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가끔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이름은 진작부터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친구로 기억하지만 그는 나를 이미 잊었는지도 모른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귀하던 시절 더운 여름날이면 외가의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더위를 식히곤 했다.
내가 친구라고 기억하는 아이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우리 외가는 관훈동에 있었는데 바로 옆동네인 인사동에는 요정이 많이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그런 요정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오후가 되면 짙은 화장을 하고 출근을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은 소아마비를 앓았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난 아예 걷지를 못했지만 그 아이는 목발을 짚고 다녔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말을 건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린 친구가 되었고 엄마가 일나 간 오후가 되면 그 아이는 우리 집에 건너와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얼마 후 아이가 놀러 오는 일을 그만두고 힘들게 목발을 휘두르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아이에게 찹쌀떡을 주며 왜 나와 놀지 않느냐고 물었다. 입가에 찹쌀떡의 밀가루를 묻힌 채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아이가 답했다. 엄마가 나와 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너는 걸을 수 있는데 멀쩡한 아이들과 놀지 왜 앉은뱅이와 노느냐며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는 것이다.
난 그 후 다시는 그 아이와 놀지 않았으며 40여 년 동안 그 엄마를 매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여인으로 기억했었다.
수년 전 장애인 신문에 칼럼을 쓰며 생각을 바꾸었다. 그 엄마는 나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 비장애인과 사는 방법을 배우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그 친구도 이제는 50중 반이 되었을 것이다.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친구지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