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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14. 2018

불편함이 주는 안락함

나는 자연인이다

"우와, 미꾸라지네요?"


아침에 일어나 여기저기 논에 설치된 통발을 확인했다.


여긴 몇 마리, 저긴 몇 마리인지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미꾸라지 잡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은 경상북도 의성의 한 마을. 아버님 두 분이서 쌀농사와 미나리 농사를 지으시는 곳이었다.

통발에 들어있는 미꾸라지를 확인하고 계신 아버님


아침에 잡은 미꾸라지는 큰 대야에 담아 무게를 쟀다. 그리곤 하나의 논에 모두 풀어놓았다. 미꾸라지를 이용한 친환경 논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하루의 일과의 시작은 항상 미꾸라지 잡기였다. (논에 미꾸라지를 키워 농가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사업이었다)


그다음 할 일은 아침 준비. 메뉴는 간단했다. 흰쌀밥, 닭뼈와 각종 약재를 넣고 끓인 닭곰탕 그리고 풋고추와 쌈장. 며칠째 계속 같은 메뉴였지만, 이상하게 질리지 않았다. 직접 농사지으신 쌀로 지은 밥은 탱글탱글하면서도 깊은 단맛이 났고, 먹을 때마다 직접 따와야 하는 풋고추는 부드러우면서도 달큰한 맛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풋고추는 이분들의 주요 작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신경쓸 시간이 없었다고하셨다. 덕분에(?) 이 풋고추는 자연스레 친환경 고추가 되었고, 매끼니마다 아버님들의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시작된 비닐하우스 레일 설치 작업. 미나리 수확시기에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비닐하우스 위에 레일 설치를 할거라고하셨다. 하우스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하려는데, 뜨거운 여름날 햇빛을 잔뜩받은 비닐하우스 안은 찜질방과 같았다. 

무더운 비닐하우스 안

"좀 쉬었다 하자"


더위를 피해 잠시 쉬려는데 마땅히 쉴만한 공간이 없었다. 아버님 두 분 모두 창고 안에서 모기장을 쳐놓고 생활하셨는데, 슬레이트 구조로 되어있는 창고 안 역시 햇빛을 받아 외부 온도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결국, 12시 부터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 햇빛을 피해 바깥으로 나가있어야 했다. 

잠자는 곳이자 주방이었던 창고


해가 떨어지자 다시 레일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낮에 쉰만큼 작업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는데, 작업 자체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하루 종일 흘린 땀 때문에 몸이 축 쳐진 느낌이었다.


"아버님, 샤워하고 싶은데 어디서 하면돼요?"


"밖에 지하수 설치된 곳이 있어. 거기서 하면 돼"


아버님이 설명과 함께 가리킨 곳은 논 한복판에 설치되어있는 지하수 펌프였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논 한복판에서 샤워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루 종일 이 논길을 지나다닌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아무도 안 지나다니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으니까'


옷을 다 벗고 밖으로 나갔다. 날은 더웠지만 지하수는 차가웠다. 한여름밤에 뒷골 당기는 차가운 지하수로 샤워를 하니 정신까지 확 깨는 느낌이다.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니 반짝거리는 별빛이 가득했다. 샤워하기엔 조금 불편했지만, 별빛이 가득 쏟아지는 자연 친화적 샤워장이라니... 살면서 이렇게 멋진 샤워장이 있을까? 


수도 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물 마시기도 힘들고, 설거지와 샤워도 지하수로 해결해야 했고, 잠자는 곳 역시 가장 불편했던 이곳. 지내는 내내 몸은 가장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마음 편히 지냈던 곳이었다. 


미꾸라지를 잡는 아버님, 식사 시간 때마다 따러갔던 고추, 윤기 있고 달큰한 흰쌀밥, 푸른 논, 멋진 노을, 반짝이는 별. 마치 자연 속에서 사는 느낌을 느끼게 해 주었던 이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8.07.08-07.12

경상북도 의성에서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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