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황장애 기록
최근 6개월 중 불안 증상이 최고인 오늘. 두근거림을 잠재우려 시선을 분산시킨다. 유튜브, 넷플릭스, 트위치, 네이버, 다음. 이것들을 둘러보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무의미한 클릭의 종착점은 웬일로 브런치였고, 좋은 글을 읽게 되었다.
"시작하지 않으니까 시작되지 않는다."
"공부가 경험이 아니고 경험이 공부다."
"준비가 부족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준비만 하고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정확히 인용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찾으려니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누군가의 명언에 자신의 철학을 담은 자기 계발서에 가까운 주제였고 평소라면 지나쳤을 것이다. 끝까지 정독한 이유는 오늘의 기억 때문이다.
1년 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내 사정을 잘 아는 그 친구는 조심스레 나의 계획을 물었다. 나는 자격증을 땄으니 한 숨 돌리고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친구는 요즘 돈이 되는 게임,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용직, 배달일 등을 추천하며 나를 격려했다. 비슷한 패턴의 시작. 나의 상태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결코 "하겠다."라는 말은 꺼내지 않고 대화는 학창 시절로 넘어가고 끝이 난다.
자격증으로 '준비'를 갖추었고 올 초에는 증상도 좋았다. 그렇게 원했던 실무 경험 기회도 있었다. 지속적인 걷기 운동으로 컨디션이 좋았던 시기도 길었다. 그럼에도 친구와의 통화 속 그 패턴은 5년 전이나 오늘이나 같았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어차피 시작하지 않을 거면서 준비는 왜 했을까. 평소라면 지나쳤을 그 글이 너무나 아팠다.
노가다를 하려면 신체가 튼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을 빼고 근육을 만드는 준비를 했다. 20대 시절 프로그래머 취업 기회도 그랬다. 더 많은 준비를 위해 다 차려진 밥상을 엎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또 다른 준비를 찾아봤다. 30~40대가 취업하기 좋은 직종. 공무원 경쟁률. 혼자 하는 아르바이트. 퇴근 후 월 500을 번다는 싸구려 광고까지 클릭하고 나니, 자존감도 싸구려가 되었다.
내가 했던 준비는 일종의 '회피'이자 '자기 방어'였다. 남자가 그 정도 물건도 못 드냐는 핀잔을 듣기 싫었다. 기본도 공부하지 않고 입사했냐는 지적이 싫었고, 가끔씩 일어나게 될 부당한 모멸감에 대처할 자신도 없었다. 공무원이나 혼자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본 이유는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는 시선이 두려워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광 같은 생각들이, 현재의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혐오스럽다.
좋은 글을 읽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에 문장 하나하나 강하고 정돈된 글이었다. 자기 계발서에 품고 있던 알 수 없는 반감을 상쇄시켜줄 만큼. 진심으로 좋은 글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좋은 글이어서 아프다. 퇴마사의 한 마디 주문에 사라지는 악령이 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