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총각 Dec 07. 2018

자연에는 인간의 기술이 들어가면 안 돼

행복한 유산양들

아침에 일어나 산양유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와~ 너무 고소한 대요?"


강원도 강릉에서 유산양을 키우시는 아버님은 항상 산양유와 함께 일과를 시작하셨다. 유산양이란 유(乳, 젖 유), 즉 산양유를 얻기 위해 키우는 산양이다. 아버님과 함께 시작한 아침 일과는 수수와 조 파종하기. 가을에 수확하는 수수와 조는 친환경으로 재배하신다고 하셨다.

수수와 조 파종하기

"아버님 친환경으로 농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유산양들에게 주려고 시작했지"


"아 판매하시는 게 아니에요?"


"판매도 하긴 하는데 대부분 산양이 먹지"


이어서 시작된 작업은 살구와 매실 줍기. 아버님 댁 주변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살구나무와 매실나무는 과실이 너무 많이 달려 나무 스스로 열매를 땅으로 털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나무 주변 수풀에는 잘 익어 떨어져 있는 살구와 매실로 가득했다. 나는 아버님이 주신 하얀 통 안에 떨어져 있는 살구와 매실을 주워 담았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살구들을 주워담았다

"이거 너무 아까워서 어떡해요?"


"산양들 먹이야"


"걔네들이 이거도 먹어요?"


"엄청 좋아하지"


아버님은 살구와 매실을 조금 더 가져가야 한다며, 막대기를 이용하여 살구와 매실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안 드세요?"


"난 안 먹지. 다 산양들 주는 거야"


맛이 없어 안 드시는 건가? 떨어져 있는 살구를 하나 주워 먹어보았다. 은은하고 달콤한 살구향이 입속에서 퍼지는 게 맛이 꽤나 좋았다. 주변에 사시는 동네 주민들도 가끔 이곳에 찾아와 살구와 매실을 주워가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수확하시는 모든 것을 유산양에게 주셨다.


"아버님은 왜 안드세요?"


"친환경으로 재배한 곡물과 과일들을 유산양들에게 먹이고, 나는 유산양유를 마시면 돼. 그럼 다~먹은 거지"


나는 아버님의 신기한 이론에 묘하게 설득되었다.


"그렇네요?"


"산양들이 어떤 걸 먹었느냐에 따라 산양유의 맛도 달라져"


몸에 좋은 것들은 다 먹고 지내는, 호강이란 호강은 다하고 사는 산양들이 궁금해졌다. 주운 살구와 매실을 트럭에 한가득 싣고, 귀하신 그분들(?)이 지내는 곳으로 가보았다. 트럭에서 내린 아버님은 울타리에 안에 있는 산양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워이~ 워이~ 밥 먹자"


살구와 매실을 먹는 유산양들

산양들은 곡물가루와 함께 섞인 살구와 매실을 빠른 속도로 먹어치웠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동물들은 '먹다'라는 행위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 같다. 먹이 활동을 끝낸 산양들은 아버님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산책을 하는데 항상 다니는 코스가 정해져 있었다. 산양들은 자신들의 코스를 이탈하지 않고, 산책로 주변에 있는 풀들을 먹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산양 무리 뒤에서 따라다기만 하시며, 혹시나 이탈하는 애들을 무리 안으로 인도하셨다. 나도 아버님을 따라 산양 무리를 따라다녔다. 마치 양치기 소년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산책 중 뒤쳐진 새끼 산양들

"한 40분에서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오는데, 시간이 되면 얘네들이 알아서 집으로 돌아와"


아버님 말씀대로 산양들은 알아서 산책을 하며 돌아다녔다.


"우린 여기 앉아서 쉬자고"


하루의 일과 중 산양과 산책하는 이 시간이 가장 좋다는 아버님의 말씀에서 산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저 멀리 풀을 뜯고 있는 산양들을 바라보며, 아버님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 산양들은 주인을 정말 잘 만나서 호강하네요"


"허허"


"자연 속에 있는 산양들이 정말 행복해 보여요"


"그럼 그럼. 동물이 곧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키워야지"


자연에는 인간의 기술이 들어가면 안 돼


2018.06.21-06.26

강원도 강릉에서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온총각


이전 04화 용왕님이 주셔야 잡을 수 있는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