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_3화

고기 방패의 맛

by 돈미새

운동장 모래바닥은 한낮의 열기를 머금어 불에 달군 쇠판처럼 들끓었고, 그 위에 개구리처럼 엎드린 우리의 배 밑으로는 지독한 흙먼지가 비집고 들어왔다. 총구 위에 얹어둔 납작한 돌멩이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흔들렸다. 눈동자를 찔러오는 땀줄기를 훔치려 몸을 움츠리는 순간 돌멩이가 떨어질 것을 알았기에, 나는 눈을 깜빡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격발!”


교관의 구령에 맞춰 메마른 공이치기 소리가 운동장을 긁어대던 그때, 내 옆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용식의 총구에서 결국 돌이 떨어졌다.


“에이 씨, 못 해 먹겠네!” 용식이 총을 내팽개치며 일어섰다.


뚜벅거리는 군화 소리가 들렸다. 분대장 이 하사였다. 그는 흙먼지 앉은 군모 아래로 용식의 코앞까지 얼굴을 밀어 넣었다. “다시 엎드려.” 낮지만 서늘한 명령이었다. 용식은 굴복하지 않고 이 하사를 쏘아보았다. 사람 죽이러 보내면서 총알 한 발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우릴 못 믿어서 고기 방패로 쓰려는 거 아니냐고 소리쳤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하사의 주먹이 용식의 턱을 후려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용식의 고개가 꺾였다. 녀석은 비명도 못 지른 채 모래바닥에 처박혀 검붉은 핏물을 뱉어냈다.


이 하사는 쓰러진 용식의 가슴팍을 군화로 짓이기며 우리를 훑었다.


“억울하냐? 여기 서 있는 이상 너희는 학생이 아니라 소모품이다. 알겠나!”


그 말이 뙤약볕보다 더 뜨겁게 내 정수리를 때렸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엎드려 있었다. 담장 너머 가마니 위에 앉아 우리를 보던 피난민 아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점심시간, 식판에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기가 수북했다. 용식은 퉁퉁 부어오른 뺨 때문에 씹지도 못한 채 국물만 겨우 들이켰다.


“야... 저 고기 말이야. 진짜 노잣돈 맞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기 한 점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씹을수록 역한 기름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연필 조각을 묻었던 잿더미 냄새가 났다.


용식은 그날 이후로 웃지 않았다. 턱을 맞은 자리는 퍼렇게 번졌고, 입을 벌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뼈 소리가 났다. 녀석은 이제 구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턱에 맺힌 핏방울이 마른 흙에 스며드는 것을 나는 그냥 지켜보았다. 나 역시 옆자리 녀석의 팔꿈치가 움찔거리면 내 근육도 경련하듯 반응했다.


이유 같은 건 몰랐다. 그냥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오후의 교실은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책상 위엔 연필 대신 구리스 묻은 노리쇠 뭉치들이 굴러다녔다. 지문 사이사이에 박힌 쇠 비린내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생각하지 마. 손이 기억하게 해.” 교관의 구두 앞코가 상문이의 책상을 걷어찼다. 상문이는 뒤집힌 노리쇠를 붙잡고 땀을 뚝뚝 흘리며 헛손질을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 총구 안쪽만 들여다봤다. 도와주지 않았다. 도와주는 순간 그 구두가 내 정강이를 향할 것을 알았다.


식사 시간, 식판 위엔 여전히 기름진 고기가 놓였다. 용식은 비계를 씹다 말고 숟가락을 놓았다. 식판 가장자리에 앉은 파리 한 마리를 녀석이 손가락으로 눌러 죽였다. 터진 파리의 잔해가 고기 양념과 섞였다. 용식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밤이 되면 내무반은 이 가는 소리와 잠꼬대로 가득 찼다. 누군가 “엎드려!”라고 비명을 지르며 깼지만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나는 벽면의 회칠을 손톱으로 긁어냈다. 페인트 가루가 손톱 밑에 박혀 쓰라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담장 밖 노인이 우리를 향해 뱉은 가래침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소문은 화장실 뒤에서, 개수대 옆에서 번졌다. 전선이 무너졌다는 말도 있었고 부산까지 내려왔다는 말도 있었다.


교관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구령을 더 크게 지를 뿐이었다. 전쟁은 소문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식판 위에 올라오는 고기 비계의 맛이었고, 지문 속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쇠 냄새였다. 우리는 여전히 학도병이었으나, 누구도 학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교문 밖으로 이어지는 검은 길만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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