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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Mar 26. 2019

화순에 오거든 꼭 들르세요

'정'을 느끼다

난 참 운이 좋은 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복이 정말 좋은 편인 것 같다.


며칠 전,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에 있을 때 뵀던 대표님(참고글)이 화순군에서 찾아온 어느 연합 회원들을 대상으로 6차 산업(다랭이마을)에 관한 강연을 하셨었. 나는 이날 강연에 필요한 준비를 도와드렸는데, 강연을 하시던 대표님이 잠시 강연을 멈추고 나를 소개해주셨다.


"여기 이 청년은 전국을 돌면서 농촌 체험을 하고 있는 청년이에요. 자네, 간단하게 자기소개 한번 하지"


"네?"


갑작스러웠지만 내뺄  없는 상황이라 대표님이 건네신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배낭여행 중인 청년 김동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각 지역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밥을 얻어먹으며 돌아다니고 있는데요.(중략)

혹시라도 일손 필요한 분이 계시면 말씀해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쑥스러웠던 자기소개가 끝나니, 모든 분께서 응원의 박수를 쳐주셨다. 이후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강연이 끝나고, 강의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머님 한 분이 나에게 찾아오셨다.


"너무 멋진 여행을 하고 있네요. 혹시라도 화순에 오거든 꼭 전화 주고 들르세요"


어머님은 나에게 꼭 찾아오라는 말씀과 함께 명함 한 장을 내게 건네셨다.


'엄마의 장독대?'


명함에는 '엄마의 장독대'라는 글씨와 함께 '메주, 된장, 청국장, 고추장'이라고 쓰여있었다. 어머님은 화순에서 직접 장을 담그시고, 장아찌를 만들어 판매한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화순에 가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로부터 며칠 후, 명함에 쓰여 있던 번호로 연락을 드리고 화순으로 찾아갔다. 어머님이 알려주신 주소로 도착하니, 집 앞에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가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오 잘 찾아왔네~"


"그럼요!"


어머님은 집을 소개시켜주시면서, 나에게 방 한 칸을 내어주셨다,


"오늘은 여기서 자면 돼. 마음 편하게 쉬어"


"감사합니다"


"방금 창고 정리했는데, 한번 구경시켜줄까?"


어머님은 집 바로 앞에 위치한 창고와 장만드는 공간을 구경시켜주셨다. 콩을 저장해두는 곳, 콩을 삶는 공간, 메주를 띄우는 곳, 집 앞에 있는 장독대 등 이 모든 것을 혼자 관리한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간단한 일을 도와주신다고 하셨다)


"어머님 어떻게 장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원래 수도권에서 지낼 때부터, 집에서 메주를 받아 장만 드는 걸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먹어보고는 맛있다고 해서 조금씩 팔았었지. 그러다 여기 시골로 내려와서 '뭘 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걸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작게 시작한 게 지금은 이렇게 커져버렸네"


"처음에는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서 이런저런 교육도 받고..."


"정말 열정 대단하신 거 같아요."


"하하,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아이고 밥을 너무 많이 주신 거 같은데요?"


아버님: "많이 무거라이"


어머님: "아냐 잡숴봐. 밥이 입에 넣으면 그냥 넘어가브려~ 반찬이 없어도 그냥 넘어 가브러잉~"


시골에 내려온 뒤로 밥맛이 좋아 밥을 많이 드신다는 아버님을 위해 매끼마다 새로운 밥을 짓는다는 어머님. 간단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내공의 밥상이 눈앞에 차려졌다.


"이건 호박꽃전이고... 이건 산에서 직접 캐온 나물을 무친 거고..."


그중 단연 압권은 호박꽃전과 된장국이었다. 생전 처음 호박꽃전을 먹어본 나는 그 식감과 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와~ 호박꽃이 이렇게 맛있는 건지 몰랐어요!"


"맛있지? 된장국도 먹어봐. 산에서 캐온 나물 6~7가지가 들어간 거야. 된장도 직접 담은 거고"


조용히 된장국을 드시던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이건 국이 아니라 약이야, 약"


나도 아버님을 따라 된장국을 한 숟가락 떠먹어보았다. 정말 아버님 말씀처럼 보약을 먹는 기분이었다. 각종 한약재가 들어간 맛이라고 해야 할까? 된장국으로 몸보신한다는 느낌이 들정도였다.


"진짜 보약 먹는 느낌인데요?"


이외에도 간장, 된장, 고추장 모두 직접 만드신 것이라, 모든 반찬에 어머님의 손맛이 안 들어가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일까? 모든 음식이 제대로 '집밥' 같은 느낌이었다.


"오자마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보니까 고생하면서 다니는 거 같아서, 우리 집에 와서 하루 쉬다 가라오라고 한 거지"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래도 오늘 밥도 얻어먹었는데 밥값은 해야겠죠? 오늘은 뭐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없어, 없어. 그냥 푹 쉬어"


"아니에요. 뭐라도 도와드려야죠"


"뭐라도 하고 싶어?"


"네 할 일 있으면 시켜주세요"


어머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어~ 난데~ 지금 송편 만들고 있나?"


어머님이 회원으로 계시는 '화순군 생활개선회'라는 연합회에서 추석 맞이 송편을 만들어 기부하는 행사를 진행하는데, 송편 만드는 일손이 조금 모자란다고 하셨다.


"한번 가볼래?"


"전 좋아요!"


잠시 후, 차를 타고 간 곳에서는 여러 어머님들이 저녁 식사 후 휴식시간을 갖고 계셨다. 인사를 드리니 나를 반겨주시며 다과상을 차려주셨다.


"어디서 왔다고?"


언제나 그렇듯 자기소개를 드렸다.


"아이고 고생이 많네. 많이 먹고 많이 도와주고 가~"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불렀지만, 남길 수 없어서 어머님들이 주신 과일과 떡을 모두 입에 넣었다. 후식을 먹은 어머님들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 송편 빚기를 시작하셨다. 나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자리에 앉아 송편을 빚었다.


한두시간 정도 어머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송편을 빚다 보니 어느새 꽤 많은 송편을 완성시켰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아이고 그래도 총각 덕분에 많이 했네"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갈 때 이것 좀 가져가"


어머님들은 고생했다며 이런저런 간식과 직접 농사지으신 작두콩차를 챙겨주셨다.


"돌아다니다 물 마실 때 페트병 같은 데다 넣어서 먹으면 좋아"


"감사합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뭐라도 챙겨주시려는 어머님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라는 단어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하루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잘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여행이었지만,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갚으며 살아야할라나.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9.10

전남 화순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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