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의 건너편 100평 가까운 대저택에는 중부 경찰서장을 지낸 윤기병이라는 이가 살았다. 그 때문인지 그 집 문 옆에 순찰함이 달려 있어 하루에 몇 차례 골목을 순찰하는 경찰은 이 순찰함을 열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곤 했다. 아마도 순찰자와 시간을 표시했던 것 같다.
그 집 식구들은 동네 사람들과는 왕래가 없이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그와 친분을 쌓아 가끔 그 집에 가서 차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해 그의 생일에 할아버지는 아침 초대를 받아 그 집으로 건너가셨는데, 잠시 후 일하는 아이가 커다란 목판을 이고 왔다. 할머니와 나를 위해 그날 아침상을 따로 한 상 차려 보낸 것이었다. 국과 밥, 온갖 반찬에 구워 먹으라고 양념에 재운 불고기까지 있었다.
다음 해, 할아버지 생신이 돌아오자 할머니는 그를 집으로 초대하는 대신 생일상을 차려 그 집으로 가져다주었다. 그 집에서 보내온 생일상은 식모 아이가 이고 왔었지만 할머니가 준비한 생일상은 할머니가 손수 머리에 이고 가져다주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외가에는 부엌 위로 안방에서 올라갈 수 있는 다락이 있었다. 철이 바뀌면 할머니는 다락에 올라 새철 옷가지를 꺼내고 철 지난 옷을 넣어 두곤 했다. 그날은 내게는 보물찾기 하는 날과 같았다.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시집올 때 해가지고 왔다는 골무, 베겟잇, 어머니와 이모가 아기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 낡은 사진첩 등…
그 무렵 나는 외가에서 만화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길 건너에 만화가게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만화가게 영감님과 협상을 해서 하루 5원에 4권을 빌려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매일 전날 빌려 온 만화를 돌려주고 새 만화를 빌려왔다. 어떤 때는 이미 본 것을 빌려와 다시 가서 바꿔 오기도 했다.
주말에는 동생이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아 만화를 한 뭉치 빌려가지고 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동생은 글 읽는 것이 느려 내가 읽어주며 만화를 함께 보았다.
외가에는 TV 가 없었다. 대신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무렵에는 라디오 연속방송극이 요즘 TV 드라마처럼 인기였다. 저녁 시간이면 라디오 앞에 앉아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연속방송극은 하루 15-20분 방송에 한 달 정도면 끝이 났다. 저녁에 방송한 것은 다음날 낮에 재방송을 해 주었다.
방송국의 성향이나 시간대에 따라, ‘광복 20년’ 같은 시사물, ‘연산군’ 같은 사극, ‘섬마을 선생님’ 같은 멜로드라마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행가는 바로 이런 인기 연속방송극의 주제가였다. 같은 노래를 한 달가량 듣고 나면, 주제가를 익히게 된다. 나는 그 무렵 거의 모든 연속극 주제가를 외우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1940년대까지는 라디오 드라마가 매우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모든 상황을 효과음으로 대신해야 하는 라디오 드라마는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TV 드라마보다 훨씬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삐걱” 소리가 나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거나 나간 것이고, “터덜터덜” 하는 발소리는 지친 몸으로 집에 가는 소리이며, 빠르게 “저벅저벅” 하는 소리는 누군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리이다.
영어공부를 한 이모는 팝송 듣는 것을 좋아해서 오후에는 ‘최동욱’이라는 DJ 가 나오는 ‘3시의 다이얼’을 들었다. “Sad movies,” “Diana,” “The sound of silence,” Tell Laura I love her,” “Evergreen tree,” “Young ones,” “Bridges over troubled water,” “The house of the rising sun,” “Don’t forget to remember me,” “The Tennessee Waltz,” “Love me tender,” “Blowing in the wind,” “ Put your head on my shoulder,” “Those were the days,” “Papa,” 등 모두 그 무렵 들었던 노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