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다랭이마을의 맛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저 멀리 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과 바다, 푸른 다랭이논의 색이 참 예뻤다.
소개를 받아 오게 된 이곳은 경상남도 남해 다랭이마을에 위치한 한 식당. 멸치 쌈밥과 남해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구워 매콤 달콤한 양념을 끼얹어 주는 생선구이가 대표 메뉴인 이곳은 남해 다랭이 마을에서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와~"
내가 도착하자마자 점심으로 준비해주신 메뉴는 갈치구이였다. 어떻게 보존되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갈치의 은빛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갈치 좋아하나?"
"너무 좋아하죠"
"아시는 분이 남해 바다에서 직접 잡은 갈치야. 한번 먹어봐"
입안으로 가져간 갈치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정말 녹는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이렇게 부드럽고 담백한 갈치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잡은 갈치는 제주 갈치랑은 또 다른 맛이지"
사장님은 남해 바다와 남해에서 잡히는 해산물에 대해 자랑을 이어가셨다.
"여기 남해는 말이야... "
사장님의 남해 바다 자랑은 이내 다랭이마을 자랑으로 이어졌다.
"예전엔 여기가 살기 힘들어서 마을 사람들이 타지로 많이 떠났어... 그러다 관광지로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지금처럼 살기 좋아졌지"
어릴 때부터 이곳 다랭이 마을에서 토박이로 자라오신 사장님은 마을에 대한 애착심이 아주 강하셨다. 사장님은 지금의 다랭이 마을이 있기까지, 마을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이 들어갔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2002년부터 마을에서 농촌관광사업을 시작했고, 2005년에 '다랭이논'이 국가지정 명승지로 지정되면서부터,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방문객이 정말 많이 늘었어. 많이 올 때는 이곳에 연간 50만 명이 왔어"
"50만 명이요?"
"그래, 요즘에도 한해 30만 명 정도는 방문하지"
이 작은 마을에 매년 30만 명 정도가 방문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이곳은 차가 없으면 오기 힘든 곳이라 대부분 단체 관광으로 오거나 가족끼리 차를 타고 방문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 마을에 먹을 곳이나 숙박업소가 없어서, 배가 고프거나 숙박을 하려면 다른 마을로 나가야 했다. 관광객들이 그냥 다랭이 논만 보고 떠났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놀러 오면 마을에서 마땅히 먹을 만한 곳이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이 마을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음식으로 보답해주고 싶었지. 그래서 음식점을 시작하게 된 거야"
그렇게 점차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다랭이 마을은 완전히 관광 마을로 바뀌었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그만두고, 숙박업이나 음식점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랭이 마을에 오시는 분들께 진짜 남해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게 이렇게 커져버렸지"
"안 그래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여기가 맛집으로 뜨던데요?"
"처음에는 방문객에 비해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많이 오기 시작하더라고"
"혹시 색다른 비결이 있으신가요?"
"글쎄 특별한 건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국내산 재료만 가지고 음식을 만들었어. '남해의 맛을 보여주자'가 첫 의도였으니까. 그래서 멸치쌈밥의 멸치와 생선구이의 생선은 무조건 남해에서 잡힌 것만 사용했고, 다른 식재료도 국내산만 사용했지. 처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한번 다녀간 손님들이 자꾸 찾아주시면서 손님들이 늘어났어. 맛을 보면 다르거든"
그간 시골 배낭여행을 다니며, 식재료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가장 크게 느꼈기 때문에, 재료의 중요성에 공감이 되었다. 사장님 말씀대로 이 식당에서 파는 모든 메뉴들은 전부 국내산 재료들만 만들어졌다. 막걸리 안주로 나오는 해물파전의 밀가루 역시 국내산 밀가루를 사용하셨다.
"사장님, 식재료를 국내산으로만 쓰시면 재료비가 많이 드시겠네요?"
"그렇지, 식재료비가 50%가 넘지"
이렇게 국내산 식재료가 비쌈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이 국내산을 고집하시는 이유는 '신선도'였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남해에서 오는 것들이었고, 이는 저 멀리 외국에서, 혹은 타지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훨씬 좋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장님은 남해에서 생선이 잡히지 않으면 생선구이를 팔지 않는다고 하셨다.
식당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해주시던 사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시더니, 이내 가게 아래쪽에서 나를 부르셨다.
"어이~ 동영이 여기로 내려와 봐"
사장님의 말소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니, 웬 양조장이 나왔다.
"여긴 내가 막걸리 만드는 공간이야"
"아 식당에서 파는 막걸리도 직접 만드신 거예요?"
"그렇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부터 마을에 막걸리를 만드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고 한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이 막걸리 양조 기술을 이어받아 막걸리를 만들었는데, 막걸리가 점점 단맛이 강해지면서 이상해졌고, 사장님은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직접 막걸리를 만들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막걸리 제조법에 대해 교육도 받으시고, 허가를 내서 양조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식당과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와 정말 대단하세요"
복장을 갖춘 사장님은 막걸리 양조장에 들어가시더니, 막걸리 양조 작업에 집중하셨다. 나는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을 도와드렸다. 작업이 끝나고 사장님이 작업하다 남은 막걸리를 내게 건네셨다.
"한번 먹어봐. 원래 숙성을 조금 시켜야 하는데 지금 먹어도 맛이 괜찮을 거야"
양조장에서 바로 만들어진 생막걸리는 정말 깔끔한 맛이었다. 사장님이 만드시는 막걸리에는 인공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단맛이 나지 않았다. 쌀의 쿰쿰한 맛과 살짝 시큼한 맛이 오묘하게 어우러졌다.
"인공감미료가 전혀 안 들어가서 단맛이 거의 안나지?"
"네, 모르고 먹었다면 잘못 만들어진 막걸리라고 생각했을 거 같아요"
"그만큼 우리가 단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래"
"그럼 이 막걸리도 다 국내산 재료로 만드시는 거예요?"
"그렇지 국내산 쌀과 밀로만 만들지. 물도 여기 물로 사용해야 돼. 다른 걸로 하면 이 맛이 안나"
"와 이 모든 걸 다 직접 하시다니... 사장님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사장님의 마인드를 식당과 양조장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작은 재료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모든 일에 '대충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만족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모든 음식은 정성이 들어가고, 제대로 만들어져야 돼"
"음식이 속이기 가장 쉽거든, 그래서 소비자들의 불신이 가장 큰 게 음식이고... 그러니까 제대로 안 하면 도태되는 거야"
뭐든 기본을 잘 지켜야 돼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9.04-09.07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