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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Mar 08. 2019

아버님 잘 쉬다 갑니다

하동에서 다시 만난 인연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약 한달전, 밀양에서 만난 아버님 댁에 있을때, 아버님의 지인 두분을 만났었다. 밥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두분 중 한분이 나의 여행에 흥미를 보이셨고, 자신이 하동에서 지내고 있는데 혹시 하동에 오게되면 꼭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건내주셨다.


"하동에 오면 꼭 연락하라구"


뭔가 세상을 통달하신듯한 이 아버님은 혼자서 약초를 공부한다고 하셨다. 편견일진 모르겠지만 왠지모르게 약초를 공부하시는 분들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시는 분들처럼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삶을 살아가시는 것 처럼 느껴진다.


여하튼 무언가 강력한 포스에 이끌려, 하동에 가면 꼭 연락을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하동에 갔을때 정말로 연락을 드렸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잘지내시죠?"


"어 자네 하동에 왔나?"


"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찾아 봬도 괜찮을까요?"


"그럼 언제든지 놀러와"


그렇게 하동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들어가 한 마을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비가 온다던 일기예보대로 부슬부슬 비가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슬쩍 마을을 둘러보니 이 곳은 세상과 단절된 마을처럼 보였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시골이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주변에 풀들이 무성해 초록색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비를 맞으며 아버님이 알려주신 집 주소로 향했다. 잠시후 저멀리서 아버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안녕하세요~ 잘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고생많지?"


"에이 아닙니다. 잘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한달만에 다시 뵌 아버님은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 계셨다.


"팔은 어쩌다 다치셨어요?"


"뭐 그냥 넘어져가지고"


집에 도착한 나는 방에 짐을 풀고 집을 둘러보았다.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와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었고, 살짝 개조를 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이 집은 '시골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내가 전형적으로 떠올리던 그런 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아버님 여기서 혼자 지내시는거예요?"


"아~ 집사람도 어딜 다쳐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어. 닮을걸 닮아야지 다치는 걸 닮아가 되겠나"


약초를 다루시는 아버님은 집 주변을 구경시켜주시면서, 자신이 직접 키우거나 주변 산에서 채취해오신 약초들을 구경시켜주셨다.


"이건 가래나무고... 이건 줄풀이라는거고... "


아버님은 집 바로 옆에 창고로 쓰이는 방에서 약초를 말리고 계셨고, 집안 여기저기 약초가 가득했다.


"처음보는 약초가 정말 많네요"


"내가 팔만 안다쳤으면 오늘도 산에 돌아다녔을텐데"


밖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집안으로 들어온 아버님은 나에게 점심을 준비해주셨다. 이날의 메뉴는 들깨 미역국과 죽순장조림, 고구마순김치 그리고 아버님이 직접 담그신 칡술.


간단한 밥상이었지만 정말 인상적인 밥상이었다.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밥은 다른 표현없이 정말 맛있었다. 특히 죽순 장조림과 고구마순김치는 아직도 그 아삭거리는 식감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거기에 반주로 곁들이는 칡술은 각종 양념으로 자극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점심식사

배가 차도록 점심 식사를 한 뒤, 반주로 마신 술도 깰겸 잠시 낮잠을 청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버님이 잠시 밖에 나갔다오자고 해서 차를 타고 인근 산으로 나가보았다. 아버님은 산속에 있는 다양한 나무와 약초들을 보며 나에게 설명해주셨다.


"이건 어디에 좋은 무슨 나무고, 저건 어디에 좋은 무슨 약초야... "


약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겐 그저 다 같은 나무고, 다 같은 풀처럼 보이는데 아버님은 이곳이 온통 약초 밭이라고 하셨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아버님은 운전을 하시다 잠시 차를 세우시더니 길가에 떨어져 있는 밤을 주우셨다. 나도 덩달아 빗속에서 비를 맞으며 땅에 떨어진 밤을 주웠다. 큰 밤들은 누가 다 가져갔는지 알맹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밤들 속에는 알맹이 몇개가 보였다. 아버님은 양손에 딱 먹을 만큼의 양만 주우시고는 다시 차에 올라타셨다.


"오늘은 이정도만 줍고 돌아가자."


아버님은 차를 몰고 이내 집으로 가는 듯 하더니, 한참을 달려 다른 마을에 있는 한 치킨집으로 차를 모셨다. 내가 놀러왔다고 치킨 한마리를 사주신다고 하셨다. 사실 배가 불러서 치킨은 필요없었지만 어른들이 사주시는 음식은 사양말고 먹어야한다.


치킨을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을 사들고 집에 들어와 다시 빗소리가 나는 마루에 앉았다. 아버님은 점심에 드셨던 칡술을 다시 꺼내오셨다.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싫었지만,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치맥 아니 치칡(치킨 & 칡술)을 하니,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또 없다. 비가 오며 풍기는 흙냄새가 그 정취를 더했다. 아버님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인생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 있는 동안 나도 마음이 편했는지 내가 가지고 있던 다양한 고민들도 털어놓았다.


"아버님, 밀양에서 잠깐 본 저에게 연락처를 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고생할게 뻔해서, 혹시라도 하동에 오면 하루 쉬고 가게 하고 싶었지. 그냥 마음 편히 쉬다가"


"감사합니다"


사실 그동안 정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돌아다녔기에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지만,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잠자리를 해결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특히 농사를 짓는 분들은 각자의 생활패턴이 존재했는데, 내가 그 패턴에 들어감으로써 생활 리듬이 망가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식사시간이 있다. 농사를 짓는 농부님들은 사실상 밥먹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있지 않았다. 흔히 '대중없다'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던 일이 마무리 되는 때가 바로 '밥먹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내가 있었기때문에 밥시간을 최대한 지켜주려고 하셨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편하게 지내려고해도 눈치가 보이는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쉬고싶으면 쉬고, 밥 먹으려면 먹고. 맘대로해"


정말 시골집에 놀러온 조카처럼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던 하루였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이곳에서의 하루는 나의 마음을 그 어느때보다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버님 잘 쉬다 갑니다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9.03

경남 하동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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