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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Oct 14. 2023

하고 싶은 일을 해라?

- 가난한 꿈

하고 싶은 일

조는 무술에 일가견이 있을 뿐 아니라 무술을 사랑했다. 스승들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도장을 열었다. 도장은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연 2만 1,000달러의 수익으로는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부의 추월차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따듯한 격언이 차가운 결과를 낳았다. 격언으로 삼는 말들은 각자의 차원을 갖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킬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은 인생 차원에서는 격언이지만 학대와 고문을 당하는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다. 마찬가지로 조의 '하고 싶은 일'은 자기실현의 차원일 뿐 경제적 차원이라면 다른 생각을 떠올렸어야 했다.


- 우리 동네에 무술 도장에 대한 욕구가 있는가?

- 기존의 무술 도장들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으며 내가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가?

- 무술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떤 개선된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 내가 지역 사회에 제공하게 되는 자산은 무엇인가?



옳다고 믿는 일

 요즘 태권도장은 어린이집이 되었다. 고객의 요구에 순응한 것이다. 태권도장은 정신과 신체를 단련하러 오는 것이 옳다고 믿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틀렸을까? 태권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땀 흘렸던 체대생이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현실은 아이들의 배변훈련과 간식조달이 주 업무였다. 사회 초년생이 겪는 이상과 현실로 볼 수도 있지만,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부류가 있다. 요리는 오직 맛으로 승부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요리사는 리뷰이벤트로 획득하는 별점을 혐오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xx는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만이 정답이며 매크로와 구독자를 돈 주고 사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말한다.


 태권도장의 어린이집화는 유연한 순응이지만 브런치에서 구독자를 돈 주고 사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견해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이는 가치 차원에서의 이야기다. 자본주의 차원은 '수익'이 정의다. 구독자 구매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좋음'과 '나쁨'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거짓' 이야기다. 옳다고 믿는 일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말은 분명한 거짓이다. 성공의 기준이 행복과 자기실현 차원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들이 말하는 성공의 뉘앙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경제적 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정과 탈출구 (꿈)

 하고 싶은 일과 옳다고 믿는 일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꿈'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난한 예술가, 작가 지망생, 인권/환경 운동가, 1인 언론 등등. 나는 인생의 성공 기준을 돈보다 행복으로 여긴다. 하지만 돈 없는 행복은 쉽지 않다. 전업작가나 대형 유튜버의 조언에 "직업을 갖아라.", "섣부르게 전업으로 가지 마라."가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조언은 경제적 사정을 염려한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변질'이다. 돈이 부족하면 하기 싫은 일, 올지 않다고 믿는 일을 해야 한다. 예술가는 외설적인 그림에 손을 대고 작가 지망생은 자극적인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반면 하기 싫고 옳지 않다고 믿는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그들은 최소한 직장 밖에서만큼은 꿈이 변질되지 않는다.


 태권도장이 아이들 배변훈련을 돕는 장소가 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긴다면 박차고 나오기보다는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태권도 정신에 관한 글을 쓴다거나 유튜브 촬영도 좋다. 대기업의 횡포에 일조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퇴근 후 그들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려보자. 아니면 관련 공부를 통해서 부업을 키우며 탈출구를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과거에 이러한 가치관을 싫어했다. 조금이라도 옳지 않으면 손대지 않았다. 20대에는 "그걸 하느니 굶어 죽겠다!"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나와 같은 부류는 주변에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자 변질되는 이가 생겨났다. 먹고는 살아야지 않겠냐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꿈으로 '수익'을 내려고 했을까?" 내 꿈은 과학자였다. 부자가 아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꿈은 작아지고 욕망만 늘어난다. 더 늦기 전에 꿈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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