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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13. 2018

농사해보니 어떤가? 할만하던가?

피를 뽑아보자

드디어 강원도를 지나 경상북도로 이동했다. 경상북도의 첫 번째 목적지는 안동. 그곳에서 쌀, 애호박, 멜론, 딸기 등 다양한 농사를 지으시는 이장님 댁에 찾아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 왔는가?"


처음 이장님께 전화를 했을 때,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지 설명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 음식과 지역 농수산물을 주제로 배낭여행 중인 청년 김동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배낭여행 중인데요. 혹시 그곳에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던 이장님은 "일이야 만들면 되지, 일단 한번 오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찾아간 이장님은 아주 유쾌하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농촌 체험을 하고 싶다고?"


"네, 밥만 챙겨주시면 농사와 관련된 어떤 일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실 지금은 딱히 바쁜 시기가 아니라 할게 많지는 않아, 뭐 그냥 이야기나 하고 그러세."


농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는 7, 8월은 일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름에 수확하는 작물이 아니라면 여름 시즌은 가장 한가한 달이기도 했다. 


"자네 패기가 맘에 들어서 한번 보고 싶어서 오라고 한 거야"


"감사합니다!"


"그래도 일을 하고 싶어 하니, 내가 할 일을 한 번 찾아보지"


말씀은 이렇게 하셨지만 대부분의 농가는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딸기 종묘장 잡초제거를 시작으로 비닐하우스 차광망 작업, 애호박 수확하기 등 각종 작업이 내게 주어졌다. 

정말 여러 가지 다양한 작업을 했다


이곳에서 일손을 도와드린지 셋째 날, 이장님은 나에게 제대로 된 농사 체험을 경험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물장화' 하나를 선물(?)해주셨다. 


"농사를 제대로 느껴보려면 논에 들어가야해"


이날 주어진 작업은 논에 자라난 피 뽑기였다. 피는 논이랑 아주 비슷하게 생긴 일종의 잡초인데, 피가 벼 옆에 자라면 벼에 필요한 양분을 다 빨아들여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장님은 쌀을 '친환경'으로 생산하고 계셨기 때문에, 제초제나 농약을 사용하는 대신, 우렁이를 풀어놓아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하셨다. 하지만, 우렁이는 제초제만큼의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에 논에 피가 많이 자랄 수밖에 없었다.

피가 많이 자란 논의 모습

나는 생전 처음으로 벼가 자라 있는 논에 들어가 피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논에 있는 벼와 피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쩜 이리도 똑같이 생겼을까? 농부님들도 구분하기 힘든 게 벼와 피라고 하는데, 이 일을 처음 하는 나에겐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행여라도 피가 아닌 벼를 뽑을까 걱정되어 집중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 넓은 논을 언제 다 작업하지?...'


무더운 여름 땡볕 아래 논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이 차있는 논은 발이 푹푹 빠져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었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은 온몸을 땀으로 젖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작업을 아무리 해도 일한 티가 안 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2~3시간 동안 작업을 하고 나니 이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래... 어떤가? 할만하던가?"


"덥기도 하고 벼와 피를 구분하는 것도 어럽고... 일일이 손으로 뽑으려니 정말 힘드네요..."


"예전에는 피 뽑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작업을 다 수작업으로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서 다 기계로 하지, 그래도 힘든 게 농사야"


과거의 농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지었다고 하지만, 모든 작업을 인력으로만 해결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됐을까?


지금은 기계의 발전 덕분에 적은 인력으로도 작업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적은 인력'이라는 말은 결국, 인력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농산물에는 농부님의 손길이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농산물에서 농부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나 역시도 직접 농사일을 체험해보기 전까지는 음식을 먹을 때, 이 식재료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직접 체험을 해보니 농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고,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2018.07.02-07.08

경상북도 안동에서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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