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봄, 경주
1931년 봄, 경주. 하늘은 쓸데없이 맑았다.
최부자 댁 기와지붕 위로 매화가 피어 담장을 넘던 날, 그 흙담 아래에는 판잣집 하나가 눌어붙어 있었다. 빗물에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한 널빤지들이 서로를 겨우 버티고 선 곳. 내 삶은 그 담장의 그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쪽에서 시작되었다.
거적문 안에서 습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는 문고리를 잡지 못했다. 겨울 내내 어머니는 제대로 먹지 못했고, 불룩한 배 위로 앙상한 갈비뼈만 만져졌다. 아이가 산 채로 나올지, 식어서 나올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운이나 자비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으앙—”
젖은 울음이 터졌다. 짧았다. 그래서 더 날카롭게 신경을 긁었다. 아버지가 문을 열자 피와 양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코끝이 매웠다. 핏덩이인 나는 헝겊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흙 묻은 손으로 나를 들어 올렸다.
“…숨은, 붙었소?”
사내인지 계집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이어지는 울음만 확인했을 뿐이다. 안도의 숨이 새어 나오려던 찰나, 밖에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최부자 댁 마름, 이 씨였다.
아버지는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차가웠다. 그 감각이 내 생의 첫 기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씨는 담장 너머 매화나무만 보고 있었다. 말을 전하는 자 특유의 무심한 눈이었다. “애는 나왔는가?” “예… 방금. 사내놈입니다.” “사내라니 다행이네만.”
잠깐의 틈. 이 씨가 마른침을 삼켰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 보릿고개가 심상치 않아. 대감마님께서 머슴 수를 줄이라 하셨네.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게.”
담장 안에서는 매화 향이 넘어왔고, 담장 바깥에서는 말 한마디로 밥줄이 끊어졌다. 아버지는 이 씨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 안에서는 다시 울음이 터졌다. 이번엔 더 성이 났다. 필사적으로 젖을 찾는 소리였다.
훗날 아버지는 술기운을 빌려 그날을 말했다. “너는 태어나자마자 빚쟁이처럼 울더라. 먹일 것도 없는데 입만 하나 더 늘었다고, 꼭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것 같았지.”
웃으며 했지만, 웃음은 짧았다. 그래도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나를 안았다. 따뜻했지만, 그 온기가 위안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계산을 끝냈을 테니까. 이 아이를 먹이기 위해 자신의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다음 날부터 그는 짐을 졌다. 나의 첫 시작은 축복이라기보다, 아버지가 등을 굽히기로 결심한 순간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