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설픈 개입
"큰 병원에 들어가면 없는 병도 만들어서 나온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그의 책 <안티프래질>에서 의료계의 어설픈 개입을 지적하며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1930년대에 어느 의사가 389명의 어린이 중 174명에게 편도선 절제 수술을 권유했다. 나머지 215명은 다른 의사에게 보내졌는데 99명이 같은 수술을 권유받았다. 세 번째 의사는 116명 중 52명에게 똑같은 수술을 권유했다.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권유'다. 권유는 여전히 병원의 큰 수입원이다. 결정권은 환자에게 있지만 거절하기 쉽지 않다. 영양제, 미용시술, 각종 정밀 검사, 가끔은 수술을 권유받기도 한다.
저자의 경험도 흥미롭다. 파티에서 만난 유명한 의사가 미니 혈압측정기에 찍힌 저자의 혈압을 보고 메모지에 혈압약을 적어주며 추천했다. 그 후 저자는 주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했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혈압문제는 없다고 한다. 의사가 혈압 수치의 가변성을 몰랐을까? 저자는 의사의 실력보다 그의 태도를 지적했다. 의사는 어설픈 개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만약 저자가 가족이었어도 혈압약을 추천했을까?
조지워싱턴의 죽음에 주치의의 지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표준 치료법에 사혈요법(5~9파운드의 피를 뽑아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ADHD나 우울증을 앓는 어린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약물로 치료할 때 약물에 의한 장기간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20년 뒤에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솔직히 이 부분은 공감하기 어렵다. 미래에서 오늘을 보면 위험한 처방이 많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아마도 늘어나는 약의 복용을 지적한 듯하다.
사람들이 어설픈 개입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만약'이다. 만약은 보험 회사의 권유에 저항하지 못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대비 보험료는 세계 5위다. 국방비의 4배가 넘고 사회복지비용보다도 높다. 보험회사가 나쁘다거나 생명을 담보로 절약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필요하긴 하지만 정도가 심하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30~40대 외벌이 가장의 생명보험 이외에는 적금이 낫다. 사람들은 보험을 가입할 때 물가상승률과 금리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만약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 드는 비용도 폭증시켰다. 걸음마가 느리면 병원을 찾으라는 권유가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병원을 찾는 시기다. 누가 보아도 그럴 법한 나이인데도 발달 장애를 걱정한다. 사소한 사건에도 PTSD를 걱정하며 조금이라도 산만하면 ADHD를 의심한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간 손주의 영상 속에 충격 방지 스펀지가 없는 식탁이 찍혔는데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비판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부모는 입마개 구매를 강요받는다.
어설픈 개입을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의 경우는 늘 존재하며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보험 지출을 줄이라고 조언했는데 다음 달에 큰 사고가 난다면 어쩌겠는가. ADHD 테스트를 받으러 가서 희귀병이 발견될 수도 있다. 타인에게 어설픈 개입 운운하는 것은 오지랖을 넘어서 책임소재의 리스크가 있다. 그렇다면 방치해야 할까?
각자 가치관에 맞추어 적용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연약하고 안전한 상태는 한 번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곤충을 예로 들어 보자. 요즘 아이들은 곤충에 익숙하지 않다. 과도한 방역은 놀이터에서 메뚜기를 사라지게 했다. 키즈카페가 등장한 이후 아이들은 개미와도 멀어졌다. 연약하고 안전한 아이들은 갑자기 등장한 나비 한 마리에 경기를 일으킨다.
지식사회로 접어들며 신체 능력이 외면받고 있지만 위급 상황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부류는 운동을 하지 않은 쪽이다. 사회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 자란 아이는 한 번의 배신으로 회생불능이 된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사회의 쓴맛을 교육하기란 쉽지 않다.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야외 활동과 독서 등이 추천되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경제 사정과 가치관을 고려할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휩쓸리지 말자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으며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객관적 시각을 갖아야 한다. 재벌이라고 무균실에서 살지는 않는다. 아무리 가난해도 청소는 한다. 범죄율 20%를 10%로 만드는 것보다 3%를 2%로 줄이는 비용이 크다. 기아에 허덕이는 10명을 살리는 방법보다 선진국 노숙자 한 명 케어가 더 복잡한 법이다.
나는 12세 아이의 15세 영화 시청에 반대하지 않는 편인데 이러한 주장은 비판받기 십상이다. 헬멧 등 안전장비 풀세팅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지 말라는 의견도 있다. 안전 요원이 없는 곳에서는 수영을 해서는 안되고 절대로 길고양이를 만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찬반을 따지지는 않겠지만 연약해진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고생을 사서 하고 규율을 어기자는 의미가 아니다. 교훈을 주는 15세 영화는 많다. 바닥이 평평한 공원이라면 안전장비가 없어도 두 발 자전거 연습을 할 수 있다. 수영도 보호자가 있다면 괜찮다. 길고양이의 위생상태가 걱정이라면 고양이 카페나 반려묘를 키우는 이웃을 방문하면 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안전하고 연약한 길은 한 번에 붕괴한다. 최소한 안전하고 연약해지지 않는 방법 정도는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