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이익!! 치이이익!!
"와 눈이 엄청 매운데요"
이날 오전 작업은 쪽파를 다듬는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핸드폰을 통해 주문량을 확인하고 밭에 나가 쪽파를 뽑는다. 밭에서 바로 뽑은 쪽파를 작업대로 가져와 겉껍질을 벗겨내고, 택배 상자에 포장하여 주문자에게 보낸다. 산지에서 출발한 택배는 다음날 혹은 그 다음 날 주문자에게 도착한다.
주문과 동시에 생산지에서 바로 뽑은 신선한 쪽파를 다음날 집에서 받아 볼 수 있는 시스템?
소비자에게 정말 좋은 '직거래 시스템'이다. 이런 프로세스가 가능한 것은 생산자가 컴퓨터를 기본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는 20대 여성 농부인 이 친구는 인터넷 직거래로 농사의 소득을 높이고 있었다.
이 친구는 내가 시골여행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만난 20대 여성 농부였다. 농업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지내고 계신 그녀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농수산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직후 자신의 땅을 사서 농사를 시작했다는 이 친구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오전 8시. 밭으로 가 주문이 들어온 쪽파를 뽑는다. 요즘 소비자들은 식재료 손질하는 것을 귀찮아하기 때문에 껍질이 그대로 있는 쪽파는 주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밭에서 뽑아온 쪽파를 일일이 다듬어야 했다. 작업효율을 위해 에어컴프레셔를 이용해 껍질을 벗겨내는데, 작업 내내 쪽파의 매운 성분이 눈을 아프게 했다.
치이이이익! 치이이이익!
"와 눈이 너무 아파요"
"주문이 많은 날에는 오전 내내 쪽파만 다듬어요"
이날도 주문이 많이 들어와 오전 내내 쪽파를 다듬어야 했다. 반복적인 작업 이후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단호박이 있는 밭으로 향했다.
"단호박 농사도 지으시는 거예요?"
"네, 부추, 호박, 옥수수, 고추 등등 이것저것 다해요"
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는 미리 수확한 단호박들이 박스 안에 담겨 있었고, 박스에 담긴 단호박을 크기별로 선별하여 포장망에 차곡차곡 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약 2~3시간이 흘렀을까? 한쪽에 차곡차곡 완성된 단호박 망을 차로 옮겨실었다. 단호박을 가득 실은 차를 타고 읍내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이 친구는 이곳에 농산물을 납품하러 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닌 듯 능숙하게 주차를 하고, 차에 실려있던 단호박을 마트 창고로 옮겼다.
"여기에 두면 되죠?"
마트 직원: "네~"
"수고하세요~"
마트 직원: "네~ 수고하세요~"
이 친구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일을 하다 보니 하루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밤늦게 연락이 왔다. 갑자기 얼갈이배추 주문이 들어와서 야간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얼갈이배추는 해가 뜨있으면 시들시들해지기 때문에, 해가 사라진 저녁에 작업을 해야 신선한 상태로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둑어둑해진 밭에 렌턴을 설치한 다음 야간작업이 시작되었다. 주문량이 많아 마을의 또 다른 지인분들까지 오셔서 도움을 주셨다.
"끝~"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하루가 정말 길다.
다음날 아침, 또다시 비슷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문득 이 친구가 농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농사일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음... 왜 안 힘들겠어요"
"OO씨는 원래부터 농사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농사를 하라고 하셔서...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됐어요"
"정말 아버지의 권유로 진로를 정한 거예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나에게는 사실상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실 이 친구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다고 했다.(무엇이었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라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 농수산대학교 진학도 아버지의 권유로 들어가게 된 거예요?"
"네"
여기서 잠깐 한국농수산대학교에 대해 설명하자면, 정부가 농어업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국립대학으로,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본인 혹은 직계가족이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어야 한다.(물론 아닌 경우에도 입학은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영농후계자들이 이곳에 온다) 이곳에 입학하면 입학금 및 등록금은 전액 무료이나, 졸업 이후 6년간 의무적으로 농업, 축산업 혹은 어업에 종사해야 한다.
"제가 듣기로는 농수산 대학교 나온 친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부모님과의 경영방식 마찰이라고 하던데 OO 씨가 느끼기엔 어떤가요?"
"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저희는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우기도 하고 실습도 많이 하는데, 부모님들이 직접 농사를 지으시면서 경험한 현실적인 부분과는 차이가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농사를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럼 OO 씨는 농업에 종사한 걸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가끔 일이 너무 많으면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고, 친구들끼리 만나는 거 보면 저도 같이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가 좀 그렇긴 해요. 근데 이미 일을 벌여 놔서 되돌릴 수는 없는 거 같아요. 마을 사람들은 다 제가 부모님 땅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다 제 이름으로 대출받아 산거거든요. 빨리 자리 잡아서 빚도 갚고, 더 전문적으로 일하고 싶어요. 아직은 아버지한테 많이 도움을 받고 있지만요"
자신이 택했든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든, 20대 어린 나이에 농업을 선택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이 친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이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은 인생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일단 빚부터 빨리 갚고 싶어요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9.14-09.18
전남 고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