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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Apr 28. 2019

날것의 맛

식재료의 중요성

우리나라 사람들은 날것의 맛을 좋아한다. 생선회나 육회를 즐겨먹는 것을 보면   있다. 물론 생선이나 고기를 구워 먹거나 익혀먹는도 맛있지만, 회로 먹는 것은 신선하고 뭔가 원초적인 또 다른 맛을 선사해준다.


나 역시도 회를 좋아한다. 특히 생선회를. 거짓말 같지만 사실 나는 소고기 육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먹을 땐 맛있게 먹었지만, 뭔가 남들이 다 맛있다고 하니까 맛있게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육회의 참맛을 몰랐었다.


그런데 내가 육회에 대한 낮은 평가를 가지고 있던 것은, 지금까지 '맛있는 육회'를 먹어보지 못해서였다.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없어 없어, 그냥 쉬어"


전라남도 고흥에서의 두 번째 집이었다. 고흥에서 첫번째로 만난 아버님(전편 참조)의 소개로 오게 된 이곳은 고흥 바닷가에 위치한 집이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창고처럼 쓰시는 집이었는데, 이 집은 화장실과 주방을 다 갖추고 있었고, TV까지 있는 잘 갖추어진 원룸 같은 집이었다. 특히 이 집은 바다 위쪽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정말 좋았다.



"여기 지내는 동안 여기서 혼자 지내면 되겠네"


"혼자요?"


"응 우리는 저쪽에 집이 있기 때문에, 여긴 혼자 쓰면 돼. 그게 더 편하겠지? 어차피 일할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쉬다 간다고 생각하고 맘 편하게 지내"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곳에 지내는 며칠 동안 말 그대로 푹 쉬었다. 여름이라 아버님이 예초기를 돌리는 작업을 하시면 옆에서 조금씩 정리해주는 일을 하긴 했지만, 사실상 그냥 쉰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님은 내가 이곳에 혼자 지내는 동안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까 봐, 식사시간이 되면 이곳까지 밥을 싸오시기도 하시고 내가 아버님 댁으로 가서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 밤. 아버님은 마지막이니 집에서 함께 밥을 먹자고 하셨다. 그렇게 준비해주신 소고기.


"마지막 날이니 고기라도 먹여야지"


"감사합니다!"


"여기 마을에 아시는 분이 직접 소를 키우시는데, 정육점까지 직접 운영하시는 곳이야. 거기서 사온 고긴데 한번 먹어봐"


"여기서 한번 먹으면 다른 소고기는 못 먹어"


불판 위에 올라간 소고기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었다. 잘 구워진 한우와 마늘은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사 왔으니까 양껏 먹어"


"아버님은 안 드세요?"


어머님: "아버지는 소고기 구운 거 잘 안 드셔"


"네?"


아버님: "나는 구운 거는 잘 안 먹어. 육회 좋아하나? 한번 먹어볼래?"


"네"


나는 육회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너무 맛있게 드시는 아버님의 모습에 그 맛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육회를 입에 넣는 순간, 소고기의 새로운 맛을 보았다.



'와...'


"이 육회는 정육점에서 도축하는 날만 맛볼 수 있는 거야. 마침 오늘이 도축하는 날이라 사 왔지. 아주 신선한 거야"


다시 한번 식재료의 신선함이 중요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소고기에게 '신선한 맛'이라는게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신선한 이었다사실, 소고기를 도축해서 바로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할 수는 없다.(숙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날 내가 먹은 육회는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육회와는 완전하게 다른 맛이었다. 아주 쫀득쫀득하고 육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느낌이었는데, 아버님이 왜 구운 고기를 잘 안 드시는지 알 것 같았다.


가격이 궁금해 가격을 여쭈어보니, 일반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도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이 소고기를 위해서라도 귀촌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었지만, 음식에 있어 '식재료'는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좋은 식재료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하기 때문에, 굳이 화려한 기술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날것의 맛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물론 음식이라는 게 단순히 미각으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기에, 식재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접 느껴보니 식재료가 음식의 퀄리티를 좌우한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백문이불여일견. 나도 모든 사람들이 이 육회 맛을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느낀 것들을 느낀다면, 맛있는 음식점을 찾기보단 좋은 식재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골여행 이후 갖게 된 안 좋은 것 중 하나는, 어느 식당에 가도 큰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점들은 다 하나같이 맵거나 짜거나 달콤한 양념에 절여져 나오는 음식이었고, 값싼 식재료 위에 양념을 쏟아부어 주재료인 고기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게 많았다.


물론 좋은 식재료를 잘 쓰는 음식점들도 많다. 하지만 좋은 식재료를 쓰면 가격이 비싸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면 경계심을 가진다. 그렇게 좋은 식재료를 쓰고 망하는 음식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저가형 음식점들은 늘어난다.


판매자는 소비자의 요구를 맞춘다. '싸고 맛있는 음식'. 저렴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값싼 식재료를 쓰고 그 식재료의 단점을 덮기 위해 강한 양념을 사용한다. 양념은 식재료의 장점을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단점을 덮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입맛이 강한 조미료에 현혹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지에서 유명한 맛집을 찾는 것보단 좋은 식재료를 찾아 구매해보는 건 어떨까?



다시 한번 좋은 잠자리와 좋은 음식을 맛 보여주신 어머님과 아버님께 감사하며...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9.14-09.18

전남 고흥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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