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주는 특별함
'일단 다른 곳으로 가보자'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게된 남원의 한 게스트하우스. 평일이라 그런지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했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비가 그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남원 시내를 돌아다녔다. 비가 온뒤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는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였다. 시골 배낭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타지에 '놀러온' 느낌이 들었다. 또 간만에 산에 올라가 남원 시내를 내려다보며 복잡해진 머릿속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참동안 남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돌아온 게스트하우스에는 여전히 아무 손님도 없었다.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자 프론트데스크로 사용중인 공간에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아무말 없이 뜨개질을 하고 계셨다.
게스트 하우스에 아무도 없던 터라 자연스럽게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어떻게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어떻게 이 건물이 만들어 졌는지 등.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은 허름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게스트하우스라고 하셨다. 주택 구입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두 사장님의 손길이 안 들어간 곳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모든 소품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지금하고 있는 여행에 대해 소개를 드렸다. 왜 시골 배낭여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쩌다 이곳 남원에 오게 되었는지.
내 말을 들으시던 사장님은 나를 너무 신기하게 바라보셨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 머물렀지만 나처럼 시골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청년은 처음 보았다며 신기해하셨다. 그리곤 나에게 한가지를 제안을 하셨다.
"우리 시골집에 텃밭이 있는데, 내일 거기 나무를 심으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볼래?"
"갔다와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어차피 계획도 없었던 터라 나는 흔쾌히 간다고 말씀을 드렸다.
"네 좋아요"
다음날 아침, 밖에는 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어짜피 오늘 손님도 없으니까 그냥 가서 구경이나 하다 오자고"
"네"
차를 타고 약 20분 정도 달리니, 말그대로 '시골'이 나타났다. 주위에 그 어떤 간판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시골. 비가 내려 안개가 낀 마을은 신비로워 보일 정도였다. 차를 세우고 들어간 사장님의 시골집은 소박하고 아담해 보였다. 복도식으로 개조한 대청마루와 파란색 지붕으로, 겉모습은 내가 '시골집'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집의 형태였지만, 실내는 전에 이 집을 짓기 위해 사용된 큰 나무틀을 제외하고는 앙증맞게 리모델링된 멋진 집이었다.
"집이 너무 예뻐요"
"그렇지? 여기도 공사할때 다 우리가 해달라는대로 해주신거야"
집구경을 마치고, 집 바로 뒤에 있는 텃밭에 나가보았다. 작은 텃밭에는 각종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사람의 손길이 많이 안갔었는지, 보정해줄 부분들이 보였다. 나는 쓰러져가는 지주팩을 다시 고정하고, 주변에 가득 자란 잡초를 뽑아주었다. 그리고 시내 이웃 주민이 사장님께 주신 나무 2그루를 심기위해 땅을 팠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긴 했지만, 더운날 시원하게 얼굴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미스트 같은 느낌이라 일하기가 더 좋았다. 잠깐의 작업을 마치고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사장님이 가져오신 간식을 먹었다. 안개가 무럭무럭 피어 신비로워진 산 중턱을 바라보며 먹는 간식은 꿀맛이었다. 간식을 먹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비가 내리며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내음은 향기로웠다. 기분좋게 간식을 먹으며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사장님이 마을 주변을 구경시켜주신다고 하셨다.
"시내로 가면서 내가 예쁜 저수지를 구경시켜줄게"
다시 차를 타고 향한 곳은 산 중턱에 있는 저수지였다. 마치 산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저수지는 저 멀리 끝에서 누군가 수행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경을 하다 차를 타고 돌아가려는데, 아뿔싸. 차에 키가 꽂힌 상태로 문이 잠겨있었다.(사장님 차는 신차가 아니라 키가 꽂혀있어도 문이 자동으로 잠겼다)
깊은 산골짜기에 보험을 불러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수석 창문이 조금 열려있었고, 주변에서 긴 막대기를 구해와 창문을 열어보려 애쓰기 시작했다. 약 20분이나 싸웠을까? 마침내 차 창문이 내려갔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탈 수 있었다. 사장님은 나중에 되면 이게 다 추억이라며 그저 즐거워 하셨다.
마침내 돌아온 게스트하우스에서 사장님은 고생했다며 늦은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거창하진 않지만 소박한 아침밥에서 우리 어머니가 해주신 집밥이 느껴졌다.
떠나는 날 아침, 나는 부쩍 친해진 사장님께 다음에 남원에 오면 꼭 다시 놀러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내가 가지고 다니던 즉석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드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정말 인복이 많은 것 같다. 우연히 오게된 남원에서 따뜻한 추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신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내집처럼 편안하게 사용했던 숙소와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가보지 못했을 남원의 시골마을, 그리고 처음보는 사이었지만 모두 친절히 맞이해주었던 남원의 이웃주민들까지.
여행을 하며 만나게되는 특별함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10.03-10.05
전라북도 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