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적선받은 음식을 들고 취사장으로 내려갔다. 취사장은 등산객들로 가득 차있었다. 다들 여러 명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라면을 끓이는 사람들, 고기를 굽는 사람들, 찌개를 끓여 먹는 사람들... 취사장에 홀로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밥, 김치, 떡, 빵... 이걸로 내일 아침까지 버텨야 한다. 배분을 하자'
양이 얼마 되진 않았지만 두 끼로 나누었다. 이 모습을 본 옆 테이블 아버님 한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혼자 왔어요?"
"네"
"이거 같이 먹어요. 우린 다 먹었어요."
함께 등산을 오신 아버님 네 분은 드시던 고기와 소시지 그리고 갓김치까지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많이 먹어요. 우린 다 먹었으니까"
산 정상까지 힘들게 가져온 음식을 나눠준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건네준다는 느낌이 아닌 소중한 보물을 남에게 나눠주는 느낌이었다. 자주 모여 등산을 즐기신다는 아버님들의 연세는 모두 70대이셨는데, 함께 등산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으셨다고 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한참 동안 등산과 인생에 관한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님, 이렇게 힘든 등산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재밌으니까! 힘들지만 재미도 있고 건강해지기도 하니까!"
정말이었다. 대답하시는 아버님들의 얼굴이 정말로 행복해 보이셨다. 70대의 나이에 설악산 등반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다른 등산객들보다도 활기가 넘치고 건강해 보이셨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천천히 일어나 하산 준비를 했다. 많은 등산객들이 아침 일찍부터 하산을 시작했는지, 등산객으로 꽉 찼던 대피소 객실은 썰렁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날씨가 좋지 않아, 천천히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산을 내려가는 일은 산을 오르는 일보다 힘들었다. 절반도 안 가서 무릎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등산스틱을 사는구나'
야속하게도 하산하는 코스에는 수많은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이 너무 아파 계단만 나오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뒤로 가기 스킬. 그나마 무릎에 무리가 덜 가는 느낌이었다.
'으아아아아 아 계단이 너무 많아'
이 와중에 설악산 풍경은 절경이었다. 무릎이 아파도 설악산 풍경에 멈춰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정말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평지가 펼쳐졌다.
'빨리 어디든 가서 쉬고 싶다...'
약 6시간이 지나, 속초 방향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2018.06.11
설악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