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잡이
"배를 타고 싶다고?"
"네, 기회가 된다면 꼭 타고 싶습니다"
속초가 고향인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속초 아바이 마을의 한 식당. 식당을 운영 중인 어머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어 왔니?
"안녕하세요"
"배를 타고 싶다고?"
"네"
얼굴에서부터 '쿨'함이 풍기는 어머님은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여기 뱃일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내일 같이 나갈 수 있어요?"
전화를 끊으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어 여기 마을에서 문어잡이 하시는 분인데, 아마 이분이 도와주실 거야"
잠시 후, 이북 사투리 억양이 강한 아버님이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이 친구구만! 배를 타보고 싶다고?"
"네 기회만 주신다면 꼭 타보고 싶습니다"
"배를 타본 적은 있니?"
"아니요..."
배를 타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배를 타기 위해서는 선원 등록을 해야 했다. 만약 바다에서 사고가 나면, 그 배에 누가 탔었는지 알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또한, 뱃일의 가장 큰 적인 '뱃멀미'. 만약 내가 배 위에서 뱃멀미를 한다면, 조업을 도와주기는커녕 민폐만 끼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배를 타시는 분들은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배에 태워주지 않으려 했다.
"괜찮을까요?"
"일단 한번 가보지 뭐"
"감사합니다!"
나는 아버님과 함께 신분증을 들고 해양경찰청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으로 가보는 해양경찰청에서 생전 처음으로 '선원 등록'이라는 것을 했다.
'드디어 나도 배를 탈 수 있구나'
"내일 옷 따뜻하게 챙겨 입고, 새벽 3시 반까지 배가 있는 장소로 와라"
아버님은 나에게 배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시고 쿨하게 집으로 들어가셨다.
다음날 새벽 3시 반.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어 왔니? 저기 앞에 앉아라"
나는 아버님이 가리키신 배의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퉁퉁퉁퉁. 시간이 되자 아바이 마을에 정박되어있던 작은 배들이 하나둘씩 출항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가는 배들은 대부분 문어를 잡기 위한 배들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문어잡이는 혼자 해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큰 배가 필요 없어"
쌀쌀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포인트에 도착한 배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낚시추가 달린 부표를 바다에 띄우기 시작했다. 미끼는 따로 없었다. 문어들은 반짝거리고 뾰족한 낚시추를 먹이로 착각하여 달려들기 때문에, 바다에 추만 던져놓으면 날카로운 낚시추에 걸려 도망가지 못한다고 했다. 문어잡이 배들은 그러한 문어의 특성을 이용해 약 20개의 추를 던져놓고 배 위에서 부표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아버님 근데 문어가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어떻게 알아요?"
"문어가 걸리면 부표 움직임이 다르다고"
동해 바다라 그런지 파도도 제법 쎄고, 바람까지 불어 부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아버님은 신기할 정도로 문어가 걸려있는 부표를 찾아내셨다. 아버님은 움직임이 다른 부표로 배를 몰고 간 다음 손으로 조심스럽게 부표를 건져 올리셨다.
낚싯줄을 걷어 올리시는 아버님의 자세가 사뭇 진지했다. 끝에 문어가 걸려있어도 걷어 올리는 과정에서 문어가 떨어지면 말짱 꽝이기(?) 때문이다.
"배 위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잡힌게 아니야"
아버님은 거친 바다 위에서 섬세한 손길로 낚싯줄을 걷어 올리셨다. 찰나의 순간, 긴장감마저 맴돌았다. 배 위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민폐만 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하게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렇지!!"
긴장감을 깨는 기합 소리와 함께 문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아아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문어다. 문어가 올라오니 진지했던 아버님의 표정에도 미소가 번졌다. 싱싱한 문어는 곧장 아이스박스로 직행했다. 잠시 후 다른 부표에서도 신호가 왔다.
"그렇지!!"
또다시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두 번째 문어가 올라왔다. 아버님은 문어가 잡힐 때마다 활기찬 에너지를 뽐내셨고,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그렇게 이날 총 5마리의 문어가 올라왔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있었고, 아버님이 밥을 먹자고 하셨다. 이날은 특별히 나를 위해 라면을 끓여 주신다고 하셨다. 그것도 갓 잡은 문어를 넣은 '통문어 라면'. 이날 잡았던 문어 중 한 마리가 냄비에 통째로 들어갔다. 보글보글.
싱싱한 문어는 쫄깃한 식감과 함께 풍부한 감칠맛을 자랑했다. 바다 위에서 먹는 문어라면이라니... 낚시를 좋아하거나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상해봤을 장면이다.
"우와 아버님 너무 맛있어요!"
"많이 먹어라"
"네! 근데 아버님 아버님도 문어 자주 드세요?"
"자주 먹긴, 팔아야지! 오늘 네가 온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거다"
"감사합니다!"
황홀한 선상 위에서의 식사를 하며 아버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님, 근데 오늘 이 정도면 문어 많이 잡은 건가요?"
"그렇지 5마리면 많이 잡은 거야"
"보통 몇 마리 정도 잡으세요?"
"대중없지, 새벽 4시에 나와서 오후 12시까지 한 마리도 못 잡을 때도 있고..."
"문어는 용왕님이 주셔야 잡을 수 있는 거야"
문어잡이는 양식업이나 농사와는 다르게 철저히 그날의 운에 맡긴다. 문어가 많이 잡히는 날에는 기분이 좋게 집으로 돌아오지만, 문어가 잡히지 않거나 날씨가 좋지 못한 날에는 허탕을 치고 온다. 아버님의 말대로 용왕님의 선택을 받아야만 문어를 잡을 수 있다. 내가 노력한다고 더 많이 잡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은 욕심 없이 배를 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문어잡이 배만 있으면 큰돈은 아니지만 먹고살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만족하신다는 아버님.
욕심을 버리면 뱃일도 할만해
ps.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아버님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2018년 5월, 지역 음식과 지역특산물을 주제로 국내배낭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시골 농촌을 다니며, 농사일을 돕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151 일간 각 지역의 농부님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농사일을 직접 체험하면서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6.12-06.18
속초 아바이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