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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May 14. 2019

너그들이 맛나게 먹으면, 그게 그렇게 좋아

명절 준비

2018. 09

시골 농촌을 다니며 일손을 돕고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한지 어느덧 4개월이 훨씬 지났을 때쯤...


추석이 다가왔다.


나는  여행을 마치기 전까지 집에 돌아가 않을 생각이었다. 이유는, 한번 집에 들어가면 다시는 여행을 이어서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여행은 체력소모가 많았다. 여행 내내 지낼 곳을 구하고, 그곳에서 익숙지 않은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틈나는 시간에  다음 행선지를 구하는 것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하던 도중 집에 들어가게 되면  긴장의 끈이 풀어져 다시는 여행을 재게 하지 못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추석이 다가오자 마음속으로 고민이 됐다. 


'가족을 보기 위해 집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계속 여행을 해야 하나?'


나는 일단 여행을 계속 이어가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첫 계획은 이랬다.


'분명 시골에서도 홀로 명절을 보내시는 독거노인분들도 많으실 거야... 마을회관에 가서 독거노인분들에게 식사를 대접해볼  있지 을까?'


그렇게 추석이 다가오기 2주 전부터, 추석 명절에 갈만한 곳을 찾아보기 위해 여러 군데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수상한 사람을 명절에 마을로 초대하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전화를 돌렸지만, 차가운 거절만 돌아왔다.


'그래, 나도 명절은 가족과 보내야겠다'


결국, 나는 명절에 맞춰 나의 외갓집인 전라남도 '진도'에 도착했다.





"할머~ 할아버지~"


"오이구~ 동이 왔어?"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걱정해주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를 평소보다  격하게 반겨주셨다. 몇 개월 동안 남의 집에 다니면서 농사일 한다고 하니 내심 걱정이 많으셨나 보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녔어?"


"네~ 집에서 지낼 때보다 더 잘 먹고 다녔어요! 잘 지내셨죠?"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잘 있었지~"


가방을 내려놓고, 도와드릴 만한 일이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할머니  도와드릴 있어요?"


"아녀~ 다했어 생선만 구우면 돼"


생선구이.


우리 가족은 명절이나 휴가철이 되면 항상 시골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때마다 할머니 빠짐없이 준비해주시는 게 있는데, 바로  '생선구이'다.


진도는 섬이라 생선이 많고 맛있는 편인데, 명절만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장이나 근처 어부들에게 직접 찾아가 싱싱한 생선을 사 오신다. 사온 생선은 일일이 손질을 하고, 간을 하여 살짝 말려놓으신다. 약간 꾸덕꾸덕하게 말린 생선을 프라이팬에 올려 구우면 온 주변에 짭조름한 냄새가 퍼지는데, 고슬고슬한 밥에 갓 구워낸 생선을 그 위에 올려 먹으면 이보다 맛있는 반찬이 없다. 나는 아직까지 우리 할머니가 손질한 생선 구이보다 맛있는 생선 구이를 먹어 보지 못했다. 그만큼 내가 명절마다 기다리는 음식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맛있는 생선구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할머니 이거 일일이  손질하시면 시간 오래 걸리겠어요"


" 메칠 걸리제~ 생선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 쳐서 말리는 게 제일 일이여"


생선을 굽고 계신 우리 할머니


"이 많은 생선을 한 번에  구워 놓으려니까 양이 엄청 많네요"


"아주 겁나~ 겁나~"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릴 줄 몰랐어요"


"그래도 지금은 날이 좋아서 괜찮지, 겨울에 준비할라고하믄 손이 시린당께"



이날 저녁, 연휴 전날이라 가족 중 나만 시골에 내려왔기에 간단하게 밥을 먹고 싶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포함해 코다리 조림, 양념게장, 홍어, 전복, 게 찌개, 각종 나물 반찬 등 모든 반찬이 총출동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근데 할머니 이거 다 준비하시느라 너무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명절에 너그들이 내려와서 맛나게 먹으면,
그게 그렇게 좋아



명절에 시골에 내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 갈 생각을 했던 내가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9.22-09.27

전라남도 진도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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