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농촌을 다니며 일손을 돕고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한지 어느덧 4개월이 훨씬 지났을 때쯤...
추석이 다가왔다.
나는 이 여행을 마치기 전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유는, 한번 집에 들어가면 다시는 여행을 이어서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여행은 체력소모가 많았다. 여행 내내 지낼 곳을 구하고, 그곳에서 익숙지 않은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틈나는 시간에 또 다음 행선지를 구하는 것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하던 도중 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긴장의 끈이 풀어져 다시는 여행을 재게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추석이 다가오자 마음속으로 고민이 됐다.
'가족을 보기 위해 집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계속 여행을 해야 하나?'
나는 일단 여행을 계속 이어가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첫 계획은 이랬다.
'분명 시골에서도 홀로 명절을 보내시는 독거노인분들도 많으실 거야... 마을회관에 가서 독거노인분들에게 식사를 대접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추석이 다가오기 2주 전부터, 추석 명절에 갈만한 곳을 찾아보기 위해 여러 군데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수상한 사람을 명절에 마을로 초대하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전화를 돌렸지만, 차가운 거절만 돌아왔다.
'그래, 나도 명절은 가족과 보내야겠다'
결국, 나는 명절에 맞춰 나의 외갓집인 전라남도 '진도'에 도착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이구~ 동이 왔어?"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걱정해주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를 평소보다 더 격하게 반겨주셨다.몇 개월 동안 남의 집에 다니면서 농사일을 한다고 하니 내심 걱정이 많으셨나 보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녔어?"
"네~ 집에서 지낼 때보다 더 잘 먹고 다녔어요! 잘 지내셨죠?"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잘 있었지~"
가방을 내려놓고, 도와드릴 만한 일이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할머니 뭐 도와드릴 있어요?"
"아녀~ 다했어 생선만 구우면 돼"
생선구이.
우리 가족은 명절이나 휴가철이 되면 항상 시골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그때마다 할머니가 빠짐없이 준비해주시는 게 있는데, 바로 이 '생선구이'다.
진도는 섬이라 생선이 많고 맛있는 편인데, 명절만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장이나 근처 어부들에게 직접 찾아가 싱싱한 생선을 사 오신다. 사온 생선은 일일이 손질을 하고, 간을 하여 살짝 말려놓으신다. 약간 꾸덕꾸덕하게 말린 생선을 프라이팬에 올려 구우면 온 주변에 짭조름한 냄새가 퍼지는데, 고슬고슬한 밥에 갓 구워낸 생선을 그 위에 올려 먹으면 이보다 맛있는 반찬이 없다. 나는 아직까지 우리 할머니가 손질한 생선 구이보다 맛있는 생선 구이를 먹어 보지 못했다. 그만큼 내가 명절마다 기다리는 음식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맛있는 생선구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할머니 이거 일일이 다 손질하시면 시간 오래 걸리겠어요"
"한 메칠 걸리제~ 생선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 쳐서 말리는 게 제일 일이여"
생선을 굽고 계신 우리 할머니
"이 많은 생선을 한 번에 다 구워 놓으려니까 양이 엄청 많네요"
"아주 겁나~ 겁나~"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릴 줄 몰랐어요"
"그래도 지금은 날이 좋아서 괜찮지, 겨울에 준비할라고하믄 손이 시린당께"
이날 저녁, 연휴 전날이라 가족 중 나만 시골에 내려왔기에 간단하게 밥을 먹고 싶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포함해 코다리 조림, 양념게장, 홍어, 전복, 게 찌개, 각종 나물 반찬 등 모든 반찬이 총출동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근데 할머니 이거 다 준비하시느라 너무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명절에 너그들이 내려와서 맛나게 먹으면, 그게 그렇게 좋아
명절에 시골에 내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 갈 생각을 했던 내가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