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에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동운 Don Ko Sep 26. 2018

불효자는 웁니다

일상에서...

출근길,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오후가 되어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를 찾던 이가 이제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가시고 나니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옛 기억들이  오른다. 장애인 편의시설이라고는 전무하던 시절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며칠을 울고 떼를 쓰던 나를 달래고 안방 학교를 차려 내게 공부를 가르쳤다. 


커다란 달력 종이 뒷면에 “ㄱ, ㄴ, ㄷ, ㄹ”을 쓰고 “ㅏ, ㅑ, ㅓ, ㅕ”를 써서 붙여놓고 “가, 나, 다, 라”를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한글을 배웠다. 덧셈, 뺄셈, 구구단도 그렇게 배웠다. 


어머니는 자주 나와  동생에게 옛날이야기와 동화를 들려주었는데 훗날 나이가 들어 집에 있는 책들을 읽다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백과사전 전집   권에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집에는 식구들이 많아 매일 커다란 솥에 밥을 했는데 저녁밥을 푸고 나서 손에 물을 묻혀 뭉쳐주시던 뜨거운 누룽지 주먹밥이 기억난다. 동생과 나는 그걸 얻어먹으려고 부엌 앞을 기웃거리곤 했었다.


잠시 요리학원에 다니셨던 적도 있었다. 연탄 위에 올린 양철 오븐으로 구워냈던 식빵도 생각난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 위에 살짝 버터를 발라 반짝 윤기가 나는 빵을 먹었던 기억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오븐에 구운 빵과  냄새를 좋아한다.


아버지가 군에서 예편을 하신  어머니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가정주부에서 자영업자가  것이다. 양봉을  때는 꿀과 로열젤리를 병에 담아 포장해야 했고, 양계장을  때는 달걀을 크기에 따라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이웃 양계장에 전염병이 퍼진 날은 밤을 새워 닭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주기도 했다. 


 무렵 어머니는 햇살에 그을려 까만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의 어머니가 세상의 어떤 다른 어머니보다도 아름답고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동시를 지어 어머니날 선물로 드리기도 했었다.


미국에 이민  후에는 대외적인 일은 거의 어머니가 도맡아 하셨다. 사교성이 좋아 단어만 조합해서도 미국인들과 거뜬히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수년 전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오더니 몸도 마음도 급속히 나빠졌다. 예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초라한 모습의 노인은  어머니 같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늘어놓던 내가  철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화가 왔었다. 알아들을  없는 어머니의 말을  귀로 흘리며 빨리 전화를 끊고 하던 일을 마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 어머니가 의식이 없다는 전화가 왔다. 어쩌면  아침에 어머니는 내게 작별의 전화를 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머리로는 이제 어머니가 고통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싶지만 아직 가슴은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렇게 일찍 쉽게 가실 것을 그동안  모시지 못한 불효에 가슴이 미어진다.




3년에 썼던 글이다. 어머니 생신은 추석 다음날이고, 어머니 돌아가신 날은 내 생일 다음날이다. 다음 주에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 산소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내 생일 턱으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안 계시니 보고 싶고 그리운 것을... 머리가 허옇게 변한 이제야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말이 꼭 맞다.  


http://www.youtube.com/watch?v=CzMNxdo_xVw (어머니 추모 영상)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아이들은... 이 부족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