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어머니의 구구단

by 고동운 Don Ko

그 일을 뒤로 공식적인 소아마비 치료는 막을 내렸다. 물론 그 후에도 이모와 할머니를 통해 이런저런 민간요법과 한약, 뜸과 침 치료가 얼마간 더 이루어지는 했다. 쓰디쓴 한약도 많이 먹었다. 유아 치를 갈기 전 이가 모두 썩고 삭아 그 무렵 사진을 보면 앞니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독한 약을 너무 많이 먹어 그렇다고들 했다. 아마도 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영구치가 난 후 지금까지 단 한 개의 충치도 없다.


할머니는 약탕기에 한약을 털어 넣고 물을 부어 약을 싸온 한지로 위를 봉하여 끓인 후, 베수건에 쏟아 양쪽에 막대기를 넣고 비틀어 약을 짰다. 나는 한 방울이라도 쓴 약을 덜 먹으려고 할머니에게 좀 살살 짜라고 했고, 할머니는 어서 먹고 나으라는 심정으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힘을 들여 짰다. 여기에 무속신앙까지 더해져 할머니가 치성을 드리고 난 후 그 부적을 태워 물에 타서 마시기도 했고, 몸에 좋다는 이런저런 약초도 무수히 먹었다. 하지만 나의 상태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다.


내게는 걸어 다닌 기억이 없다. 꿈에서 조차도 나는 제대로 걷지 못한다. 우리가 꾸는 꿈은 기억과 경험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쩌다 걷는 꿈을 꾸어도 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이 아니라 살짝 떠서 다닌다. 자기가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적은 법이다. 늘 앉은뱅이로 살았으니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나는 ‘새옹지마’라는 말을 좋아한다. 세상사 그리 낙담할 것도 없도 과하게 기뻐할 일도 아니다. 좋다고 여겼던 일이 화가 되기도 하고, 절망의 시간이 기회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해서,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은 아쉬워 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라고 생각하며 산다.


내가 처음으로 큰 좌절을 맛본 것은 7살이 되던 해 겨울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입학통지서를 받고서의 일이다. 나보다 3살 위인 누나는 재동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누나의 1학년 담임은 이모의 여고 동창생이었는데, 키가 작아 이모는 그녀를 땅꼬마라고 불렀다. 나는 가끔 이모의 등에 업혀 누나의 학교에 갔었는데, ‘땅꼬마’ 선생님은 내가 학교에 들어오면 자기 반에 넣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곤 했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나를 업어서 학교에 데리고 다니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의 초등학교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 울며 아버지에게 매달렸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아버지가 내세운 이유였다.

잠시 60년대 초 한국사회의 정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었고 장애인을 ‘병신,’ 또는 ‘불구자’라고 부르던 시절이다. 제대로 된 사회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누군가의 등에 업혀 학교에 다닌다 해도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보다는 재산을 남겨주고 남동생인 동호를 잘 키워 형을 돌보아 주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건 확인되지 않은 나의 생각이다)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절대적인 권력자였으며 아무도 그 결정을 번복할 수 없었다.


봄이 되면 학교에 가지고 가려고 미리 장만해 두었던 학용품과 책가방을 가지고 안방과 건넌방을 오가며 어머니에게서 한글과 산수를 배웠다. 어머니는 굵은 동아줄을 잡고 하늘에 올라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되고 썩은 동아줄에 매달렸다 떨어진 호랑이 피에 수수깡은 빨간색이 되었다는 등의 한국 전래동화는 물론 ‘헨젤과 그레텔’ 같은 서양 동화도 많이 알고 있어 매일 나와 내 동생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난 중학생 나이쯤 되었을 때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대백과사전이 있었는데 동화 편이 따로 있었다. 어머니는 그 책을 읽고 우리에게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나는 구구단을 어머니식으로 배워 학교에서 배운 아이들과는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4x3’의 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잠시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구구단에는 ‘3x4’는 있어도 ‘4x3’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단은 ‘5x5’부터만 외웠다. ‘5x2’는 2단에서 ‘5x3’ 3단에서 이미 외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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