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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May 16. 2023

직업의 귀천

- 생존과 고립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웠다. 현실은 다르지만 어쨌든 그게 정설이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봤다. 연봉 8천 대기업과 연봉 5천 중소기업 중 어느 쪽이 좋을까? 세세한 옵션과 업무 강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대기업을 선택할 것이다. 여기서 연봉의 격차를 줄여가며 반복적으로 물었다. 8000 : 5000이 6500 : 6500이 될 때까지는 대기업을 고수했다. 중소기업 연봉이 대기업 연봉을 추월하는 지점에서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돈만 본다면 1원이라도 높은 쪽을 고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나는 중소기업의 연봉이 10~20% 높다는 가정에서도 대기업을 선택했다. 격차가 30% 이상 벌어지자 겨우겨우 중소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질문에 사용된 최소 연봉은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어야 했다. 만약 2000 : 1000이라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2000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을 만든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귀천'을 수치로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생계에 지장이 없다는 가정하에, 연봉이 30%나 낮음에도 대기업을 선택했다. 이 30%가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귀천이었다.


 직업의 귀천은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귀함과 천함의 차별 문제가 아니고 귀천의 존재 이유였다. 현대사회에서 귀한 직업을 꼽으라면 '사'자 들어가는 직업일 것이다. 의사를 보자. 생명을 구하기 때문에 귀하다.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귀하다.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귀하다. 맞나?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시각을 '생존'으로 바꿔보자. 살아남기 굉장히 유리하다. 의사는 견고한 단체에 소속될 확률이 높고 독립한다 하더라도 상급자인 경우가 많다. 의사라는 명함은 타인의 경계심을 낮춰주고 불필요한 관계까지 포화상태가 될 정도로 고립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의사만큼 버는 중소기업 직원의 생존력도 같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존력은 경제력이 맞다. 하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후의 생존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이 떠올랐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면 다음 단계를 갈망하는데, 애정과 소속감, 존중, 자아실현은 돈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3단계에서 정체된 사람보다 5단계에서 4단계로 올라가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소리다. 욕구가 정체되는 상태를 생존력이 낮다고 보는 시각이다. 누가 봐도 부유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것 아닐까? 우리보다 GDP가 한참이나 낮은 나라가 더 행복하다는 조사도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30% 낮은 연봉에도 대기업을 선택했던 나는, 그 30%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비용으로 산정했던 것 같다. 귀천이라는 말에서 차별을 빼버렸더니 생존이 남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나에게 '게임 부업'을 권하던 친구 때문이다. 게임부업을 간단히 설명하면 클라이언트 여러 개를 켜두고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어쨌든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완전 블루 오션이야. 월 300은 금방이고 '너'라면 월 1000도 가능해!" 산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컴퓨터 10대와 핸드폰 공기계 50개 정도를 하루종일 돌린다면 말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했다. "너도 빨리 뛰어들어서 월 1000 찍고 퇴사하자." 친구는 정색하며 "아니지."라고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친구 월급은 월 1000이 훨씬 못된다. 그런데 왜? 안정적이지 못해서? 분명 그 친구는 이렇게도 말했다. "게임은 계속 나오니까 안정적이다!" 친구의 논리는 내가 30% 낮은 연봉임에도 대기업을 선택했던 맥락과 같은 것이었다. 게임 부업을 선택한다면 돈은 벌더라도 사회적으로 고립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고립은 우울을 부르고 우울은 생존력 하락의 직행버스다. 이를 직업의 귀천으로 해석하면, 친구는 게임 부업을 자신의 직업보다 '천한 직업'으로 분류한 것이다.


 직업의 귀천이라는 표현은 차별이 맞다. 하지만 대다수가 용인한다. 밑바탕에 생존이 있기 때문이다.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의 최하층은 지나왔다는 점이다. 귀한 직업이 자아실현에도 유리할까? 우리가 서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하면 천한 직업은 얼마나 불리한 것일까? 천한 직업으로 분류되지만 귀한 직업을 갖은 이보다 행복한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직업에 점수를 매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평가인지 상대평가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매슬로우 욕구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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